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7.26 14:25 / 기사수정 2008.07.26 14:25
[엑스포츠뉴스=강대호 기자] 세계최고최대 종합격투기(MMA) 단체 UFC의 라이트급(-70kg) 챔피언 비제이 펜(13승 1무 4패)은 ‘천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1978년 12월 13일, 미국 하이와주 카일루아에 거주하던 한국인 3세 로레인 신씨에게서 제이 디 펜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1996년 집 근처 태권도 사범에서 지우짓수(브라질유술) 기술을 몇 개 배운 후 1997년 하우프 그라시이(MMA 6승 1패) 밑에서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 1999년 안드리 페제르네이라스(MMA 1승 2무 1패)에게 검은띠를 받았다. 이는 역대 최단기간이자 비브라질인 최초의 검은띠 획득이다.
여세를 몰아 2000년, 역시 비브라질인으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 검은띠 부분 체급 우승을 달성한 펜은 유술경력만으로도 천재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2001년 MMA 데뷔 후에는 2002년 1월 11일 UFC 라이트급 타이틀전(UFC 35, 판정패), 2003년 2월 28일 UFC 라이트급 챔피언결정전(UFC 41, 무승부), 2003년 10월 10일 ROTR 라이트급 챔피언, UFC 웰터급챔피언(2004년 1월 31일-2004년 5월 17일), 2006년 9월 23일 UFC 웰터급타이틀전(UFC 63, TKO패), UFC 라이트급 챔피언(2008년 1월 19일-현재, 1차방어)이라는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현재 세계 MMA 라이트급 최강자로 꼽히는 펜이 천재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화려한 경력 때문이 아니라 체급을 초월하면서 보여준 경기력이다. 라이트급 챔피언보다 웰터급(-77kg) 챔피언을 먼저 했으며 현 라이트헤비급(-93kg) 세계 10강 중 한 명인 료토 마치다(13승)의 헤비급(-120kg) 시절 대결하여 지긴 했으나 판정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펜이 상대한 라이트급보다 고체급의 주요선수로는 앞서 언급한 료토 외에 전 UFC 웰터급 챔피언 맷 휴스(42승 7패)와 현 웰터급 챔피언 조르주 생피에르(16승 2패)까지 모두 3명이다. 이들과의 4경기에서 펜은 어떤 경기력을 보여줬을까?
펜은 2006년 3월 4일 UFC 58의 도전자결정전에서 1-2로 판정패했지만, 승자 생피에르의 부상과 2004년 1월 31일 UFC 46의 타이틀전에서 승리한 경력 덕분에 도전권을 얻었다. UFC 46에서 6차 방어전에 실패한 휴스는 펜을 상대로 2차 방어전을 갖게 됐다. 복싱과 브라질유술을 기반으로 한 펜의 공격력, 그리고 수비의 우위는 966일만의 2차전에서도 펜이 승리할 수 있다는 근거였다.
펜은 공격의 정확도에서 앞섰고 유술공격도 2회 시도했다. 반면 휴스는 체력과 힘을 앞세운 압박으로 기술의 열세를 만회했다. 테이크다운을 9회 시도하여 번번이 막혔지만 결국 한 번은 성공했고 패스를 2회 했으며 공격 정확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2배 이상의 공격시도로 하이파워가 펜보다 정확히 2배 많았다.
경기는 13분 53초동안 우세를 점한 1차전 패자 휴스의 TKO 승이었다. UFC 웰터급 2대 강자 휴스와 생피에르에게 2연패를 당한 펜은 라이트급 감량을 결심한다.
2004년 1월 31일 UFC 46에서 휴스의 6차 방어를 저지하며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한 펜은 이후 일본의 K-1에서 3경기(2승 1패), 자신의 형제가 운영하는 하와이의 MMA대회 ROTR에서 1경기(1승)를 치른 후 UFC로 복귀했다.
챔피언 경력자답게 도전자결정전으로 치러진 복귀전의 상대는 챔피언결정전 경력자 생피에르였다. 생피에르는 2004년 10월 22일 펜의 이탈로 치러진 UFC 50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휴스에게 패한 후 4연승을 거둬 다시금 도전권을 노리게 됐다.
