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5 19:52
스포츠

'뜨거운' 그라운드 밖 90분…그 시각 상암에서는

기사입력 2009.10.15 03:23 / 기사수정 2009.10.15 03:23

정재훈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정재훈 기자] 경기 시작 30분 전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6만 3천의 관중석은 과연 A-매치가 맞는가 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지난 파라과이전과 호주전을 통해 부쩍 줄어든 관중을 피부로 느꼈던지라 이날의 경기도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대표팀의 경기 그것도 올해 마지막으로 열기는 홈경기이기에 그 씁쓸함은 더해만 갔다. 옆에 있던 기자는 2만 명도 못 올 것이라고 예상을 했고 기자는 아닐 거라고 받아쳤지만 할 수 있는 대답은 "2만 명은 넘을 것 같아요"라는 소심한 말뿐이었다.

이날따라 플레이오프가 한창인 야구가 질투가 났고 비로 인해 오늘 5차전 경기를 치르게 한 하늘이 미웠다.

경기가 시작될 8시가 되자 텅 비었던 어느덧 경기장은 3만여 명이 들어섰고 선수들이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관중의 함성을 받으며 피치 위로 올라왔다. 한국은 3년 만에 대표팀에 합류한 '차차 트레인' 차두리가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출장한 것을 제외하면 '주장' 박지성을 비롯해 무패행진의 주역들이 모두 나섰다.



재미있는 것은 이날 경기에서 가장 많은 환호를 받은 것은 박지성도 기성용도 아닌 바로 차두리. 이런 인기가 예상외라는 듯 멋쩍은 차두리의 미소가 멀리서도 보이는듯하다.

대형 태극기가 흔들거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태극전사들은 파도처럼 세네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FIFA 랭킹 80위에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충분히 강한 상대인 세네갈은 한국의 매서운 공격에 당황했고 한국은 더욱 기세가 올랐다.

시작과 동시에 몰아붙였던 한국이 이청용의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포문을 열었다. 골키퍼가 멋지게 막아냈지만 확실히 기선을 제압하는 순간이었다. 이청용은 최근 프리미어리그 데뷔골까지 성공시키며 절정에 오른 기량을 맘껏 펼쳐보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던가. 청'용'이 먼저 비상하자 성'용'도 덩달아 비상했다. 불과 20세의 나이에 중원의 핵심으로 성장한 기성용은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한국의 공격을 매끄럽게 이어갔다. 특히 정확한 킥은 경기장 구석구석으로 배달되며 세네갈의 뒷공간을 허물었다.

'쌍용'의 FC 서울 선배이자 대표팀 선배인 박주영의 발끝도 찬란하게 빛이 났다. AS 모나코 이적 이후 부쩍 좋아진 몸싸움과 헤딩력으로 체격 조건이 월등한 세네갈 선수를 상대로도 제공권을 장악했던 박주영. 제공권도 제공권이지만 발끝의 예리함은 감출 수 없었다.

박주영은 전반 26분 프리킥 상황에서 직접 슈팅을 시도했고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아쉽게도 골포스트를 맞고 나오며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박주영이 왜 '축구천재'로 통용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박주영은 아쉬움에 머리를 감싸쥐었지만 관중의 함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잠시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국은 점점 짜임새 있게 경기를 풀어갔다. '주장' 박지성은 성실한 플레이로 팀을 이끌었고 포백은 단단했다. 이제 골이 들어갈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시점에 기가 막힌 골이 터져 나왔다. 




이 경기의 주인공은 초반부터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던 대표팀의 막내 '쌍용'이었다. 전반 41분 세네갈의 코너킥 상황에서 이청용은 공을 건네받은 뒤 바람처럼 몰고 나갔고 반대편에 뛰어들던 기성용에게 기가 막힌 패스를 선사했다. 기성용은 단짝의 멋진 선물을 강력한 왼발 슛으로 연결했고 세네갈의 그물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 순간 경기장은 용광로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경기장이 너무 뜨겁게 타올라서 주심이 불을 끄기 위해서인지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재밌는 경기였다. 잠시 기분을 가라앉히려 담배를 피우고 화장실에 들어섰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데 옆에서 볼일을 보는 낮 익은 얼굴. 바로 며칠 전 U-20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김태영 코치가 있는 것 아닌가. "8강 달성하신 것 축하 드립니다."라고 인사를 전하니 웃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김태영 코치뿐 아니라 이날 경기장에는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찾았다. 역시 얼마 전 이집트에서 돌아온 서정원 코치가 김태영 코치와 동행했고 그 옆에는 여자 대표팀의 안익수 감독과 이상윤 코치도 함께 있었다.

후반전이 시작하면서 한국은 선수를 교체하며 전술에 변화를 주었다. 중원의 기성용과 김정우를 빼고 조원희와 김남일을 투입했고 이근호 대신 설기현을 넣었다. 예상대로 박주영을 원톱에 세우고 박지성이 중앙으로 이동하는 4-2-3-1형태로 변화했다.

초반에는 전술의 변화에 적응을 못 하며 다소 매끄러운 경기가 연결되지 못했고 세네갈이 전반과 달리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단단하게 막으며 이렇다 할 위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간혹 위협적인 슈팅도 수문장 이운재의 거미손에 걸렸다.

하지만, 이내 주도권을 찾아오며 세네갈을 다시 압박하기 시작한다. 설기현의 날카로운 크로스가 박지성의 슛까지 이어졌고 이청용의 패스가 박지성을 거쳐 박주영에게 연결되는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다만, 골이 터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선수들의 멋진 모습에 경기장은 다시 타오른다. 그리고 교체 투입된 오범석의 추가골이 터지자 그 열기는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이청용의 패스가 오범석에게 전달되었고 오범석의 크로스가 굴절되며 행운의 골로 이어졌다. 행운이 섞이면 어떠하냐. 어쨌든 경기장은 떠나갈 듯 흔들린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가 관중의 함성소리 묻혀 희미하게 들린다.  2-0 한국의 완승이다. 오늘만큼은 공격과 미드필드, 수비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좋은 경기였다. 선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박수를 보내는 관중의 함성이 바로 그 증거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허정무 감독의 자신감 있는 얼굴 표정에서 오늘 경기를 말해준다. '오늘 한국은 최고였다' 

[관련기사] ▶ 허정무호


주영-성용-청용 'PKL 트리오' 떴다 

'화려한 복귀' 차두리, 경쟁자 상승효과 일으켜 

[사진=엑스포츠뉴스 DB]



정재훈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