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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K!] 최효진, 독하게 하지만 아름답게

기사입력 2008.05.13 17:11 / 기사수정 2008.05.13 17:11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5월 11일은 K-리그의 두 가지 기록이 새로 달성된 날이었습니다.

대전의 김호 감독이 K-리그 감독 중 최초로 200승 고지를 달성했고, 통산 9600번째 골이 나왔죠. 9600번째 골의 주인공은 포항의 최효진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지난 포항과의 경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날 성남 선수의 자책골로 리그 첫 패배를 당한 뒤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모여 앉아 지인들과 제일 먼저 입에 올린 선수의 이름은 성남 선수가 아닌 포항 선수인 최효진이었습니다.

이래저래 경기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이 날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장학영 대신 최효진의 상대로 나선 박우현은 최효진을 이길 수 없다는 씁쓸한 결론만을 내린 채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돌려 말해도 결론은 '최효진, 잘났다'더군요.

생각해보면 기자의 기억 속에서 최효진은 항상 잘난 선수 중 하나였습니다.

최효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아마도 2003년 FA CUP경기에서였을 겁니다. 당시 성남은 아주대와의 FA CUP 경기를 의정부에서 가졌죠. 대학팀과의 경기인지라 쉽게 풀어나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성남은 첫 골을 먼저 내주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 당시 아주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최효진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 자리에 있었고, 그날 그는 당돌하게도 성남의 골문에 두 골이나 꽂아 넣었죠.

작기만 한 선수가 요리조리 드리블을 시도하며 프로 물 좀 먹었다 하는 수비수들을 제칠 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잘 모르셨겠지만, 그때 당시 축구 천재로 불리던 박주영과 함께 대학 축구계에서 둘째가 라면 서러운 공격수가 바로 최효진이었습니다. 

어느 선수가 안 그렇겠느냐마는 유난히 그는 승부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축구 선수로서 부상을 겪어 운동을 쉬는 것조차 쉽게 용납하지 못했죠. 대학 시절 발목 부상을 당해 쉬는 동안에도 '다른 애들은 운동하고 있는데 나만 논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며 당장 운동장에 나설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답답해하곤 했던 그런 선수였습니다. 작지만 빨랐고, 다부지게 달릴 줄 알았습니다. 몸싸움을 싫어하지 않았고 작은 키였지만, 큰 수비수들을 겁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골을 만들어 낼 줄 아는 감을 가진 선수였죠. 

한여름 펼쳐지던 전국체전 대학부 지역 예선전에서 그가 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가 소속된 아주대는 결승전에서 중앙대를 만났었고요. 8월, 그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경기를 보는 것조차도 힘들었는데 그는 90분을 내내 이를 악물고 달리고, 모자라서 연장전을 달리고 승부차기까지 치러냈습니다. 결국, 승부차기 승. 보기만 하던 기자가 지쳐 힘든 내색을 해도, 그는 마냥 기쁘기만 했습니다. 덥고 힘든 것 따위, 승리 앞에서 중요하지 않았죠.  

그렇게 대학 무대에서 빛을 발하던 그가 프로에 첫 발을 내딛을 때 원했던 자리는 대학 때와 마찬가지로 중앙 공격수였습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가 즐비한 공격선에 172cm의 작은 키를 가진 토종 공격수가 설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포지션을 바꾼 것이 그것인데요. 그가 자리한 곳은 오른쪽 날개였습니다. 적응이 쉽겠느냐는 주변의 우려를 깨고 그는 인천의 오른쪽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의 승부 근성 때문에 일어난 일도 있었습니다. 포항과의 경기에서 그는 당시 포항의 공격 중추이던 따바레즈를 맡아 수비를 펼쳤고, 그의 진득한 수비에 짜증이 난 따바레즈와 결국 시비가 붙고 말았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최효진에게는 경고가, 따바레즈에게는 퇴장이 주어져 그 날 포항 스틸야드는 들끓었습니다. 포항 팬들은 최효진, 하면 이를 바득바득 갈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다음해 최효진은 포항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인천이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던 2005년, 1차전에서 울산에게 5대1로 대패하고 패색이 짙었을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모르는 거라며, 모든 것을 다 뒤집고 우승할 테니 두고 보라고 했었죠. 그러나 그가 바라던 대역전극은 일어나지 않았고 경기가 끝난 뒤 보인 그의 얼굴에는 너무나도 서러운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그였던지라 인천의 유니폼을 벗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수의 이적이라는 게, 어디 선수 마음대로만 되는 일이던가요.



포항의 유니폼을 입고도 그가 인천 시절처럼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의 자리에 오범석이 있었고 다른 무대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죠. 잊히는 듯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조금씩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포항의 오른쪽도 인천의 그것처럼 최효진의 것이 되었죠. 그리고 인천에서 이루지 못했던 우승의 꿈도 이뤄냈습니다. 그날의 최효진은 2년 전 그날처럼 울지 않았습니다. 마냥 기뻐하고 즐거워할 뿐이었죠. 

그를 보고 있으면, 참 꾸준하고도 진득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독하다는 생각 또한 최효진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같이 딸려오고는 합니다. 이 ‘독하다.’는 말이 나쁜 의미로서의 독하다가 아닌, 그의 축구선수로서의 의지나 노력을 표현해주는 단어라 생각해서 그를 표현할 때 자주 쓰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는 현재 K-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오른쪽 자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배워오던 학생 시절과는 전혀 다른 포지션임에도 말입니다. 아마도 한참동안 그는 지금처럼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겁니다. 그게 포항의 팬이라면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에서, 상대라면 아쉬움이 들어있는 목소리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합니다. 5년 전, 아주대 유니폼을 입고 달리던 그를 처음 봤던 그날처럼 말이죠.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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