생피에르는 현 UFC 웰터급 챔피언으로 체급 세계 최강으로 꼽힌다. 교쿠신가라테(極盡空手道)·브라질유술·레슬링·복싱·가이도주쓰·무에타이 등을 두루 수련하여 현 MMA에서 기술완성도가 가장 높은 선수로 평가된다. 타격의 위력은 생피에르, 유술공격력은 펜이 앞선다고 할 수 있는 가운데 다소 취약한 생피에르의 수비를 펜이 공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763일 만의 UFC 복귀전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펜은 예상외로 1라운드에서 타격으로 우위를 점했다. 생피에르의 머리에 대한 강공격은 생피에르의 회피에 정확도가 떨어졌지만, 나머지 공격에서 펜의 공격은 정확했다. 복싱이 좋은 펜에게 생피에르는 다리에 대한 공격으로 맞대응했지만, 위력이 모자랐다. 생피에르가 공격시도와 성공횟수에서 앞섰지만, 펜은 정확도와 하이파워 21-8의 우위로 유효점수 85-28로 성공적인 1라운드를 치렀다.
1라운드 타격 열세에 대한 생피에르의 해법은 레슬링의 우위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었다. 테이크다운 2회 성공으로 펜의 전열을 흐트러뜨린 생피에르는 약공격의 정확도와 횟수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펜도 얼굴과 몸통에 대한 약공격으로 반격했지만, 공격 시도·정확도·성공횟수에서 모두 뒤지면서 하이파워 11-17, 유효점수 58-90의 열세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레슬링을 적절히 활용하는 생피에르의 경기방법은 3라운드에도 이어졌다. 테이크다운 2회 성공의 생피에르에게 펜도 테이크다운 1회 성공과 조르기 시도로 맞섰지만 강공격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공격시도와 성공횟수에서 뒤졌다. 하이파워 4-17, 유효점수 62-115로 3라운드도 생피에르의 우세였다.
펜은 공격시도와 성공, 하이파워에서 열세였지만 정확도에서 앞섰다. 유효점수에서도 1라운드의 우위 덕분에 오히려 합계는 1점이 많았다. 외관상으로도 1라운드에 생피에르의 오른쪽 눈 밑과 코에 상당한 손상을 입혔다. 그러나 라운드별 우열의 합으로 채점하는 미국 MMA의 특성상 2, 3라운드에서 우위를 보인 생피에르의 판정승은 통계로도 타당했으며 레슬링 싸움에서도 밀렸기 때문에 판정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K-1은 2004년 5월 22일 로마넥스라는 이름의 MMA 전문대회를 연 후 2005년 3월 26일 히어로스로 개칭하여 첫 행사를 열었다. UFC 46 이후 K-1과 ROTR에서 각 1승을 거둔 펜도 여기에 참석했다. 상대는 MMA 5전 전승의 료토였다. 2003년 MMA 데뷔 후 TUF 1 라이트헤비급 토너먼트 2위 스테판 보너(12승 4패), 전 UFC 미들급 챔피언 리치 프랭클린(24승 4패)을 격파하며 현 라이트헤비급 10강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라이트급과 라이트헤비급의 한계 체중차이는 23kg다. 당시 헤비급 선수로 102kg으로 경기에 임한 료토에 맞서려고 펜도 86kg으로 증량했지만, 여전히 10cm 16kg이라는 체격 열세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천부적인 신체의 열세를 딛고 과연 정평이 난 료토의 수비를 공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1라운드는 펜의 체격 열세도 료토의 수비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펜은 공격의 강함·적극성·성공횟수·정확도에서 모두 우위를 점했다. 또한, 테이크다운 3회 시도 중 1회 성공, 하프가드 패스 1회 등 그래플링에서도 공세를 펼쳤다. 2000년 스모 브라질선수권 -115kg 우승자 료토를 상대로 테이크다운을 성공하고 시도는 차단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이파워 12-6, 유효점수 73-62로 펜이 우세한 1라운드였다.
1라운드에서 주도권을 내준 료토는 2라운드에서 그래플링의 적극성으로 경기를 풀었다. 테이크다운 1회 성공과 하프가드 패스 1회를 기록한 료토는 타격에서도 펜의 정교함을 막진 못했지만, 더 많은 공격시도와 성공, 그리고 수준급의 정확도로 우위를 점했다. 하이파워 8-17, 유효점수 49-69로 펜의 열세인 2라운드였다.
3라운드에도 료토의 그래플링 주도권은 이어졌다. 펜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막아내며 테이크다운 2회 성공, 사이드 패스 1회·중립 1회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그래플링의 열세에도 펜의 타격 정확도는 여전히 우위였고 대등한 하이파워와 근소하게 앞선 약공격으로 오히려 유효점수로 61-54로 3라운드를 마쳤다.
료토는 그래플링의 주도권과 공격시도의 우위를 점했지만, 공격성공횟수와 정확도는 펜이 앞섰다. 하이파워 28-31, 유효점수 183-185로 그야말로 박빙의 경기였지만 결과는 심판 3명 전원일치로 료토의 판정승이었다.
