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6.30 07:29 / 기사수정 2008.06.30 07:29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한 달 남짓 벌어졌던 '유럽 축구의 축제' 유로 2008은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재미있는 경기와 명승부를 연출하며 축구팬들을 열광케 했다. 이제는 새벽에 잠을 잘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우리를 즐겁게 했던 유로 2008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대회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던 10가지의 결정적인 사건을 돌이켜 보자.
1. 부폰의 페널티킥 선방
2006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는 '죽음의 C조'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충격의 3대 0 패배를 당한 채 또 하나의 강적 루마니아를 만났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아드리안 무투에게 선제골을 내주었다.
다행히 크리스티안 파누치의 만회골이 곧바로 터졌지만 후반 35분, 루마니아에 페널티킥을 내주고 만다. 키커는 선제골의 주인공 무투. 그러나 이탈리아의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은 무투의 페널티킥을 완벽하게 막는 데 성공한다.
이 선방은 네덜란드전 대패와 루마니아전 선제골 허용의 충격에서 이탈리아를 건져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결국, 이탈리아는 최종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천신만고 끝에 8강 티켓을 따냈다.
반면 무투는 영웅이 될 수 있던 기회를 놓치며 그 충격으로 교체까지 당했고, 루마니아 역시 죽음의 조를 넘는 데 실패했다. 무투는 이전의 좋은 활약이 이 한 장면으로 인해 묻히면서 대회 최악의 선수 중 한 명이 되고 말았다.
2. 체흐의 실수
운명이란 얄궂다. 왜 하필 그날 비가 왔으며 왜 하필 그 공은 그 빗물에 미끄러진 것일까.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인 페트르 체흐는 철벽같은 방어를 펼치다 그 한 번의 실수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별리그 최종전 터키와 체코의 경기에서 체코는 종료 15분 전까지 2-0으로 앞서고 있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체코가 8강에 진출하는 상황.
그러나 터키의 아르다 투란이 만회골을 뽑아내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하던 후반 42분, 하밋 알틴톱이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가 체흐의 손에 닿았지만 이내 미끄러지며 니하트 카베시의 앞에 떨어졌고 이것이 결국 동점골로 이어졌다.
이 장면을 계기로 기세가 오른 터키는 결국 후반 44분, 체코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완전히 무너뜨린 니하트가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역전에 성공한다. 대회 내내 화제가 되었던 체흐의 얼굴이 새겨진 '거미손 놀이기구'가 무색해 지는 순간이었다. 메이저대회는 어쩌면 이다지도 스타 플레이어에게 야박한 걸까!
3. 슈네이더의 시저스 킥
아무리 다시 그 장면을 돌려봐도 믿을 수 없는 골이었다. 네덜란드가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를 무려 3:0으로 이길 수 있었던 데에는 슈네이더의 이 환상적인 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의 첫 골 이후 5분 만에 터진 이 엄청난 골은 세계 최고의 수문장과 골포스트 사이의 그 좁은 간격에 정확하게 꽂혔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는 강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조별리그 내내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며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를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약진은 C조의 전체 판도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며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하는데 한몫을 한다.
4. 호날두 이적설
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그 수많은 기자에게 다음 경기에 대한 질문만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포르투갈 훈련장을 찾는 모든 기자들은 오직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에 갈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었고 팬들은 포르투갈의 승리보다 퍼거슨 감독이 정말 스위스에 왔었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스콜라리 감독까지 나서 기자들에게 호날두의 이적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 팀워크가 중요한 축구에서 이런 식으로 한 명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것은 결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 없었다.
5. 스콜라리 첼시 부임
그러나 스콜라리 자신 역시 포르투갈을 흔들었다. 너무나 적절한 타이밍에 발표된 첼시의 신임 감독 부임 소식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날두 때문에 시끄러웠던 포르투갈은 자신들의 수장이 곧 다른 팀 감독이 될 것이란 사실에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서 선수들에게 집중력을 기대하고 승리를 원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 결국, 포르투갈은 자신들이 지난 독일월드컵에서 떨어뜨렸던 잉글랜드 때문에 손해를 본 셈이다. 하긴, 잉글랜드가 유로 2008 본선에 올랐다면 기자들이 이렇게까지 그들을 괴롭혔을까?
