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2.26 15:48 / 기사수정 2008.12.26 15:48
[유럽축구 놈놈놈] 12화 -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유망주편
기대를 모았던 우루과이산 황소, 에디슨 카베니
[엑스포츠뉴스=권기훈 기자] 유망주. 어찌 보면 미래가 유망하고, 현재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한계가 있는 선수들이고, 어찌 보면 이 선수의 앞날에 따라 클럽의 미래가 변할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다.
유벤투스의 지오빙코, 데 첼리에, 밀란의 파투, 인테르의 발로텔리 등은 미래의 모습에 따라 유벤투스와 이탈리아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만한 유망주이지만, 대부분의 ‘유망주‘들은 소속팀의 프리마베라(청소년팀)에서 뛰면서 실력을 갈고닦을 뿐이다.
여기, 한 명의 ‘유망주’가 있다. 우루과이에서까지 많은 돈을 들여 팀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힘들게 데려왔지만,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한 선수. 바로, 팔레르모의 에디슨 카바니이다.
어린 시절, 그리고 'El Tronco'
카바니는 1987년 2월 14일. 우루과이에서 태어났다. 12세 전까지 축구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12세에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네비오로 이사 가면서 지역 클럽인 다누비오 FC에 입단한다.
2000년부터 다누비오의 유스 시스템에서 성장한 카바니는 2006년, 처음으로 1군 선수단에 이름을 올리고 정규 주전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1군으로 올라온 시즌, 카바니는 25경기에서 9골을 집어넣는 좋은 활약으로 "El Tronco"(황소)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다- 그리고 유럽의 구애
06-07시즌, 우루과이의 다누비오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카바니는 곧, 우루과이 20세 미만 대표팀에 소집된다.
곧, 2007년 1월, 남미 청소년 선수권에 백넘버 9번을 달면서 주장 완장을 차고 핵심 선수로 우루과이를 위해 뛰게 된다. 이 때, 유럽의 많은 스카우터들은 이 대회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고, 카바니는 브라질 대표로 뛴 알렉산드레 파투 등을 제치고 9경기에서 7골을 집어넣으면서 최고의 선수에 꼽혔다.
카바니의 환상적인 모습을 본 유럽의 대형 클럽들은 곧, 이리저리 카바니를 노리기 시작하였다. 당시, 가장 큰 관심을 보인 클럽은 역시나 레알 마드리드, AC밀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럽의 빅 클럽들이였고, 리옹과 세비야까지 겹치면서 엄청난 경쟁이 펼쳐졌다.
하지만, 카바니는 이탈리아의 중형 클럽인 팔레르모를 선택하였다. 당시, 스포츠 디렉터인 리노 포스키는 카바니를 데려오면서 자신의 인생 최고의 성공작이라면서 기뻐하였고, 잠파리니 구단주 또한 만족감을 나타내면서 좋아하였다.
팔레르모에서 데뷔. 이보다 좋을 순 없다
겨울 이적 시장 마지막 날, 팔레르모로 합류하면서 떠오르는 신성이라는 평가를 받은 카바니는, 약 두 달간 이탈리아의 축구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훈련에 매진하였다. 결국, 2007년 3월 11일, 세리에A 28라운드에 첫 데뷔전을 가지게 된다.
이 데뷔전에서 카바니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된다. 피오렌티나의 수비수가 헤딩으로 걷어낸 볼을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에서 바로 한 번에 엄청난 발리슛으로 골문을 흔들었고, 이 골은 다음날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하게 되었다. 특히, 반 바스텐이 1988년, 유에파 컵 결승전에서 기록한 골과 거의 흡사하면서, 반 바스텐의 재림이라는 평가까지 받게 되었다.
당시, 팔레르모는 인테르, 밀란, 로마 등 강팀을 제치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핵심 공격수 아마우리의 부상으로 인해 점점 페이스가 떨어지고 있는 시점이였다. 하지만, 카바니의 첫 골로 인해 다시 한번 기대감을 가지게 하였다.
우루과이산 즐라탄? 하지만…
센세이션한 데뷔전으로 인해, 반 바스텐의 재림, 우루과이산 즐라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카바니였지만, 06-07시즌, 결국 7경기 2골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그다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07-08시즌이 시작되자, 문제는 더더욱 커졌다. 남미 청소년 선수권에서 보여주었던 화려한 득점력은 곧 사라졌고, 골 결정력은 순식간에 둔화하였다. 아직 어렸던 카바니는, 골 결정력이 둔화하자, 자신감을 잃어버렸고, 곧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계속해서 어이없는 슈팅을 날려대었고, 골을 기록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공격에만 집착하였다. 하지만, 무리한 욕심으로 인한 슈팅은 결국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일쑤였고, 보다 못한 팔레르모의 팬들은 분노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보다 못한 콜란투오노 감독은 4-3-3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카바니를 오른쪽 윙 포워드로 두는 강수를 택하였다. 하지만, 이는 더더욱 악수가 되었고, 오른쪽 윙 포워드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 카바니는 더더욱 헤매게 되었다.
결국, 카바니를 끝까지 키우기 위한 팔레르모의 몸부림으로 인해 33경기에 출전하긴 하였지만, 단 5골에 그치면서 최악의 시즌이 되고 말았다.
당시, 우루과이의 감독은 팔레르모는 카바니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면서, 그가 자신의 자리를 찾을때까지 국가대표에 소집하지 않을 거라고 통보까지 하였다.
이적설, 하지만 구세주 발라르디니
자신에게 얹어진 높은 기대치를 거의 커버하지 못한 카바니는, 결국 08/09시즌 시작 전, 많은 클럽에 의해 이적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리옹, 로마와 라치오, 레알 마드리드 등, 세계적인 클럽들이 카바니를 노렸고, 카바니 또한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카바니 영입을 주도하였던 포스키 단장은 절대 카바니를 팔지 않았고, 잠파리니 구단주 또한 카바니는 언터쳐블이라면서 팔지 않는다고 천명하였다.
결국, 카바니는 08-09시즌에도 팔레르모에 잔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콜란투오노 감독 휘하에서 윙포워드로 뛰면서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만 하였다. 하지만, 08-09시즌 단 1경기 종료 후 콜란투오노가 경질되자, 카바니에게는 드디어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였다.
2라운드부터 팔레르모의 지휘봉을 잡은 발라르디니 감독은 4-3-1-2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카바니의 저조한 골 결정력을 다른 공격수인 미콜리에게로 돌리고, 카바니는 활동량을 바탕으로 이타적인 플레이를 하라는 엄명으로 이어졌다.
골 결정력에 있어서 자신이 없던 카바니는 곧, 이타적인 플레이를 하면서 팀에 녹아들기 시작하였다. 좋은 위치에서 자신보다 팀원을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조급한 마음이 사라지자, 자신에게도 기회가 많이 찾아오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카바니의 골 결정력은 절대로 좋다고 말할 수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뛰는 모습이 안정감이 생겼고, 여유로운 플레이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결국, 카바니는 이번 시즌, 16경기에 출장하면서 5골을 기록하면서 미콜리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를 달리고 있다.
아직, 카바니에게 초창기부터 얹어졌던 높은 기대치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발전해나가는 모습은, 팔레르모의 팬들에게 조금씩 희망을 주고 있다.
[사진=카바니 ⓒ팔레르모 구단 공식 홈페이지, 그림=ⓒ킹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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