히어로스는 라운드별로 10점을 만점으로 내용에 따라 감점을 통해 우열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10-10 동점이 불가능하다는 규정은 없지만, 그 외에는 미국과 유사한 채점이다. 그렇다면, 통계상으로는 1, 3라운드에서 우위를 보인 펜이 이겼어야 한다. 게다가 히어로스 공식규정의 판정기준에는 손상 정도-지배력-적극성 다음으로 체중차이가 있다. 16kg의 체중열세에도 대등한 경기를 펼친 펜에게 유리한 조항이다.
그러나 히어로스는 라운드별 동점이 가능했다. 1라운드 펜의 우위보다 2라운드 료토의 반격이 더 매서웠고 3라운드 펜의 우위는 1라운드만 못했다. 따라서 3라운드를 펜의 우위가 아닌 대등한 것으로 봤다면 라운드별 채점이 동률일 경우 경기 전체를 살펴 우열을 가린다는 히어로스 규정에 따라 료토의 우세로 판정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당시 심판 3명의 라운드별 채점합산은 29-30, 30-30, 29-29였는데 동점으로 채점한 2명은 내용상 료토의 우세라고 판정했다. 체중차이에 대한 규정이 있음에도 어떤 심판도 펜의 우세를 말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하이파워와 유효점수에서 +2인 료토가 이긴 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결과다. 물론 승패와 상관없이 현 라이트헤비급 10강을 상대로 체급을 초월한 박빙의 경기를 펼친 펜의 천재성에는 어떤 찬사도 아깝지 않다.
2002년 1월 11일 UFC 35, 2003년 2월 28일 UFC 41에서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치렀으나 1무 1패로 챔피언 등극에 실패한 펜은 2003년 10월 10일 ROTR에서 프라이드 -73kg 챔피언 고미 다카노리(28승 3패 1무효)를 조르기로 꺾으며 하와이 데뷔전에 승리한 후 웰터급으로 증량, 5차 방어에 성공한 UFC 챔피언 휴스에게 도전장을 냈다.
비록 실패했지만 지난 2번의 타이틀전에서 경기내용의 우세는 인정받았고 일본 강자 고미까지 꺾으며 기세를 올렸다고는 하나 웰터급 데뷔전 상대로 휴스는 벅차지 않으냐는 반응은 당연했다. 그러나 결과는 1라운드 4분 39초 만에 조르기로 휴스의 항복을 받은 펜의 챔피언 등극이었다.
펜은 휴스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차단하면서 타격에서 정확도·적극성·성공횟수의 우위를 점했고 조르기로 승리할 때까지 패스 5회로 한 수위의 그래플링을 보여줬다. ‘UFC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챔피언’이라 호언장담하던 휴스의 웰터급 지배는 라이트급에서 올라온 펜의 손으로 끝이 났다.
5. 마치면서
MMA에서 가장 높은 기술완성도를 자랑하는 생피에르, 전승의 라이트헤비급 10강이자 UFC 미들급 챔피언 안데르송 시우바(22승 4패)가 ‘진정한 챔피언’이라 추켜세운 료토, 통산 7차 방어성공의 UFC 산증인 휴스. 펜이 현재 자신의 체급인 라이트급이 아닌 웰터급, 심지어 라이트헤비급 체중으로 상대한 강자들이다.
UFC 사장 데이나 화이트는 ESPN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유능하고 재능있는 선수지만 바로 이러한 소질 때문에 헤비급과도 싸우겠다는 분별없는 생각을 품고 실천하기도 했다.”라며 펜에 대해 평가했다.
그러나 펜은 지난 5월 24일 UFC 84에서 라이트급 챔피언 1차 방어에 성공한 후 공개적으로 팬에게 생피에르와의 2차전을 희망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료토와 대결을 벌이는 ‘분별없는’ 생각까지는 아니지만, 웰터급 증량 의사는 충분해 보인다.
올해 중으로 예정된 2차 방어전에 승리한다면 펜의 웰터급 도전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을 것 같다. 이미 화이트도 펜 對 생피에르에 대한 긍정적인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차전에서 펜에게 레슬링의 우위를 점한 생피에르는 현재 캐나다 국가대표급 기량을 갖춰 미들급이나 라이트헤비급 정상급 선수와의 훈련에서도 넘어가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난 선수다.
레슬링의 열세는 곧 체력관리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신체조건이 열악한 펜이 상위체급 선수를 이기긴 그만큼 어려워진다. MMA의 발전으로 선수층과 기량이 두터워지면서 체급의 벽이 이전보다 높아진 현실에서 과연 펜이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을까? 설령 실패하더라도 안주보다는 도전(혹은 방랑)을 택하는 천재의 활약상은 격투기 팬을 충분히 매료시킬 것이다.
참고: 이 글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과 현지시각을 반영했다.
[사진= 비제이 펜 (C) UFC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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