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황성운 기자] “왜 숨었느냐고요? 절대 숨지 않았어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의 발언이) 의도치 않게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을까 걱정됐을 뿐이에요. 그런데 진실과 다른 이야기가 많고, 저를 비겁하게 몰아가더라고요. 더 버티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았어요.”
장훈 감독이 입을 열었다. 일명 ‘조덕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던 영화 현장을 지휘했던 감독이다. 사건을 둘러싼 양측의 발언과 논쟁을 비롯해 여러 정보가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유독 감독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당시의 상황은 없었다. 당연히 감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졌다. 지난달 30일 어렵게 장훈 감독을 만났다. 그는 “저 또한 참담한 시간이었다. 사실이 아닌 게 사실처럼 포장되고 있는데 이를 바로 잡고 싶다”고 취재진 앞에 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2015년 영화 촬영 중 조덕제가 상대 여배우의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졌다는 것. 여배우는 합의되지 않은 것이라며 고소했다. 이런 조덕제의 강제추행치상 혐의에 대해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열린 2심에서는 조덕제에게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 그리고 조덕제는 즉각 상고와 함께 언론을 통해 실명을 공개하면서 적극 대응했다.
# 문제의 13신...“연출에 따랐다”(조덕제) vs “합의되지 않은 것”(여배우)
조덕제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감독의 지시(디렉션)에 따랐다고 강조하고 있다. 옷을 찢는 것 역시 사전에 약속됐다고. 반면 여배우 측은 사전 동의는 없었다고 맞서고 있다. 감독은 이 신에 대해 “캐릭터를 설명하는 중요한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조덕제는 의처증이 심하고 정신편력이 있는 캐릭터. 그리고 아내를 처절하게 겁탈하는 신이다. 여배우에게서는 상습 폭행을 당하는 아내의 모습이 표현돼야 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과감하게 해라” “사육하듯 해라” “마음대로 해라” 등의 발언은 장 감독이 직접 한 게 맞다. 또 옷을 찢을 것이라는 사전 동의가 없었다는 여배우의 주장에는 “처음에 상의와 속옷 사이에 민소매 같은 걸 입었기에 ‘다 찢을 건데 뭐냐’고 했다. 그래서 그걸 벗고 다시 온 것”이라며 “본인이 못 들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분명 이야기했다”고 주장했다.
“연기에 앞서 합을 맞추죠. 그런데 하다 보면 애드리브가 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게 연출 의도와 맞으면 ‘OK’ 사인을 내리는 거죠. 조금 과하긴 했어도 분명 (원했던) 캐릭터가 나왔어요. 그런 면에서는 여배우의 연기도 마찬가지였어요. 연출 의도에서 벗어나진 않았어요.”
또 하나의 쟁점은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졌는지 아닌지다. 이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섰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 장 감독은 “(촬영 공간이 아닌) 옆방에서 모니터만 보고 있었고, ‘바스트’ 촬영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분명 ‘바스트’ 중심으로 촬영했고, 에로틱한 느낌이 있었다면 ‘컷’을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언론에 공개된 메이킹 영상...“악의적이고, 조작됐다”
최근 한 매체를 통해 법정에 제출된 영화 메이킹 영상의 일부가 공개됐다. 이 영상에는 당시 감독의 디렉션과 상황이 담겨 있다. “한 따까리 해야죠” 등의 말도 이를 통해 확인됐다. 이후 감독을 향한 비판 수위가 높아진 부분도 있다. 장 감독은 “조작됐고, 교묘하게 편집된 것”이라고 흥분했다. 또 “법정에 제출된 영상도 온전한 게 아니다”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있다”고 따졌다.
당시 상황을 타임별로 더듬은 감독의 기억은 다음과 같다. 조덕제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 모두에게 디렉션을 했고, 스태프도 있었다. 그리고 전체 리허설을 했고, 합도 맞췄다. 또 여배우의 옷이 한 벌밖에 없어 본 촬영은 한 번에 끝내야 했다. 허락된 시간은 30분이었다. 그래서 합을 세 번 맞췄고, 현장 콘티에 의해 진행됐다. 슛 들어간 다음 NG가 2번 나기도 했다. 장 감독은 “촬영 들어가기 전에 준비했던 시간이 20분인데, 그중 8분가량만 담긴 것”이라며 “그것마저 조작이고, 뒤죽박죽 순서도 안 맞는다”고 강조했다.
“메이킹 촬영 기사가 조덕제 편에 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원본은 내놓지 않고, 영화사 등 누구의 동의 없이 제출됐어요. 편집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위주로 돼 있는 거죠.”
이를 보도한 언론에 대해서는 “은퇴”까지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제가 말이 다소 어눌하다”며 “평소 ‘하는 데까지’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걸 ‘한 따까리 해야죠’라고 표현했더라.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말했다.
# 후속 대응...“최대한 형평성에 맞게”
감독이 사태를 인지한 건 ‘OK’ 사인 이후다. 그는 “OK를 하고 현장으로 갔는데 조덕제가 갑자기 한 번 더 하자고 하는 거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며 “그러고 나서 여배우를 만났는데 저를 보자마자 왈칵 쏟더라. 그야말로 패닉이었다”고 기억했다. 이후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또 형평성을 고려해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감독은 조사받기 전 두 사람과 모두 통화했고, 여배우 쪽의 증인 신청도 형평성을 고려해 거절했다. 진술서 뒤집기 종용 의혹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못 박았다.
"(조덕제가) 하도 생떼를 부리면서 진술서를 써달라고 해서 사인만 해줬다고 하더라고요. 총괄 PD는 '아파트까지 쫓아와서 사인해달라고 난리'라는 문자까지 보냈어요. 다들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사인했다더라고요. 그래서 뒤늦게 새로운 진술을 해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조덕제가 유리한 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성추행을) 안 했으면 안 했다고 하면 될 것을 왜 물고 늘어지는지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장 감독은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러 얘기와 함께 아래의 말을 꼭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좋은 영화 만들어 보겠다고 작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참여했던 모든 스태프와 연기자분들께 많이 부족한 감독으로서 한없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특히 이번 사건과 관련된 두 연기자분께도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사실관계와는 달리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과 정리되지 않은 부정확한 정보를 내보내지 않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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