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6.19 13:16 / 기사수정 2008.06.19 13:16
[엑스포츠뉴스= 전성호 기자] 작년 12월 2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유로 2008 본선 16강 조추첨 결과 2006 월드컵 우승팀(이탈리아)과 준우승팀(프랑스), 세계랭킹 10위(네덜란드)와 12위(루마니아)로 구성된 사상 최고의 '죽음의 조'가 탄생됐다. 네 팀 모두 4강에서 만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유럽 최강팀들이었다. 최종적으로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 섣부른 예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네덜란드의 독주
그 누구도 예상 못 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고사하고 루마니아에도 뒤질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들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네덜란드는 강했다. 대회 최강팀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전통의 4-3-3 전형을 버리고 올해 초 과감하게 4-2-3-1로 변화를 모색한 반 바스텐 감독의 선택은 적중했다. 원톱에 루드 반 니스텔루이라는 최강의 스트라이커가 포진하고 그 뒤를 세 명의 창의적인 미드필더 로벤 반 페르시(아르옌 로벤)-웨슬리 슈네이더-라파엘 반 데 바르트가 받쳐주면서 네덜란드의 공격력은 극대화됐다.
공격에 비해 약한 수비진은 몇 차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 뒤를 받치고 있는 수문장 에드윈 반 데르 사르의 선방은 상대에게 결코 쉽게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무려 7명의 선수가 득점에 가담하며 '토털 사커'의 진수를 보여줬던 네덜란드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9득점 1실점이라는 완벽한 기록을 남긴다. 네덜란드의 8강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던 전문가와 도박사들은 이제 그들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무투의 페널티킥 실축
아쉬웠다. 아드리안 무투는 루마니아를 유로 본선 무대로 이끈 장본인이었지만 루마니아의 8강 진출 실패에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무투는 선제골을 터뜨리며 지난 경기 네덜란드에 0:3으로 패배했던 이탈리아를 공황 상태에 몰아넣었다. 비록 1분 뒤 곧바로 크리스티안 파누치가 동점골을 넣으며 균형을 이뤘지만 무투가 이끄는 루마니아 공격진은 이탈리아 골문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결국, 후반 35분, 루마니아는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무투가 키커로 나섰다. 만약 성공한다면 이탈리아라는 '대어'를 잡고 8강 진출을 거의 확정지을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무투는 지난 시즌 소속팀 피오렌티나와 유벤투스와의 세리에A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골키퍼인 잔루이지 부폰을 상대로 페널티킥을 넣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무투가 가운데로 찬 공은 부폰의 손과 발에 차례로 맞으며 가로막혔다. 이번에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은 루마니아와 무투였다. 결국, 한 경기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무투는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곧바로 교체되고 말았고, 경기는 1-1로 끝났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선 주전을 9명이나 뺀 네덜란드와 맞붙으며 8강 진출 가능성을 엿봤지만 루마니아는 결국 0-2로 패하면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결과론적이지만 무투의 페널티킥이 들어갔다면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은 것은 이탈리아가 아닌 루마니아였을 것이다. 8년 만의 극적인 8강 진출을 노리던 루마니아의 꿈은 이렇게 아쉽게 끝나고 말았다.
프랑스-이탈리아의 부진
지난 2006 독일월드컵의 우승, 준우승팀인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명암은 9개월만의 리턴 매치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이탈리아는 대회 직전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의 부상으로 조별리그에서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 예상되긴 했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0-3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비상등이 커졌다. 루마니아와의 2차전에서는 패배의 위기를 겪으며 8강 조기 탈락이란 벼랑 끝까지 몰린 순간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는 세계 최고의 수문장 부폰이 있었다. 네덜란드에게 세 골을 내주며 자존심을 구겼던 부폰은 루마니아전에서 무투의 페널티킥을 막으며 이탈리아를 구해냈다. 결국, 이 장면을 기점으로 이탈리아는 부활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극적으로 8강 티켓을 거머쥐게 되었다.
프랑스는 주장 파트릭 비에이라의 부상과 지네딘 지단의 은퇴로 예전보다 전력이 약화되었지만, 프랑크 리베리, 제레미 툴랄랑, 카림 벤제마, 사미르 나스리 같은 재능있는 선수들이 그 빈자리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다. 노쇠화가 우려됐지만 유로 2008 예선에서 탄탄한 수비를 보여줬던 주전 포백도 건재했다.
그러나 루마니아와의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면서 이상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프랑스는 네덜란드전에서 1-4의 참패를 당했다. 공격수들의 움직임은 둔했고 수비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8강 진출 여부를 걸고 맞대결한 이탈리아전에서는 리베리의 부상, 에릭 아비달의 퇴장 등 악재가 겹치며 0-2로 패배, 쓸쓸하게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만 했다.
지단의 공백, 골결정력 부족, 전술의 부재 등 프랑스의 모습은 2002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당시와 너무도 흡사했다. 과거 세계 축구 무대를 호령했던 '아트 사커'는 이제 세대교체의 진통을 겪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우승팀은 C조에서?
8강에서 네덜란드는 그들을 잘 알고 있는 히딩크 감독의 러시아와, 이탈리아는 또 다른 대회 최강팀 중 하나인 스페인과 쉽지 않은 한판 대결을 벌인다. 만약 두 팀 모두 승리한다면 4강에서 리턴 매치를 갖게 된다. 대진표상 여기서 승리를 거두는 팀이 결승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진다.
과연 사상 최고의 죽음의 조에서 생존했던 두 팀은 우승의 영광까지 차지할 수 있을까? 유로 2008을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사진= (위) 네덜란드의 공격을 이끄는 로번(왼쪽), 슈네이더(가운데), 반 페르시(뒤쪽) (아래) 이탈리아의 수문장 부폰 (C) 유로 2008 공식 홈페이지]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 뉴스
실시간 인기 기사
엑's 이슈
주간 인기 기사
화보
통합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