6. 다비드 비야의 해트트릭
스페인 축구의 아이콘이었던 라울 곤잘레스를 제외한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결단에 팬들은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그러나 아라고네스 감독은 라울 대신 뽑은 다비드 비야를 투톱에 포진시켰고 이는 비야의 놀라운 활약으로 이어졌다. 비야는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쏘아 올리며 맹활약했고, 빅리그 명문팀들도 대회 내내 비야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비록 부상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비야는 스페인 우승에도 큰 공헌을 하며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라울은 좀 씁쓸하겠지만, 아라고네스의 선택은 결국 옳았다.
7. 리베리와 아비달의 동반 퇴장
프랑스는 조별리그만 통과한다면 2006월드컵에서처럼 반전을 이뤄 결국 결승까지 갈 수 있는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한다면 8강에 오를 수 있었던 프랑스는, 그러나 경기 시작 9분 만에 공격을 이끄는 프랑크 리베리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에릭 아비달의 퇴장은 리베리의 부상보다도 더 결정적이었다. 더군다나 이 퇴장은 이탈리아에게 페널티킥까지 안겨줬다. 앞선 경기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릴리랑 튀랑 대신 중앙 수비에 투입되었던 아비달이 빠지자 수비에 다시 허점이 생겼고, 울며 겨자먹기로 리베리 대신 들어왔던 나스리를 다시 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수적 열세와 함께 프랑스의 공격과 수비가 동시에 약해지고 말았고, 이탈리아에 0-2로 패배하며 프랑스는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안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8. 터키의 종료 2초전 동점골
터키는 체흐의 실수를 엮은 대역전극을 펼치며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상대는 조별예선에서 잉글랜드를, 본선 조별리그에서 우승후보 독일을 꺾고 조 1위로 올라온 크로아티아였다. 결국, 종료 3분 전 선제골을 내주며 터키는 패배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리고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종료 7초 전, 골키퍼 뤼스투 레치베르가 길게 찬 공은 한번 바운드 된 뒤 세미 센투르크 앞에 떨어졌고 그는 이 공을 곧바로 발리 슛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그 뒤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터키의 승부차기 승리로 끝났다. 터키는 조별리그 2차전 스위스전부터 3경기 연속 역전극을 펼쳤다. 축구 역사상 이렇게 드라마틱한 4강 진출팀이 또 있을까? (물론, 2002 월드컵은 제외!) 게다가 만약 터키가 아닌 크로아티아가 4강에 올랐다면 스페인의 결승 상대 역시 독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9. 아르샤빈과 히딩크 매직
당신이 감독이라면 3경기 만에 끝날지도 모를 대회에서 2경기를 못 나오는 선수를 데려가겠는가?
안드레 아르샤빈은 유로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면서 2경기 출장정지를
받았고 이는 본선 무대까지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그를 엔트리에 합류시키기로 결정을 내렸고 결국 그 결정은 대박을 터뜨렸다. 아르샤빈은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 첫 출전해 골을 넣으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고 네덜란드전에서는 1골 1도움으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는 UEFA컵 우승과 유로 4강을 동시에 달성하면서 빅리그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10. 토레스의 대회 마지막 득점
결승전의 결승골만큼 결정적인 장면이 있을까? 페르난도 토레스는 44년 만에 스페인의 유럽 정복을 일궈내는 멋진 골을 터뜨렸다. 대회 내내 비야의 그늘에 가려있던 토레스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득점에 성공하며 역시 스타플레이어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편, 독일의 미하엘 발락은 또 다시 '준우승 징크스'에 울었다. 발락이 2008년 눈앞에서 놓친 우승컵은 자그마치 4개! (칼링컵,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 유로 2008)
[사진 (C) 유로 2008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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