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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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의 탄생에 대한 진실게임

기사입력 2009.01.28 10:46 / 기사수정 2009.01.28 10:46

손현길 기자

[엑스포츠뉴스=손현길] 프로야구는 어떻게 해서 탄생했을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내용이며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프로야구의 탄생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시 군사정부의 '우민화 정책' 의 일환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했다”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가장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컬러TV의 등장이었다. 컬러TV의 등장은 TV로 무엇인가를 보고 싶다는 새로운 욕구를 대중들에게 불러일으켰다. 즉, 프로야구는 당시의 시대적 환경 변화에 대한 대중의 욕구 충족과 정부의 정책이 어우러져 탄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프로야구가 탄생하는데 누가 가장 헌신적인 노력을 했을까? 다수의 사람들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하지만 현 MBC 야구 해설자인 허구연의 한 저서에 따르면 단연 프로야구 출범에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컬러TV의 등장과 함께 문화방송의 사장으로 취임한 이진희 씨이다. 

그는 컬러TV의 방송으로 야구를 중계하는 것이 프로그램 시청률을 높임과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콘텐츠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야구는 낮에 방송이 가능하고, 큰 제작비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문화방송 사장은 프로야구의 출범을 기획했고, 정부의 승인을 얻어 출범이 결정되었다.

프로야구의 출범의 결정으로 가속도를 붙인 이진희 전 문화방송 사장은 먼저 프로구단 창단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진희 사장은 일본 프로야구의 지역 연고제를 본 따 우리나라에 도입시키기로 하고, 당시 MBC 관리이사였던 김병주 씨를 통해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만나 프로야구 출범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생각만큼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프로야구에 참여하겠다고 한 기업은 롯데와 삼성, 그리고 MBC 뿐이었다. MBC는 서울을 연고로 두었고 롯데는 부산, 삼성은 대구를 연고로 했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프로야구에 관심이 없었고 프로야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6개의 팀이 필요했다.

하지만 문화방송의 꾸준한 설득 끝에 호남에서는 해태가, 인천에서는 삼미그룹이 프로구단을 창단하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OB가 대전을 연고로 참여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듯 했지만 OB는 3년 후 서울로 입성하겠다는 조건을 달고 난 뒤에서야 프로야구에 참여했다.(그 이유로 현재 LG와 두산이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다.)

어렵사리 6개의 팀을 갖춘 뒤 드디어 1981년 12월 11일 오후 2시 롯데호텔에서 프로야구 창립총회가 열렸다. 프로야구가 대한민국에 창립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현재 골든 글러브상 시상식은 매년 12월 11일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프로야구 창립을 기념하기 위한데 있다.

이후 문화방송은 프로야구 경기를 주중과 주말에 프로그램으로 편성해서 방송했고, 국민들의 관심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프로야구는 점차 국민 스포츠로 자리메김하기 시작했고, 많은 우여곡절과 변화 끝에 오늘날 국민스포츠로 자리메김하기에 이르렀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프로야구의 탄생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야구가 정부의 우민화 정책으로 탄생했든 컬러TV의 도입으로 인한 콘텐츠 제작의 일환으로 탄생했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지금 프로야구가 우리들 곁에서 함께하며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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