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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기자의 격투 e사람] '거목' 김수홍, "이노키와 자이언츠와의 대결이 기억에 남아" [1부]

기사입력 2009.03.10 18:33 / 기사수정 2009.03.10 18:33

변성재 기자



[엑스포츠뉴스=변성재 기자] 

- 대한프로레슬링협회장 김수홍을 만나다

프로레슬러 김수홍이란 이름을 들어 보았는가? 국내 프로 레슬링 마니아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일본의 40대 프로레슬링 마니아라면 김수홍이란 이름을 기억한다.

유도 베이스 바탕으로 큰 덩치에 빠른 스피드로 '일본의 격투 대부' 안토니오 이노키와 WWF의 '4대 불가사리' 故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대결한 프로레슬러이기 때문이다. 또한, 김수홍은 동양권에서는 보기 드문 거구의 레슬러였다. 김수홍은 해외 유학파 출신으로 2세대 한국 프로 레슬러다. 그의 동료로는 '슈퍼 드래곤' 이왕표와, '슈퍼 스트롱머신 2호' 역발산, 임대수가 있으며, 현재는 이왕표와 역발산이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현재, 한국 프로레슬링은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번 21일 해외 유명 프로레슬러가 참가하는 신한국 프로레슬링의 흥행을 시작으로 5월 5일 어린이날 흥행을 준비하고 있는 이왕표의 WWA와 '활화산' 최태산이 이끄는 AWF가 차례대로 흥행을 펼칠 예정에 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자신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날씨가 쌀쌀하죠. (웃음) 사단법인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 11대 회장 김수홍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는 어떤 곳인가요?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는 1957년 故 김청수 선생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 故 역도산 선생의 허락을 받고 한국에서 창설됐습니다. 1966년 사단법인 대한프로레슬링협회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 1세대 프로레슬러 김일, 장영철, 천규덕 선생님 등으로 시작하여 이왕표, 역발산, 임대수, 김수홍 등이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 출신 선수였습니다

-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 소속 선수를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계하신 김일, 장영철, 그리고 천규덕 선생님들은 물론이며, 이왕표, 역발산, 임대수, 김수홍 등이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 출신입니다. 현재는 이왕표 회장은 한국의 프로레슬링 단체인 WWA를 이끌어 나가고 계십니다. 그 밖에도 왕춘, 김종왕, 한태윤, 이수일, 최태산, 등이 현재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 소속입니다.



['일본 격투 대부' 안토니오 이노키와 함께, 아래는 89년도 등촌동 KBS 홀에서 열린 세계 프로레슬링 대회에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전 사진]

- 프로레슬러 데뷔 연도와 정확한 해외 및, 국내 시합 리코더를 부탁드립니다

1980년도 3월에 서울에서 데뷔했습니다. 일본 원정 시합까지 포함하면 약 650전이 넘는 것 같습니다. (웃음)

- 자신의 링 네임은 무엇이었나요?
   
'거목' (巨木) 입니다. 풀이하자면 큰 나무입니다. 일본 원정 때, 제 모습을 보신 팬들과 신 일본 프로레슬링 관계자가 지어준 링 네임입니다. 해외 원정 때 내 이름 앞에 항상 '거목'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한국 프로레슬링, 그리고 일본 프로레슬링 세계에서 큰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 어린 시절 삶은 어떠했나요?

어린 시절 저희 부모님께서 정미소와 소금 관련된 사업을 하셨습니다. 시간이 나면 부모님을 도와드리면서 살았습니다.

- 어린 시절 김수홍은 어떤 소년이었습니까?

전라남도에서 태어나서 학창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소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복싱과 유도, 그리고 몸 가꾸는 보디빌딩에 취미가 있었죠.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스터 전남 학생부 준우승에 올랐습니다.

- 훗날 소년 김수홍은 프로 레슬러가 되었습니다. 누구의 영향에 프로 레슬러가 되셨나요?
 
