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1.14 07:35 / 기사수정 2008.11.14 07:35
한국피겨, 김연아만으로 만족할 것인가? - 하
한국 피겨계가 김연아에게 해준 것은 무엇?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특정 국가에서 모든 스포츠 종목이 인기를 끌고 지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인기 종목이 있으면 당연히 비인기 종목도 존재하게 됩니다. 프로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가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은 여러 종목에 고른 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비인기종목이었지만 점차 대중들의 관심을 전폭적으로 받는 종목이 있다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연아(18, 군포 수리고)의 등장은 피겨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김연아의 뒤를 이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올 초, 트라글라프트로피대회 노비스 부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윤예지(14, 과천중)가 첫 번째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그리고 9월에 벌어진 ISU(국제빙상연맹) 주니어그랑프리 3차대회에서는 ‘점프 요정’ 곽민정(14, 평촌중)이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곽민정이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은 김연아, 최지은(20, 고려대), 김나영(18, 연수여고), 신예지(19, 서울여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이룬 쾌거였습니다.
노비스(13세 이하)선수들의 가능성은 한층 밝습니다. 현재 주니어 선수들보다 일찍 더블 악셀을 익히고 트리플 점프에 도전하는 선수들도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선수는 피겨와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토털 패키지' 박소연(11, 전남 나주초)입니다.
박소연은 김연아 이후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에 벌어진 2008 꿈나무대회와 국내 랭킹전에서 박소연은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또한, 여자 싱글에 비해 척박한 남자 피겨에서도 눈부신 재능을 가진 선수가 출연했습니다. 트리플 점프 다섯 가지를 완성시키고 탁월한 '끼'를 가진 '피겨 신동' 이동원(12, 과천초)은 남자피겨의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김연아 이후, 이 정도의 인재들이 등장한 것은 한국 피겨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피겨 팬들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가능성이 풍부한 유망주들도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능성이 보인다면 남은 것은 체계적인 육성과 투자입니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국내 피겨환경을 고려해 볼 때, 단시일 안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행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김연아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가족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김연아 스스로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일구어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많은 유망주들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야하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스폰서를 얻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는 해외와 일본을 오고가면서 훈련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2007년 5월에는 아이치현 도요타시의 추코대학에 아사다 마오를 비롯한 일본의 정상급 선수들이 훈련을 할 수 있는 피겨전용링크장이 건립됐습니다. 아사다 마오는 일본 현지에 들어와도 맘 놓고 훈련할 수 있는 장소가 있기 때문에 아주 좋은 환경 속에서 훈련에 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는 지속적으로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크리켓, 스케이트 & 컬링 클럽에서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들어오면 맘 놓고 편안하게 훈련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해외전지훈련을 다녀온 선수들의 부모님들은 모두 다 캐나다와 미국의 환경을 부러워했었습니다. 어느 분은 그 곳에 있다 보니 너무나 열악한 환경을 가진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싫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한국이 북미 지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의 피겨 환경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피겨의 숙원사업인 피겨전용링크의 건립을 미봉책으로 남겨둬서는 안 됩니다. 한국피겨의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놓고 꾸준히 추진해나가야 할 사항입니다. 이 사업안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한국피겨의 발전은 제자리걸음에 머물 것입니다.
그랑프리 파이널의 개최지, 그러나 2500석의 링크가 주는 의미는?
강원도 평창은 두 번이나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했었습니다. 올림픽 유치 실패의 영향도 컸지만 애초부터 한국은 제대로 된 빙상국제대회를 치를만한 경기장이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랑프리 시리즈의 '왕중왕전'인 그랑프리 파이널을 유치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출발부터 잡음이 많았습니다. 팬들이 원한 올림픽체조경기장은 서울시가 아닌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랑프리 파이널 유치에 나선 서울시와 고양시는 각각 서울목동아이스링크와 고양시 어울림 누리 얼음마루 링크를 대회 유치 장소로 결정했습니다.
