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10.19 09:35 / 기사수정 2005.10.19 09:35
야구는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한 스포츠이다. 개개인과 팀 전체의 각종 기록부터 시작해, 투수면 던진 공의 개수와 구질까지 타자라면 타구가 많이 날아가는 방향과 어느 볼 카운트에서 어떤 성적을 올리는지까지 세세히 기록하는 기록의 경기이다. 동시에 선수들과 팀 전체의 작은 심리 변화가 곧잘 승부와 연결되기도 하는 맨탈 스포츠이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스포츠가 야구임엔 틀림없지만, 한 경기에서 갈리는 승과 패라는 명암은 너무 단순하고 분명한 원리에서 나온다. 바로 앞서가는 팀은 빨리 도망가야하고, 쫓아가는 팀은 다시 앞서기 위한 걸음을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팀은 승리하기 힘들다는 참으로 쉬운 논리가 그것이다.
18일,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졌던 두산과 삼성의 '2005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두산은 1회부터 6회까지 매 회 주자가 나가며 동점 및 역전의 기회를 잡았지만, 결국 동점을 이루는 마무리 안타 하나가 터지지 않아 삼성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반면 삼성은 무수한 실점 기회를 막아내자 기회가 찾아왔고, 결국 그 기회를 승리와 연결시켰다.
'찬스'에서 극명한 희비가 엇갈렸던 한국시리즈 3차전의 승부처를 짚어본다.
승부처 #.1 <4, 5, 6회 찾아온 득점 기회, 그러나..>
1, 2차전을 내준 두산으로서는 3차전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이미 확률 상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은 멀어진 만큼, 홈에서 치르는 첫 경기인 3차전을 잡고 특유의 뚝심을 발휘 시리즈의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2회 너무 아쉽게 한 점을 허용하며 힘든 경기를 치러야 했다.
1회 말, 2번 타자 전상열이 우익선상에 떨어지는 멋진 2루타를 쳤지만 3루까지 내달리다, 삼성의 김종훈-김재걸-조동찬으로 이어지는 중계 플레이에 아웃된 후유증은 2회 초 바로 찾아왔다.
삼성은 1사 후 박진만이 볼 넷으로 걸어나갔고 이어나온 진갑용이 1루수 땅볼을 쳤지만 '치고 달리기' 작전이 걸리는 덕분에 병살을 모면, 2사지만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냈다. 김재걸도 볼 넷을 얻으면서 만든 2사 1-2루 상황에서 박진만이 과감한 3루 도루에 성공하면서 2사 1-3루로 상황이 급변했고, 박명환이 패스트볼을 던지면서 3루 주자 박진만이 안타 없이 홈을 밟게 되었다.
기분 나쁜 선취점을 잃은 두산은 4회, 동점은 물론이고 역전까지 바라볼 수 있는 황금찬스를 맞았다.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3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최경환이 좌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를 쳐냈고, 심정수와 박한이가 서로 엇갈리는 찰나를 이용해 2루까지 진출 무사 2루의 기회를 잡았다.
상대의 보이지 않는 실수가 편승 되었기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두산이 가져갔고, 이어지는 타순도 김동주-홍성흔-안경현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이라 기대감은 더욱 컸다. 하지만, 김동주와 안경현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고, 홍성흔도 3루수 땅볼에 그치며 최경환은 3루도 밟지 못하고 말았다.
두산은 5회에도 행운이 겹치는 기회가 찾아왔지만 무위로 돌아가 아쉬움을 남겼다. 볼넷으로 나간 2루 주자 문희성이 삼성 선발 바르가스의 견제구에 걸려 아웃되는 듯 했지만, 베이스 커버에 들어갔던 박진만이 송구를 놓치는 바람에 살았었다. 이어 임재철도 볼넷을 고르면서 기회가 다시 찾아왔지만, 1번 장원진이 흔들리던 바르가스를 차분히 공략하지 못하고 초구를 건들며 병살타를 기록해 득점에 실패했다.
6회에도 선두타자 전상열이 이날 경기에서 두 번째 2루타를 기록하며 진루했지만, 최경환과 홍성흔 안경현 등 중심타선이 다시 침묵하며 결국 1점도 뽑아내지 못했었다. 특히 홍성흔과 안경현은 삼성의 권오준의 유인구를 참지 못해 헛방망이를 돌리며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승부처 #.2 <힘겹게 막아낸 위기, 그 뒤에 찾아온 찬스>
2회 빠른 선취점 이후 추가점을 올리지 못했던 삼성은 지난 1, 2차전의 두산처럼 경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마음이 급해진 삼성 타자들은 두산 투수들의 흐름에 말려 제 스윙을 찾지 못했었고, 6회 첫 안타가 터져 나왔을 만큼 철저하게 봉쇄당했었다.
이러한 내용이 6회를 넘어서도 지속되어 경기 흐름상으로는 두산에 압도당했지만, 상대적으로 두산의 추격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결국 기회는 8회 초 삼성에게 찾아왔다.
상위 타순부터 시작되었던 삼성은 선두타자 김종훈이 두산의 이혜천에게 맥없이 삼진을 당하며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찾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바로 전 타석까지 11타석 무안타에 그치던 3번 박한이가 이혜천에게 시리즈 첫 안타를 기록하면서 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심정수가 이혜천을 구원하기 위해 올라온 이재우에게 삼 구 삼진을 당하면서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화근은 5번 김한수에게서 시작되었다. 이번 시리즈에서 멋진 호수비를 수차례 보여주며 박진만과 최고 유격수 자리를 다투던 손시헌이 김한수의 타구를 2루로 악송구했고, 결국 주자와 타자가 모두 살아 2사 1-2루의 기회를 제공하고 만 것.
무안타에 허덕이던 타자의 첫 안타와 철벽 수비수의 실책이 만들어준 기회를 삼성의 노장 양준혁은 놓치지 않았고, 이재우의 4구째인 133km의 싱커를 잡아당겨 우측 펜스를 훌쩍 넘기는 3점 홈런으로 연결했다. 순식간에 3점을 더 달아난 삼성은 그것으로 승부가 결정된 것이었다.
이어 박진만의 안타와 진갑용의 2점짜리 쐐기 포가 터지면서 스코어는 6-0, 두산으로서는 카운터펀치를 얻어맞고 말았다. 결국, 무수한 찬스를 살리지 못했던 두산은 그 분위기를 삼성에게 빼앗겨야 했고, 삼성은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아 시리즈에서 3승째를 거둘 수 있었다.
도망가야할 기회에 혹은, 쫓아가야 할 기회에 그렇지 못하면 그 경기를 승리하기는 어렵다. 이번 경기에서는 삼성보다는 두산이 더 많은 기회를 잡았지만, 그런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서 경기를 내주어야 했다. '위기 뒤에 찬스, 찬스 뒤에 기회'라는 야구계 속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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