지금은 타계하신 김일, 장영철 선생님의 시합을 TV로 시청 후, 나도 모르게 반해버려 프로레슬러의 꿈을 가지게 됐습니다. 구체적인 계기는 1세대 프로레슬러 최규옥 회장의 권유로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 70년도 한국 프로 레슬링은 어떤 스포츠였습니까?

국민이 살아가는데 희망보다 절망을 크게 느낀 시절이었습니다. 암울했다고 해야 하나요?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큰 교훈을 주는 국민 스포츠였습니다.

- 프로 레슬러 김수홍이 되고 나서 삶은 어떠했나요?

운동이 좋아서 시작한 인생이니 삶은 행복 했겠죠? (웃음)



[김수홍 회장을 찾아온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 카이엔타이 도장 출신의 프로레슬러 김남석(左)]

- 한국에서 프로 레슬러로 데뷔한 이후, 일본에 진출했다고 들었습니다

1980년 3월 데뷔 후, 운이 좋게 1984년도 '일본의 격투 대부' 안토니오 이노키가 자신의 단체인 신 일본 프로레슬링에 초청해 연간 200회 시합을 했습니다. 4년 동안 일본에 체류했으니, 따지고 보면 850회가 넘네요.
  
- 자신이 느낀 일본 프로 레슬링은 어떤 스포츠였나요?

선수들이 시합에 임하는 자세를 보았습니다. 역시 프로더군요. 선수들의 생활이 보장되는 스포츠, 그것이 바로 일본 프로레슬링이었습니다. 일본에 넘어가 시합을 해보니 속된말로 '할 맛난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 혹시 일본에서 프로 레슬링과 관련된 기억나는 일화가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보디빌딩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80년도 당시 동양 프로레슬러는 근육이 없고 민자 몸매 소유자였습니다. 해외 미국, 캐나다 프로레슬러는 큰 덩치와 큰 근육을 자랑했지요. 신 일본 프로레슬링에 유학을 떠났을 때, 연습생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두 명은 바로 신 일본 프로레슬링의 간판스타 '검은 카리스마' 초노 마사히로와 전 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 '프로레슬링 마스터' 무토 케이지입니다.

그들이 매일 나를 찾아와 같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초노는 뺀질되기 바빳습니다. (웃음) 그 반면에 무토는 끈기 하나는 최고였지요. 현재는 두 선수 모두 성장해서 기분은 좋습니다. 비 정식 리코더 경기지만 무토 케이지는 나와 데뷔 전을 치렀습니다. 외국인이라 정식 리코더에 올라갈 수 없었지만, 훗날 84년 10월 5일 사이타마에서 초노와 무토는 정식 데뷔전을 치르게 됩니다.

- '4대 불가사리' 故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일본 격투 대부'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결했다고 들었습니다

어휴…. 앙드레요? 말도 마세요. 기자님이 생각해보세요. 앞에 산이 있는데 그게 움직인다고요. 태그 팀으로 시합했는데 정말 큰 덩치에 무너지기 일쑤였습니다. 2미터가 넘고 체중이 180킬로가 넘는 거구인데, 어느 천하장사가 이기겠습니까? 지금이야 생각하면 그때 무슨 '깡'으로 싸웠지? 하고 생각합니다. (웃음)

안토니오 이노키와는 89년도 한국에서 시합을 가졌습니다. 물론 메인이벤트를 장식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러와 시합을 가져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아쉽게도 이노키에게 '엔즈기리'(연수배기)라는 기술로 목에 맞아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2부에서 계속 됩니다]

김수홍의 약력

전라남도 출생

용인대 유도학과 졸업

용인대 경영대학원 석사 수료

1980년 3월 한국에서 프로레슬러 데뷔

1984년 일본 프로레슬링 유학

1987년 4년간 신 일본 프로레슬링 시합 (약 600회)

1989년 '일본 격투 대부'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결 (패)

2006년 6월 21일 제11대 사단법인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장 취임
 

[사진 = 김수홍 (C) 엑스포츠뉴스DB 변광재 기자]



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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