이들 링크장은 모두 국제대회를 치르기에는 미달로 평가됩니다. 경기장이 오래되고 낡은 목동링크와 비교적 최신식의 시설이라고는 하지만 2500석의 '시민 회관' 수준인 어울림 누리 링크는 모두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서울시보다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예산을 더 많이 지원하기로 한 고양시가 그랑프리 파이널 개최도시로 낙점되었습니다. 그러나 피겨 팬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그제야 고양시에 위치한 킨텍스 전시관을 차선책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장소가 넓고 하중이 튼튼한 킨텍스는 그랑프리 파이널의 새로운 장소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단, 아무것도 없는 전시장의 허허벌판에 아이스링크와 좌석을 설치해야하는 부분이 문제점으로 떠올랐습니다. 6000~7000석에 이르는 좌석과 조명, 그리고 아이스링크 등을 완성하려면 10억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습니다.
이 문제로 난항을 겪었지만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가 킨텍스 유치 예산을 투자하는 업체로 나섰습니다. 티켓 마케팅 사업으로 손해를 보면 전적으로 IB스포츠가 부담하고 이익을 보면 이 사업에 참여한 단체와 분배하는 조건으로 이 사업안에 뛰어들었습니다. 예산 투자 업체가 나타나면서 킨텍스 유치는 점점 현실로 이루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고양시빙상연맹 측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2008년 4대륙대회를 매우 신경 써서 준비했지만 느닷없이 김연아가 부상으로 불참하면서 환불소동이 일어나는 등의 피해를 봤다는 것입니다. 결국, IB스포츠를 믿지 못하겠다는 고양시 빙상연맹의 의견 충돌로 킨텍스 유치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많은 피겨 팬들의 궁금증에도 불구하고 그랑프리 장소 개최는 늦춰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팬들이 그토록 반대한 어울림 누리 링크장이 그랑프리 파이널 장소로 결정됐습니다. 최종 결정은 현지 실사를 마친 ISU(국제빙상연맹)에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연아가 참가한 그랑프리 1차 대회 장소인 미국 에버렛 컴캐스트 아레나와 3차대회 장소인 중국 베이징수도체육관 특설 링크는 모두 10000석을 훌쩍 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그랑프리 대회 장소도 10000석 내외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링크의 규모가 크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시선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회가 치러지는 장소는 그 국가의 피겨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나타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랑프리 시리즈가 열리는 미국, 캐나다, 중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일본에 비해 한국의 열악하기 만한 피겨 환경은 대회가 열리는 링크장의 모습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필자는 지난 국내랭킹전의 취재를 위해 그랑프리 장소지인 고양시 어울림 누리 링크를 찾았습니다. 작고 아담했지만 나름대로 깨끗한 시설은 괜찮았습니다. 특정 언론사의 보도에서는 좌석을 4000석까지 늘린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그러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2500석의 중, 상당수의 좌석은 대회 임원 관계자들과 기자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일본 관광객들을 위해 적지 않은 표를 예매한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결국, 김연아에게 가장 뜨거운 환호를 보내주는 국내 피겨 팬들을 위한 자리는 얼마 남지 않게 됩니다. 피겨의 발전을 도모하려면 유망주들의 성장과 함께 팬들에 대한 생각도 항상 염두에 둬야합니다. 어느 종목이건 간에 팬들이 없다면 그 종목의 미래는 불투명해집니다.
모든 프로 종목들은 팬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각종 마케팅을 펼칩니다. 아직 피겨스케이팅은 그 단계로 진입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피겨 팬들을 소홀히 한다면 먼 훗날 김연아가 은퇴한 이후, 피겨에 대한 관심은 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 김연아 (C) 전현진 기자, 박소연, 이호정, 김해진 (C) 오규만 기자, 곽민정, 윤예지 (C) 조호은 프리랜서]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 뉴스
실시간 인기 기사
엑's 이슈
주간 인기 기사
화보
통합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