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6 10:12
스포츠

자신의 운명을 바꾼 테하다의 거짓말

기사입력 2009.11.28 06:09 / 기사수정 2009.11.28 06:09

조인식 기자

2000년대 초반 빌리 빈이 이끄는 '머니볼 군단'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성공은 영건 3인방(팀 허슨, 마크 멀더, 배리 지토)의 공이 가장 컸지만, 제이슨 지암비나 미겔 테하다, 에릭 차베즈와 같은 강타자들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제이슨 지암비는 2000년 MVP를 차지하고도 이듬해에 타율, 출루율, 장타율 면에서 MVP를 수상한 해의 기록을 넘어섰다. 그러나 디비전 시리즈에서 양키스에 패한 뒤, 스토브리그에서 자신들에게 아픔을 준 팀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플레이오프 진출은 매 시즌 후마다 이어지는 전력 누수만큼이나 꾸준했다. 천재 단장이라는 세간의 평가처럼 빌리 빈은 신기에 가까운 선수 영입과 재배치로 팀을 유지해나갔다. 지암비와 리그 최고의 테이블 세터인 자니 데이먼의 공백은 또 다른 지암비(제이슨의 동생인 제레미 지암비)와 끈기 있는 스캇 해티버그로 메웠다. 또한, 디비전 시리즈에서 적으로 만났던 데이빗 저스티스에게도 초록빛의 유니폼을 입혔다.

언뜻 보면 새어나간 전력에 비해 형편없는 보강이었지만 팀은 2002년에도 순항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미니카 출신의 미겔 테하다가 있었다.

 테하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를 가려주던 지암비라는 우산이 없어졌음에도 홀로 비를 헤쳐나가며 대부분의 타격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면서 팀이 거둔 20연승의 핵심이 되었고,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자신보다 개인성적에서 훨씬 앞서던 텍사스 레인저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제치고 시즌 MVP의 주인공이 되었다. 바야흐로 아메리칸리그 유격수 3인방(A-Rod, 노마 가르시아파라, 데릭 지터)에 뒤지지 않는 특급 유격수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이듬해에도 팀의 전 경기에 출장하며 활약한 테하다에게 FA 대박은 약속된 것이었다. 동부지구의 약체로 전락한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극심하게 냉각된 그해 FA 시장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6년간 평균 1200만 달러를 지급하는 계약을 안겨주었다. 테하다 또한 새로운 팀의 기대에 부응하며 훌륭한 기록을 쌓아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팀은 양키스와 레드삭스에 밀려 도무지 플레이오프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테하다와 불화까지 생기며 그를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했다. 애스트로스가 그를 데려오기 위해 5명의 선수를 오리올스에 주어야 했을 정도로 그는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트레이드 바로 다음날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위기로 몰고 간 약물 스캔들을 다룬 '미첼 보고서'가 발표되며 휴스턴은 땅을 쳤다. 바로 테하다가 금지약물 사용 선수로 밝혀진 것이다. 테하다는 이를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그의 약물 혐의는 사실로 입증되었고, 의회에서조차 거짓 증언을 하던 그는 법적 처분(집행유예)까지 받게 되었다. 자신의 나이를 속였던 사실(-실제 74년생이나, 어슬레틱스와 처음 계약할 때 76년생인 것으로 속였다. 그리고 이에 대해 고향 도미니카에서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명하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을 밝혔던 2008년에 이어, 또 한 번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키는 순간이었다.

위대한 커리어를 남기고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선수들의 경우 과거에 그가 보여준 화려함을 그리워하는 팬들과, 이제 살아있는 전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팬들의 마음이 모여 그를 성원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켄 그리피 주니어다. 약물 논쟁에 있어서도 자유로운 그리피는 기록과 관계없이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휴스턴 이적 이후 2번의 올스타와 2000안타 돌파라는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테하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훗날 테하다가 메이저리그를 떠날 때 그의 뒷모습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남길 듯하다. 그는 정직하지 못했고, 남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누군가를 대표하거나 남 앞에 나서려 하는 이는 항상 자신보다는 양심을 앞세워야 하고, 이들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그저 방관자가 되기보다는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겔 테하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많은 사건과 사람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조인식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