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11.02 21:22 / 기사수정 2009.11.02 21:22
[엑스포츠뉴스=정재훈 기자] 파격적인 변화를 주기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하지만 안정 속에 작은 변화가 있었고 그 작은 변화의 중심에는 김두현이 있었다.
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허정무 감독은 11월 14일(덴마크)과 18일(세르비아)에 있을 유럽 원정에 나서는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기존의 해외파를 비롯해 선수단 면면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반가운 두 명의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곽태휘(전남)와 김두현(수원)이었다.
허정무 감독이 곽태휘와 김두현을 제외하면 선수 구성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곽태휘와 김두현을 발탁은 적어도 현재까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나서는 최정예 멤버에 두 선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제 관심은 두 선수가 25명의 대표팀 명단에 합류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과연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느냐는 것에 쏠린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명제는 곽태휘 보다는 김두현에게 조금 더 적용될 것이다.
곽태휘가 부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대표팀은 이정수-조용형 센터백 라인이 안정감을 보여주며 신뢰를 받고 있다. 하지만, 곽태휘는 '허정무의 황태자'로 불릴 만큼 허정무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제공권은 유럽 선수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손색이 없으며 셋피스 상황에서의 득점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물론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여줄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최근 경기력을 지켜본다면 충분히 주전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문제는 김두현의 경쟁력이다. 잉글랜드 생활을 뒤로하고 올여름 수원 삼성으로 복귀한 김두현은 짧은 기간 내에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합류할 당시 순위가 워낙 처진 탓에 수원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복귀 이후 4골 4도움을 기록하며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변모시켰고 FA컵 결승 진출이라는 열매를 얻어냈다.
경기력 또한 2006 K-리그 MVP를 수상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감 있는 슈팅과 깔끔한 드리블 돌파,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정확한 패스는 여전했고 플레이에서 한층 여유로움 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표팀 내 주전 경쟁이 밝지만은 않다. 이미 중앙에는 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성장한 기성용이 한자리를 예약한 상태이며 나머지 한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다. 김정우(성남)가 한발 앞서있고 조원희(위건)와 김남일(빗셀 고베)이 뒤쫒고 있는 형국이다.
경쟁이 만만치 않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잔인한 이야기지만 대표팀의 주 전술인 4-4-2에서 김두현의 자리는 애초부터 없을 수도 있다. '중앙 미드필더 김두현'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그 무대가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월드컵이라면 조금 달라진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김두현은 장점이 뚜렷한 반면에 단점도 뚜렷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성향의 차이가 다소 존재하지만 테크니션으로 꼽혔던 윤정환이나 이관우와 같은 선수처럼 말이다. 두 선수의 공격적인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최고였지만 수비와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냈고 그로 인해 팀에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며 계륵으로 전락한 사례가 있다.
김두현이 선배인 이관우나 윤정환보다는 조금 더 수비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빠른 공수전환과 강력한 압박이 존재하는 현대축구에서 그의 수비력은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다. 게다가 역시 두 선배와 마찬가지로 체력적인 면에서 항상 물음표를 달고 있다는 점도 그의 공격적인 재능과 별개로 주전 경쟁에서 뒤처지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허정무 감독은 어떤 의중으로 김두현을 선택했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박지성 시프트'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풀어가는 것이 빠를 것 같다.
현재 대표팀은 '플랜A' 4-4-2 포메이션을 주 전술로 내세우고 상대에 따라 '플랜B'로 4-2-3-1 전술을 시도하고 있다. 4-2-3-1은 중원을 두텁게 하기 위해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하고 3명의 공격적인 미드필더를 배치한다. 수비 시에는 3명의 미드필더가 내려와 순식간에 4-5-1을 구성해 상대에 압박을 가한다.
주로 강팀을 상대로 수비를 탄탄히 하기 위해서 고려하고 있는 카드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 세네갈전에서 대표팀은 전반전에는 4-4-2를 그리고 후반전에는 선수교체를 통해 4-2-3-1로 변화를 주었다. 세네갈전을 통해 지켜본 바로는 4-4-2에서 왼쪽 측면을 담당하는 박지성이 3명의 미드필더 중 가운데에 위치하며 원톱(박주영)을 지원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박지성의 다재다능함이 있기 때문에 대표팀은 더욱 다양하면서도 체계적인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되며 그리하여 우리는 '박지성 시프트'라고 칭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박지성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월드컵 본선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해 빠질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또한, 박지성이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을 경우에도 측면 공격수로 나설 가능성이 언제든지 존재하기 때문에 미드필더 '3'의 자리에서 중앙을 맡아 줄 적임자가 따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기성용을 공격적으로 배치할 수 있고 염기훈도 충분히 해낼 능력을 갖춘 선수지만 바로 그 자리에는 김두현이 적격이다. 김두현에게는 바로 박지성의 포지션, 즉 세 명의 미드필더 중 가운데 자리가 최적의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김두현은 수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그 위치에서(혹은 포지션이 다르더라도 수비부담을 갖지 않았을 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왔다. 드리블, 패싱 능력은 이미 K-리그 최고를 자랑하고 있으며 A-매치 52경기에서 11골을 기록할 정도로 득점력 역시 뛰어나다. 수비 부담만 덜어준다면 김두현의 재능을 끌어내기에 이보다 적합할 수는 없다. 적어도 그 위치에서만큼은 박지성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만큼의 재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 꾸준히 대표팀 엔트리에 뽑힐 수 있어야 한다. 아직 김두현의 남아공 행은 확정이 아니며 이번 유럽 원정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최종 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최종 명단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뒤따른다. 첫째로 김두현 본인이 그 위치의 적임자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과 4-4-2에서도 유용한 선수인가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성용이 플레이오프 일정으로 덴마크전을 마치고 소속팀에 복귀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김두현은 김정우 (혹은 김남일, 조원희)와 호흡을 맞출 공산이 있다. 그러기에 본인이 4-4-2에서 중앙 미드필더로서도 경쟁력이 있는지 여부도 확인을 시켜줘야 할 것이다. 현대 축구에서 반쪽짜리 선수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두현 자신이 그런 사실을 더욱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월드컵 본선은 25명의 엔트리가 아닌 23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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