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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A 톡] 저물어 가는 2009년, 세리에 A 핫 이슈는?

기사입력 2009.12.28 18:35 / 기사수정 2009.12.28 18:35

박문수 기자



다사다난했던 2009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번 2009년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전설 파울로 말디니와 파벨 네드베트, 루이스 피구 등의 은퇴를 비롯해 카카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각각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와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로 이적하는 일도 생겼다.

그렇다면, 축구 팬의 밤잠을 설레게 했던 2009년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의 핫 이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이탈리아 세리에 A, 2008-200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전멸

2008-2009시즌 챔스는 이탈리아에게는 거대한 충격이었다. 세리에 A팀과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 팀과의 정면 대결로 관심을 모은 16강전에서 세리에 A팀이 모두 패배한 것이다. ‘리그 챔피언’ 인테르는 EPL의 강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합계 0-2로 패했으며 유벤투스와 AS 로마는 각각 첼시와 아스널에게 무릎을 꿇었다.

우선, 인테르는 쥬세페 메아차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줄리오 세자르의 선방에 힘입어 0-0무승부를 기록. 올드 트라포드에서의 반전 드라마를 준비했었고 경기 내용도 좋았지만, 네만야 비디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연속으로 실점하며 패했다. 즐라탄이 분전했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선수의 부재는 인테르의 한계를 보여줬다.

유벤투스는 펠리페 스콜라리 체제에서 부진했던 첼시와의 만남을 기뻐했지만, 거스 히딩크의 마법 같은 지도력 때문에 되살아난 첼시를 상대로 1무 1패로 무릎을 꿇었다. 경기 내용에서는 비교적 선전했지만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유베를 상대로 폭발적인 활약을 보여준 디디에 드로그바를 막기에는 수비진이 2% 부족했었다. AS 로마는 아스널의 부상 병동 때문에 8강 진출이 수월 해보였지만,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줄리오 바프티스타의 엄청난 부진 때문에 승부차기 접전 끝에 탈락했다. 프란체스코 토티의 킬 패스도 바프티스타 앞에서는 모두 위력을 감췄었다.

2. AC 밀란의 전설 파울로 말디니 은퇴

파울로 말디니가 25년간의 AC 밀란 생활을 청산하며 그라운드와 작별하였다.

'밀란의 살아있는 역사' 파울로는 자신의 부친인 체사레 말디니의 뒤를 이어 밀란의 주장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밀란의 3번 유니폼을 입고 25시즌을 함께 한 그는 5개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비롯해 총 26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선수이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통산 4번의 월드컵(1990,1994,1998,2002)과 4번의 유럽선수권대회(1988,1992,1996,2000)를 거치면서 종전의 디노 조프가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A매치 기록(112회)까지 갱신해버린 말디니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이며 축구사에 오랫동안 남을 전설 그 자체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패션과 축구의 본 고장 밀라노에서 태어나 AC 밀란의 유스팀을 거쳐 1985년 9월 8일 16세의 나이로 첫 번째 세리에 A 경기를 가졌으며 이후, 오직 AC 밀란 만을 위해 뛰었다. 밀란은 말디니의 은퇴로 생긴 공백을 브라질 출신 수비수 티아고 실바로 메우고 있다.

3. 파벨 네드베트와 루이스 피구, 그라운드와 작별

말디니의 은퇴도 안타까웠지만, 각각 2000년과 2003년 발롱드흐를 차지했던 세계적인 측면 미드필더인 네드베트와 피구도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SS 라치오와 유벤투스에서 굵직한 활약을 보여줬던 네드베트는 체코의 축구 영웅이었다. 현역 시절, 라이언 긱스와 함께 세계 최고의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불린 네드베트는 유로 96에서 체코를 준우승으로 이끌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으며 지치지 않는 체력에서 나오는 뛰어난 드리블과 동료에게 정확하게 전해주는 패스능력, 공간이 생기면 득점으로 연결하는 중거리 슈팅 능력, 후배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좋은 멘탈까지 지닌 만능이다.

또한 세리에 A보다는 라 리가에서의 활약이 돋보였던 피구였지만 그의 업적은 세리에 A에서도 빛났다. 포르투갈 축구를 빛낸 '골든 제너레이션'의 일원으로서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2연패하며 이름을 알린 피구는 1995년 유벤투스와 파르마 사이에서의 이중계약 문제 때문에 이탈리아 내로 이적이 금지되었다. 결국, 바르사로 이적하게 되었으며 요한 크루이프 밑에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유로 2000이 끝난 직후, 급격하게 상승한 그의 인지도에 반한 레알 마드리드는 당대 최고의 이적료를 지급하며 피구를 영입. 갈락티코 정책의 서막을 울렸지만 피구는 바르사 팬들이 가장 증오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후였다. 레알에서의 생활을 청산한 후, 인테르 행을 선택한 피구는 노장이지만 효율적인 활약으로 팀의 리그 4연패에 크게 이바지했다.

4. 인테르 밀란 리그 4연패

칼치오폴리의 영향이었을까? 만년 3인자였던 인테르가 리그 4연패를 달성했다. 1989년을 끝으로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그들이었기에 최근 세리에 A의 행보가 의심스럽다. 심지어 인테르는 최 전성기의 축구 황제 호나우두를 영입했을 때에도 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우선, 라이벌 AC 밀란과 유벤투스가 칼치오폴리 때문에 전력 보강에 100% 성공하지 못한 점이 인테르의 리그 독주에 촉매제가 되었다. 마땅한 경쟁자가 없는 인테르는 리그 내에서 압도적인 포스로 승승장구하지만, 정작 강호들이 즐비한 챔스에서는 16강 징크스를 넘지 못하고 낙방하고 있다. 이번 2009-2010시즌도 인테르가 독주 체제를 준비하고 있으니 세리에 A는 더욱 경쟁력을 상실하며 특정팀의 원맨쇼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 것 같다. 물론 인테르를 서포팅하는 팬들에게는 이 상황이 행복할 것이지만, AC 밀란과 유벤투스, AS 로마를 지지하는 팬들에게는 악몽이다.

