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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AFC 챔피언스리그, 이제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다

기사입력 2009.04.09 15:22 / 기사수정 2009.04.09 15:22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이제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수문장 피터 체흐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라이벌 리버풀에 역전승을 거둔 뒤 했던 말이다.

적지에서 3-1의 대승을 거두며 4강 진출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지만 만약 방심하고 안일하게 다음 경기에 임했다간 이후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축구에선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그 어떤 종목보다도 불확실성이 많은 스포츠인 축구는 약자의 이변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속출한다.

유럽의 챔피언스리그를 예로 들어보자. 1999/2000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바르셀로나(스페인)가 첼시에 1-3으로 진 뒤 5-1로 대승을 거둬 4강 티켓을 거머쥐었다. 2003/2004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데포르티보(스페인)가 AC밀란과의 8강 1차전에서 1-4로 패배한 뒤 2차전을 4-0으로 이기며 4강 진출에 성공했었다. AS모나코(프랑스) 역시 8강에서 당시 '세계 최강'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 1차전을 2-4로 패했지만 2차전에서 3-1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해 이후 준우승을 차지했었다.

가슴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2004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에선 성남 일화가 결승 1차전에서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에 3-1의 승리를 거두고도 2차전에서 0-5로 패하며 우승을 내주는 일도 겪었다.
 
최근 ACL에서의 K-리그 클럽들의 부진이 도마 위에 올랐다. ACL 조별리그 전체 6경기 중 절반인 3경기가 치러진 현재, K-리그를 대표해 출전한 네 팀은 모두 고전 중이다. 수원 삼성이 G조에서 득실차에서 앞선 불안한 1위를 지키고 있고, 2무 끝에 간신히 첫 승을 거둔 포항 스틸러스는 H조 2위를 달리고 있다. 똑같이 1승 2패를 기록 중인 FC서울과 울산 현대는 각각 F조 3위, E조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J리그 네 팀 중 세 팀이 1위, 한 팀이 2위인 것에 비하면 부족함이 느껴지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진정한 K-리그의 강자라 할만한 이들 네 팀이 지난해 ACL에서의 K-리그 클럽의 부진을 씻어주길 바랬던 상황은 팬들의 실망감을 더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ACL 조별리그는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 남은 3경기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대역전극 또한 벌어질 수 있다. 특히 K-리그 클럽들은 ACL 조별리그에서 여러 차례 '역전의 신화'를 일궈냈었다.

K-리그의 ACL 역전 드라마 열전



2004 ACL에 출전했던 성남은 당시 G조에 속해 4차전까지 요코하마 마리노스(일본)에 골득실에서 4골이나 뒤지고 있었다. 당시 두 팀의 상대전적은 1승1패에다 골득실까지 같아 전체 조 골득실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성남은 홈에서 페르시크 케디리(인도네시아)를 맞아 김도훈(現 성남 코치)이 해트트릭을 몰아치며 15-0의 믿을 수 없는 기록적 대승을 거둔다. 이 경기로 성남은 골득실에서 요코하마를 단숨에 4골 차로 따돌리며 8강에 올랐고 이후 승승장구해 결승까지 올랐다.

2006년에는 전북 현대가 더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일궈냈다.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ACL에 출전한 전북은 당시 J리그 우승팀 감바 오사카와 중국리그 우승팀 다롄 스더와 조별리그 E조에 속했다. 홈경기 1차전에서 오사카에 1-2로 뒤지다가 후반 40분 김형범의 연속골로 3-2로 극적인 승리를 따낸 전북은 2차전 원정경기에서 다롄에 0-1로 패배했고, 이후 다낭(베트남)에 2연승을 거뒀다.

오사카와의 원정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전북은 결국 1, 2위를 가리는 마지막 경기에서 다롄 스더와 다시 만났다. 전북은 후반 13분 선제골을 내주며 0-1로 뒤지며 위기에 몰렸지만 이후 김형범의 2골에 힘입어 3-1로 승리, 극적으로 8강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때부터 전북은 '역전의 명수'란 별명을 얻으며 매 라운드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상하이 선화(중국)와의 8강 1차전에서 0-1로 뒤진 뒤 2차전에서도 선제골을 내주며 패색이 짙던 전북은 제칼로와 염기훈, 정종관의 연속골로 믿을 수 없는 4-2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K-리그의 울산을 만났다. 1차전에서 2-3으로 지며 '여기까지'라고 생각됐지만 2차전에서 4-1로 승리하는 뒷심을 발휘하며 극적인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서 전북은 알 카라마(시리아)와 만나 1차전에서 2-0의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2차전에서 2골을 허용하며 자칫 눈 앞에서 우승컵을 놓칠 뻔했지만 후반 41분, 제칼로가 우승을 확정짓는 골을 터뜨리며 결국 '2003년 ACL 출범 이후 K-리그 클럽의 첫 아시아 제패'란 영광을 얻었다.

2007년에는 성남이 또 한 번 역전 신화를 일궈냈다. 조별리그에서 성남은 산둥 루넝(중국)을 상대로 1-2 역전패를 당한 탓에 4차전이 끝났을 때만 해도 자력 8강 진출이 어려운 벼랑 끝 위기까지 몰렸었다.

그러나 5차전에서 산둥이 무승부를 거두며 희망의 불씨를 살렸던 성남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산둥을 다시 만난다. 반드시 두 골 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던 성남은 산둥을 3-0으로 완파하며 극적으로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처럼 K-리그 팀들은 짧은 ACL의 역사 속에서도 수많은 역전 드라마를 써나가며 K-리그의 위상을 아시아 무대에 떨쳤었다. 이번 ACL에 진출한 K-리그의 네 팀은 비록 시즌 초 리그와 ACL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긴 하나 전통적인 K-리그의 강자이자 좋은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저력 있는 팀들이다.

2009시즌을 앞두고 K-리그는 아시아쿼터제와 국내 경기 불황으로 인한 원화 약세 현상, K-리그 클럽들의 긴축재정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스타 플레이어의 유출을 겪었다.

이는 ACL 진출 클럽들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서울을 제외한 구단들은 선수단의 큰 변화를 맞이해야 했었다. 2008시즌의 전북이 그러했듯이 선수단의 커다란 변화는 시즌 초반의 조직력, 특히 수비 전술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감독의 새로운 전술적 구상도 완전히 녹아내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과 같이 젊고 ACL을 처음 겪는 경우엔 쉽지 않은 경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곧 전력의 안정화를 꾀하고, 승리를 통해 점차 자신감을 되찾으며 전술적 완성도를 높인다면 남은 ACL 조별리그 일정에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긍정론에 더 힘을 싣고 싶다. 그만큼 이들 네 팀이 가진 강팀으로서의 저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네 팀이 최근 몇 년간 시즌이 진행될수록 기세를 올리는 '슬로우 스타터'의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조별리그만 잘 지나갈 수 있다면 K-리그 팀들은 토너먼트에서 그 어떤 결과도 낼 수 있다. J리그가 ACL을 2연패하며 아시아무대에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금, K-리그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이들 네 팀에게 자포자기 섞인 비난보다는 격려 담긴 비판과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줘야 할 시기가 아닐까.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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