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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이성운 - 서른하나 늦은 봄, 만개한 들꽃처럼

기사입력 2008.04.27 01:48 / 기사수정 2008.04.27 01:48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대전의 경기를 보다 보면 90분 내내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쉴 새 없이 눈에 띄는 한 선수가 있습니다.

덩치가 크다든가 머리 모양이 요란하다든가 해서 눈에 띄는 건 아닙니다. 다만, 활동량이 엄청나게 많아 공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기 때문에 보이는 것뿐입니다. 이제 프로에 갓 입단해 넘치는 혈기를 주체 못하는 젊은 선수냐고요? 아닙니다. 올해 서른한 살, 프로 8년차 그의 이름은 이성운입니다.

2001년 경기대를 졸업하고 성남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가 처음부터 한 팀의 주전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남이라는 팀은 신인이 쉽게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팀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의 포지션은 미드필더였죠. 더욱더 힘들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프로 입단과 함께 그의 기록은 '0', 출전 자체가 전무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2002년 프로 2년차 때도 단 한 경기에 출전하며 그는 계속 가라앉는 듯했습니다. 그 다음해 그나마 기회가 찾아왔죠. 지난해 출전 수와 비교하면 10배나 많은 출장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경기 수는 고작 10경기, 그리고 그 출전 중 9번은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은 것이었습니다. 가끔 조커로 투입되어 자신의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기회를 잡는 듯하던 그는 그 다음해 3경기 출장에 그치고 말았죠.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아 그가 눈을 돌린 곳은 군대였습니다.

상무가 아닌 경찰청에 입대한 그는 그동안 지겹도록 뛰었던 2군 리그에서 또 2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지겹고 지칠 법도 했는데 그는 항상 '인생 뭐있어. 직진이지.'라는 말로 웃어넘기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유쾌하게 웃어넘기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대, 그가 입은 유니폼은 성남의 노란색이 아닌, 대전의 자주색이었습니다.

대전의 유니폼을 입고 그는 24경기를 뛰었습니다. 프로 데뷔 7년 만에 공격 포인트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아직 골은 기록하지 못했죠. 그가 처음 대전에서 뛸 때만 해도 지금처럼 대전 팬들에게 자주 회자하던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2008시즌, 올해 들어섭니다.

대전이 수원과의 2008시즌 첫 경기를 치르고 나서 대전 팬들에게선 두 명의 선수가 떠올랐습니다. 신인 김민수와 이성운이었죠. 김민수의 포지션이 공격인 탓에 조금 더 눈에 띈 듯 더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대전 팬들은 이성운의 큰 활동량에도 큰 박수를 보냈죠.

선발 명단에서 이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그는 이제 명단에 없으면 이상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대전의 14번은 그라운드 어느 곳에서든 쉽게 눈에 띄는 번호가 되었고요. 성남 시절부터 기자는 나이보다 조금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의 외모 탓에 그를 ‘삼촌’이라 불러왔습니다. 요즘 들어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를 보면서 지인과 함께 삼촌이 드디어 빛을 본다. 며 기쁨과 안도가 함께 뒤섞인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전북과의 경기에서도 그는 여전히 숨 돌릴 틈도 없이 뛰어다녔습니다. 조재진을 마크하는가 싶더니 이만큼 올라와 전북 수비수들과 공 경합을 벌이기도 했죠. 그가 드리블을 하며 개인기를 선보이자 대전의 관중석에선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14번, 잘한다!'하는 외침도 가끔 들려왔습니다.

서른한 살. 이제 막 만개하기 시작한 그가 축구선수로서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 자칫 부상이라도 당하면 곧바로 은퇴로 이어질 수도 있죠. 하지만, 오늘도 그는 마냥 웃으면서 그라운드를 달립니다. 축구를 하면서 그토록 원하던 한 팀의 주전이 되어 뛰고 있는 지금이 그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니까요.

주전으로 뛰고 있는 그를 보면서 또 하나의 욕심이 생깁니다. 그 왕성한 활동력에 걸맞은 멋진 골로 기록지 G 부분에 1이 새겨졌으면 하는 욕심 말이죠. 뭐, 골이 중요합니까? 그가 열심히 뛰고 그걸로 많은 팬의 환호와 격려를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그만이죠. 골을 넣든 못 넣든 간에 그는 자신의 입버릇처럼 앞으로 계속 달려 나갈 겁니다. 그리고는 수고했다는 기자에게 또 외칠 겁니다.

'인생 뭐있어? 직진이지!’'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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