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이견이 없을, 12월 개봉작의 주인공 중 가장 많은 이름이 거론된 이는 배우 하정우다. 12월 20일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이 개봉했고, 27일 '1987'(감독 장준환)까지 연말 기대작으로 꼽히는 두 편의 신작에 모두 이름을 올린 그다.
'신과함께'는 24일 오후까지 300만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고, 곧 공개될 '1987'도 앞선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어 흥행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다가오는 12월 마지막 주에는 극장에서 하정우의 얼굴이 나란히 자리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한 주 간격으로 개봉하는 두 작품의 홍보 일정을 함께 소화하고 있는 하정우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당장 눈앞의 일정만 봐도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금은 '신과함께' 무대 인사를 진행하고 있고, 새해 첫 주는 '1987' 무대인사가 예정돼있다.
'신과함께' 개봉 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는 "두 작품의 이야기 자체와 결의 방향은 두말할 것도 없고, 타깃층 역시 다르죠. 관객이 느끼는 재미 역시 다를 것이라 생각해요. 각자의 길이 있겠죠?"라고 특유의 재치 있는 화법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12월 12일과 13일, 연이어 열렸던 두 작품의 언론시사회를 준비하고, 이어질 꽉 찬 일정을 대비해 미리 혼자만의 시간도 가졌다.
"'신과함께', '1987'의 시사회가 이틀 연속으로 열렸어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하기도 하죠. 올림픽 결승전을 연속으로 두 번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그래서 얼마 전에 열흘 동안 하와이에 다녀왔거든요. 제가 '신과함께' 촬영이 끝나고 '1987'을 찍고, 'PMC'까지 찍었으니 2년 밖에 안됐다고 하지만 사실 기억이 좀 먼 것이잖아요. 하와이에서는 260km를 걸었어요.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고, 또 일주일차로 개봉하는 두 작품 사이에서 제가 어떤 태도를 취하면서 어떻게 얘기를 해야 될지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었죠."
'신과함께'에서는 망자의 환생을 책임지는 삼차사의 리더이자 변호사 강림 역을, '1987'에서는서울지검 공안부장 최환 검사 역을 맡아 연기했다.
두 작품의 연이은 개봉에 신기했던 마음은 잠시였다. 하정우는 "'신과함께'와 '1987' 사이를 오가는데, 저 혼자만 가운데 있는 느낌이 들면서 어디에도 감정이 가지 않는 거예요. 어느 편에 서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똑같은 스코어가 나오는 게 좋은 건가?' 이런 생각만 계속 맴돌더라고요. '신과함께' 팀에 가면 '1987' 때문인지 저를 의식해서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고, 반대로 '1987' 팀에 가도 마찬가지고요. 뭔가 고립된 느낌이 들었어요"라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더 큰 시간들이다. 하정우는 "연말에 제가 출연한 두 작품이 극장에 걸려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고, 또 기억에 남을 만한 나날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같은 소속사(아티스트컴퍼니)의 정우성이 출연한 '강철비' 언급도 함께 덧붙였다.
'신과함께'는 한국 영화 최초로 1,2부가 동시에 제작된 점을 비롯해 한 편당 17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다.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원작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진기한 캐릭터는 강림 캐릭터와 합쳐져 스크린에 구현됐다.
