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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힘들어도, 난 그 과정을 즐긴다' 대건고 명진영 감독

기사입력 2009.08.05 15:41 / 기사수정 2009.08.05 15:41

유기봉 기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2009 SBS 고교 클럽 챌린지 리그에서 대건고는 수도권 팀들이 속한 A조에서 가장 뒤에 순위를 올려놓고 있다. 성남의 풍생고, 서울의 동북고처럼 오랜 전통을 지닌 팀들과의 순위 경쟁은 이제 갓 창단된 팀에게 버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의 ‘꼴찌’라는 꼬리표가 미래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학년별로 기량 차이가 나는 유소년의 특성상 대건고는 그 중심이 1,2학년들이기 때문에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내일로 향하는 잠재력은 무한하다.

그 중심에는 어린 선수뿐만 아니라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다. 쉽고, 편한 길을 갈 수 있었지만 험난한 길을 선택함으로써 지금은 당장 힘들더라도 한발 한발 내딛는 과정을 즐기는 자.

인천의 미래를 여는 사람들 그 세 번째 시간으로 창단 2년째를 맞이하는 U-18 대건고 명진영 감독님과의 만남을 가졌다.

청주상고(現 대성고) 코치를 시작으로 백암중 코치, 감독을 거치면서 유소년 지도자로 명성을 쌓은 명진영 감독님은 어린 선수들에게 지도자가 아닌 교육자이자 아버지로 다가가고 있었다. 축구를 가르치는 지도자를 넘어 인성을 가르치고, 따뜻한 가슴으로 아이들을 안아주는, 그야말로 그라운드의 덕장이다.

인천 그리고 대건고, 새로운 도전

나 또한 부상으로 오랜 기간 고생을 하였다. 무릎 연골 수술만 독일과 일본 그리고 국내에서 총 세 번 했었는데, 회복이 잘 안 되어 결국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청주에 있는 청주상고(現 대성고)에서 처음 코치생활을 시작으로 용인축구센터가 만들어질 당시 그곳에 합류해 코치, 감독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지도자 경험을 쌓게 되었다.

용인에서 5년 정도 몸을 담고 있었는데, 그즈음 재밌는 상황이 내게 일어났다. 당시 허정무 감독님께서 전남 감독으로 계셨을 때, 광양제철고 코치직 제안을 받았다. 아마 용인에서의 인연으로 그런 좋은 기회가 온 듯 싶었다. 그리고 부산에서도 중학교 팀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었다. 여기에 인천에서도 고교팀을 맡아달라고 하는 등 무려 세 군데에서 동시에 나를 원하는 셈이 되었다.

그때 ‘아, 내가 이번에 움직여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자로서 한발 더 내딛고 싶기도 했고, 나 자신에게 동기유발을 시키고 싶기도 했었다. 다만 어느 곳을 선택하느냐가 문제였다.

물론 아주대 시절부터 대우를 거치면서 안종복 사장님이나 김석현 부단장님과 인연을 맺어왔었고,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시고, 믿어주시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 부분이 작용해 인천으로 온 계기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창단팀이라는, 프로 산하 고교 팀이라는 메리트가 나에게 좀 더 다가왔다. 내 이전에 누구도 없는 팀을 새롭게 만들어본다는 의미가 컸었던 것 같다.

선수는 성실함과 기술을, 지도자는 기다림을

아이들한테 성실해야 한다고 매일 강조해서 말한다. 성실이란 말이 막연하긴 하지만 평소 생활할 때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 선수들은 공부에 대한 부담을 다소 느끼고 있는데, 학생임에도 공부를 등한시하고 훈련에 매진하다 보니까 학교생활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어찌되었던 이 또한 그 시기에 거쳐가야 할 시간이기 때문에 공부에 있어서도 성실해야만 한다.