5. 카카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엘 클라시코 더비에 가담

밀라노는 패션과 공업의 중심지이며 동시에 AC 밀란과 인테르를 보유한 세계적인 축구 도시이다. 양 밀란을 대표하던 두 명의 스타 플레이어가 세리에 A를 떠나 라 리가로 행선지를 변경한 것은 세리에 A 팬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축구계의 시선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우선, 카카는 밀란의 상징적인 인물이며 맨체스터 시티와의 이적설에도 팀에 잔류하는 의지를 보여줬다. 자신의 바람이었던 밀란의 차기 주장 꿈과 소속팀을 이끌고 챔스를 제패하던 모습을 뒤로하며 이번 시즌 갈락티코 2기를 부활시킨 플로렌티노 페레즈의 레알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입성했다.

한편, 즐라탄은 바르사의 사무엘 에투와 현금을 더한 트레이드를 통해 바르사 행을 선택. 캄노 우에 입성했다. 6관왕을 달성하며 클럽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는 바르사이기 때문에 즐라탄의 이적은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아다니던 과르디올라 감독에게는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6. AC 밀란과 유벤투스 신임 사령탑으로 레오나르도, 페라라 선임

2008-2009시즌의 종반과 함께 이탈리아 세리에 A를 대표하는 두 개의 명문팀 AC 밀란과 유벤투스는 각각 카를로 안첼로티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를 첼시와 AS 로마로 보내면서 젊은 사령탑을 영입.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AC 밀란은 2009-2010시즌의 시작을 팀의 브라질 지역 스카우트를 담당하며 현재까지 이어진 밀란과 브라질의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인물인 레오나르도 나스시멘토와 함께 시작했다. 애초, 레오나르도의 선임은 도박이었으며 프리 시즌에서 밀란이 보여준 플레이는 명문 클럽에 어울리지 않게 허점투성이였다. 카카와 말디니로 대표되는 창과 방패를 잃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밀란의 2009-2010시즌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레오나르도 체제의 밀란은 반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명문이란 이미지를 다시금 쌓아올리고 있다. 이번 시즌 8라운드 AS 로마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어두웠던 라커룸의 분위기를 쇄신한 밀란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C조 조별예선 3차전에서 3-2 짜릿한 승리를 거두며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온화한 성품을 지닌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지도력을 발휘하며 선수단 장악에 성공. 효과적인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기존의 안첼로티가 구사했던 크리스마스 트리를 대신해 4-3-3전술을 채택. 호나우지뉴의 갱생과 측면에서 더욱 효율적인 플레이를 구사하는 파투의 재발견을 이룩했다. 외부 환경이 좋지 못했지만 현재까지 레오나르도의 밀란은 기존의 예상보다 훨씬 성공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유벤투스는 팀의 전설적이었던 수비수 치로 페라라를 감독으로 선임. AC 밀란과 함께 신임사령탑을 맞이했다. 게다가 AC 밀란이 이적시장에서 부진했던 것과 달리 유벤투스는 피오렌티나와 베르더 브레멘에서 브라질 특급 용병 펠리페 멜로와 디에고 히바스를 영입하며 중원의 강화와 창의적인 볼 배급이란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했었다. 게다가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가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고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했으며 파비오 칸나바로가 돌아온 수비진은 조르지오 키엘리니와 함께 아주리 군단의 주전 중앙 수비진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시즌 유벤투스는 상황이 좋지 못하다. 애초, 챔피언스 리그와 세리에 A에서 모두 선전하며 칼치오폴리 때문에 인테르에 내준 리그 최강 타이틀 획득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저버린 채 어려운 시즌을 보내며 혼전상황에 놓여있는 처지이다.

선수단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설픈 전술을 내세운 페라라의 유벤투스는 동네북처럼 여러 팀에게 승점 3점을 제공하고 있으며 선수의 특징조차 파악하지 못하며 수준급 기량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페라라의 안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짜증까지 유발하고 있다.

7. AC 피오렌티나 10년 만에 챔스 토너먼트 진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애초, 올림피크 리옹과 리버풀 사이에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 피오렌티나가 리버풀을 2번이나 제압하는 드라마를 펼치며 2009-2010시즌 챔스 E조 1위를 차지했다.

과거 로베르토 바지오와 브라이언 라우드럽, 스테판 에펜베르크, 가브리엘 바티스타투, 마누엘 후이 코스타 등의 소속팀으로 알려졌던 피오렌티나는 이탈리아 세리에 A 7공주의 일원으로서 강호의 입지를 굳힌 팀이었다. 비록 리그 우승은 1950년대와 60년대 각각 한 번에 그쳤지만 이름값만은 최고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전역에 불어닥친 재정 악화는 피오렌티나의 4부 리그 행이란 악재를 낳았다.

이후, 델라 발레 가문의 지원 속에 세리에 A로 복귀한 피오렌티나는 現 감독과 단장인 체사레 프란델리와 판탈레오 코르비노가 부임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2007-2008시즌에는 AC 밀란을 제치며 리그 4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 챔스라는 큰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이번 시즌에는 당당히 조 1위로 챔스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비록 델라 발레 가문이 현재는 피오렌티나와 작별했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이 보여주는 재미는 세리에 A의 부흥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사진=AC 밀란의 전설적인 수비수가 된 파울로 말디니 ⓒ AC 밀란 공식 홈페이지 캡쳐]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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