하정우도 "(두 캐릭터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원작에서는 진기한이 재판만 진행을 하고, 강림은 이승에 내려와서 원귀 사건을 쫓아가잖아요. 두 인물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합쳐야 하는데, 연기 톤을 잡기가 힘들었죠. 이승에서는 생활 톤으로 대사를 했는데, 그게 더 이상한 거예요. 두 캐릭터를 합친 것 같은 느낌이 나는 거죠. 이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도리어 역작용이 난 거예요. 방향을 다시 틀었죠. 촬영 기간이 길어서,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심플하게 해야겠다', '가이드의 기능을 살려놓고 캐릭터를 가져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색깔로 따지면 검은색을 떠올린 거죠. 그렇게 절제해서 사족을 다 없애고 표현해야겠다고 하니까 저승과 이승에서의 모습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CG 효과가 대부분을 차지했던 만큼, 그린스크린 위에서 연기를 펼치며 다른 작품보다는 몇 배는 더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귀 빨개지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라고 웃어 보인 하정우는 "'신과함께'를 1년 동안 찍고, '1987'에 가서 현실 연기를 하는데, 그게 진짜 재밌는 거예요"라고 다시 한 번 시원한 웃음과 함께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신과함께'를 볼 이들에 대한 당부도 함께 전했다. 하정우는 "진기한 캐릭터나, 웹툰에 나오는 살살이꽃 같은 콘텐츠가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신 것 같아요. 하지만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 영화는 어떤 거대한 스펙터클 어드벤처 무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방향이었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드라마에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신과함께'는 애초부터 자홍(차태현 분)의 감정으로 시작해서 수홍(김동욱)의 감정이 결합돼 터지는 영화거든요. 오히려 '현실감이 있을까 없을까' 매의 눈으로 보시면 관람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아이언맨'이나 '트랜스포머'를 볼 때 'CG컷이 좀 이상한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지는 않잖아요. 한국영화라서 CG에 대해 굉장히 어마어마한 기준을 두고 보는 부분이 있을텐데, 작품 자체를 온전하게 따라가면서 편하게 즐기시면 오히려 '신과함께'가 가진 매력을 많이 가져가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정우의 2018년 일정도 꽉 채워져 있다. '신과함께' 2부와 'PMC' 등 두 편의 개봉을 앞두고 있고, 신작 '월식' 촬영도 이어질 예정이다.
"작품 선택을 즉흥적으로 하기는 어려워요. 많은 부분에서 주연 배우로 해야 될 몫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계획적으로 선택하고 있죠"라고 전한 하정우는 "제 성격이, 안 되는 것을 미리 재단해서 '안 돼, 못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해볼까? 안 되는 걸 어떻게 극복해야 되지' 그런 성향인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2015년 개봉한, 자신이 메가폰을 잡았던 '허삼관'을 통해 배운 점과 앞으로의 연출 계획, 제작 소식이 알려졌던 '앙드레김'이 잠시 제작 보류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앙드레김'은 더 시간을 갖고 시나리오를 개발해보자는 쪽으로 얘기가 됐어요. 관객들과 같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수준이 되기까지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서 잠정 중단한 것이거든요. '허삼관'은, 제가 감독과 배우를 동시에 해냈던 작품인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19년 동안의 표류를 현실화시켰다는 데서 제게는 정말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작품이에요. 영화를 대할 때의 신중함도 생겼고, 배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죠. 연출 도전이요? 최근에 아이템을 정했어요. 운명처럼 다가오더라고요.(웃음) 작가를 섭외해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시나리오를 다듬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려고 해요."
고민하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금처럼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고도 얘기했다. 일본에서 50년 가까이 변호사로 일해 온 주인공이 만 명이 넘는 의뢰인을 만나면서 깨달은 운의 진정한 이치를 담은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 이야기를 꺼내며 "남들에게 원한 살 일을 하지 않고, 은혜를 갚고, 괜한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양보하고 마음을 쓰는 이런 기본적인 룰들만 지켜나간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을 이었다.
"보이지 않는 저만의 슬럼프는 늘 있죠. '롤러코스터'와 '허삼관'을 찍을 때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어려웠고,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매일매일 기도하며 발버둥 쳤던 것 같아요. 그 시간이 온전한 즐거움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작품이 흥행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천천히 다가오더라고요. 제가 왜 이 작품을 찍게 됐는지에 대해서요. 그 때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던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고, 집중하게 되고 하는 마음이 더 많이 생겼죠. 아마 제게 또 슬럼프가 온다면, 그땐 영화배우를 은퇴하는 날이 온 것일 거예요.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요. 그렇지만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협업, 새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용솟음치고 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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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