운동이든, 공부든 성실하게 한다면 그 결과물은 분명히 나중에 자신에게 좋게 다가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기술적인 부분은 프로 선수들도 기초가 부족해 나타나는 경향이 아주 많다.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실수를 한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그만큼 기초를 다지지 못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꾸준히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반증이다.

물론 그라운드 사정이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실수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될 기본기나 기술 등 부족했던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기본기를 잘 다져놓아야 프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기본이 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기초가 부족하고, 기본기가 약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 부분을 많이 강조한다. 기본기는 자기가 축구화 끈을 풀 때까지, 축구화를 벗는 순간까지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큰 자산일 수밖에 없다고.

대신 지도자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선수가 한번 더 생각을 하고, 스스로 할 수 있게끔 현장에서 잘 유도해야만 한다. 이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지만 얼마만큼 아이들을 기다리느냐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도자가 한 선수에게 어떤 기술이나 전술을 요구하는데 계속 그라운드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지도자도 감정이 있기 때문에 나쁜 소리도 하고, 질책도 하게 된다. 물론 칭찬도 해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 보면 큰 목소리가 더 먼저 나오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교과서적인 축구, 정립된 축구가 아닌 운동장에서 순간순간 생각지도 못하는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생각지도 않은 패스를 한다거나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고교 선수들에게 기다림이란 그렇게 여유롭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아이들이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지도자가 인내를 갖고 지켜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왼쪽 가슴에 단 엠블럼을 소중히

1년차일 때, 작년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너희 옷 왼쪽 가슴에 인천 유나이티드가 붙어 있다, 대건고라는 학교가 붙어 있다. 그것을 가슴에 새겨 넣어야 한다.’라는 마인드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자긍심, 소속감 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대부분 우리 아이들이 타지에서 왔던 선수들이고, 갓 창단된 팀의 선수들이기 때문에 하나로 결속시키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다. 각자 개인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에 팀을 맞춰가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바는 나의 소속감, 자신감, 팀에 대한 애착, 이런 것들이다. 올해 이런 부분이 많이 향상된 듯 보여 이를 내년까지 계속해서 중점적으로 강조하다 보면 여러 기술적인 부분도 충분히 같이 향상될 거라 생각한다.

아직까지 아이들이 내 뜻을 전부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고, 소속감 이야기를 하면 잘 모르는 듯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것 같고, 또 현장에서 볼 수 있기도 한다.

자신보다 후배들 챙기는 모습, 선배들 게임 뛰게 되면 스스로 가서 물을 따라주는 모습, 궂은일을 하는 모습 등이 이제 보이게 된다.

이런 것들이 작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창단팀에게 이런 변화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 이전에 해왔던 전통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배우려고 해도 누구한테 배울 수가 없는 부분이기에 이 아이들이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런 것들이 갖춰지면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전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가 한발 한발 내딛는 것들이 우리의 역사이고, 만들어가는 거라고 선수들한테 많이 얘기도 자주 한다.

지역인재 육성이 최우선

스카우트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선수를 키워 만들어내는 것보다 현재 더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천은 유소년부터 12세, 15세, 18세까지 체계적으로 완성되어 있어 앞으로 선수들을 지역 내에서 발굴해 프랜차이즈 스타로 육성하는 게 유소년 운영의 또 하나의 목표이기 때문에 이런 운영을 적극 활용해야만 한다.

유럽의 경우도 축구팀이 그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것처럼 인천도 기업에서 운영하는 팀이 아니고 시민구단이다 보니까 더욱이 그런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은 창단한 지 2년째이기 때문에 선수 구성을 위해서 스카우트에 큰 관심이 있는데, 이제 중학교에서 올해부터 졸업생이 배출이 되고, 12세도 만들어진 지 꽤 됐으니 앞으로는 인천에 있는 선수들만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어 외부에서 굳이 스카우트를 하지 않고도 선수 확보에 큰 어려움이 없을 듯 하다.

물론 좋은 선수가 있다고 하면 어디에서든 데리고 오는 것도 맞지만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은 집을 떨어져 멀리 생활하다 보면 정서가 불안해진다거나, 사춘기 시절을 겪으면서 방황을 하게 되는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가능하면 인천에 있는 선수들을 육성하는 팀 운영 목표를 계속 이어 나아가야만 한다.

프로스포츠 자체가 지역연고를 기반으로 다지려 하기 때문에 이런 체계를 잘 진행시켜야만 어렸을 때부터 장기적으로 ‘우리팀’이란 생각을 선수들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건고는 현재진행형

올해도 작년과 비슷하게 마지막에서 열심히 상대팀을 쫓아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4대0, 6대1로 크게 지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올해는 큰 스코어로 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1,2위 달리는 동북고나 풍생고에게도 4대3, 3대2 등 한점 차로 질 때가 더 많아졌다.

이렇게 아이들이 많이 경기력이 어느 정도 올라섰음에도 모르는 사람들은 대건고가 막바지 순위에 가고 있으니까 안 좋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팀을 맡고 있는 지도자로서 분명 결과뿐만 아니라 내용을 생각하고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 하지 않는다.

팀을 만들어 가는데 단시간 안에 어떤 것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점차 잘 다져가면서 어떤 시기가 되었을 때 목표했던 바를 이룬다면 후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이런 과정이 바람직하고, 올바른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작년보다 내용적인 부분이 좋아지다 보니까 올해 좀 더 다져서 내년에는 어느 정도 순위를 올려놓을 계획이다.

프로, 가깝고도 쉽게 닿지 않는 정상

이제 2년째를 맞이하고 있어 아이들에게 투자할 시간이 사실 부족했고. 지금 3학년은 3명뿐이라 앞으로 프로의 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장담할 수가 없다.

일본만 하더라도 유소년 시스템이 오래되었지만 어린 나이(6,7세부터)에 클럽에 들어와 그 팀이 속한 프로로 입문하는 선수는 고작 5%밖에 안 된다. 한, 두 명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니 현재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힘든 상황이다. 프로 산하 클럽이 프로로 갈 수 있는 제일 가까운 길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제일 가까워도 못 들어가는 선수가 더 많다. 가깝지만 문은 너무 좁기 때문에 이는 좀 더 고민을 해 봐야 한다.

이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게 된다. 지금으로 봐서는 대학으로 진학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학교 이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요즘 대학 축구가 평준화되었고, 대학가서도 운동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들이 가서 능력을 인정받고 자기를 원하는 팀에 가서 하는 게 제일 낫다.

그래야 경기를 계속 뛰면서 자기 발전을 더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프로무대를 다시 두드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눈높이보다 너무 높게 잡는다거나, 자기 기량보다 높은 팀에 간다면 경기에 나서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또한 슬럼프에 쉽게 빠지거나 자유로운 대학생활에서 좋지 않은 여러 가지를 접하게 되면서 선수로서 망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 본인을 필요로 하는 팀에 가서 경기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제일 중요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지도자는 축구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철학자이어야 하며, 교육자여야 하고,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명진영 감독님은 어린 선수들에게 잘못에 대해서는 엄하게 꾸짖으며, 떨어진 자신감을 북돋워주기 위해서는 따뜻한 가슴으로 그들을 안아준다.

비록 선수들이 머리가 크고, 반항이 심해지는 시기라지만 감독님의 눈에는 그저 사랑스런 아들들일 뿐이다.

자기 팀에 대한 소속감이나 자긍심 같은 가치를 아이들 가슴에 심어주고, 그래서 더 튼튼한 뿌리를 가질 수 있는 선수들로 만들고 싶다는 덕(德)을 갖춘 지도자, 그의 손에 맡긴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것을 기대하며 인천의 가까운 파란 미래를 상상해 본다.

[사진=명진영감독(c)김지혜 UTD기자 제공]



유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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