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아영 기자] 연기 장인 지성과 엄기준이 빚어낸 명장면들로 화제의 중심에 선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그중에도 약 7분 동안 홀로 화면을 장악한 엄기준의 1인 2역 연기가 단연 호평을 받고 있는데, 그는 섬뜩할만치 디테일한 연기력으로 양극단의 형제 차선호, 차민호 캐릭터를 완벽히 구현하며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엄기준의 열연과 더불어 주목받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장면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정교한 CG(Computer Graphics) 기술이다. 배우 한 사람이 서로 다른 두 명의 인물로 등장, 하나의 프레임에 담겨 연기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고, 완성도 높은 장면에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이에 ‘피고인’ CG 작업에 참여한 SBS A&T CG팀 소은석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1인 2역 장면에 숨은 비밀을 면밀히 파헤쳐 보았다.
SBS A&T CG팀 소은석 씨는 ‘질투의 화신’, ‘미녀 공심이’, ‘미세스 캅2’, ‘육룡이 나르샤’ 등 SBS 대표 드라마라 할 수 있는 드라마 CG 작업에 참여한 베테랑인데, 그런 그에게도 이번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그는 “1인 2역은 연기를 하는 주체, 그리고 상대역까지 모두 한 사람이 해내야 하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 흐름, 복잡한 촬영 방식 등 기술적인 제한 요소가 많다. ‘피고인’의 경우, 촬영 전 연출팀과 대본을 보면서 장면 하나하나를 분석했다. 연기자가 A 역할로 어디까지 촬영하고 B 역할로는 또 어디까지 촬영할지, 인물 A와 B가 어디서 함께 등장할지, 인물의 동선과 카메라의 동선은 어떻게 맞출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매우 세세하게 의논하고 스케치해 콘티를 만들었다. CG가 필요한 부분도 이때 정해진 것.”이라고 전했다.
촬영 전 꼼꼼한 계획이 필요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연기자는 A 역할로 촬영을 한 뒤 의상, 분장을 바꾸고 B 역할로 촬영을 하는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물별 촬영 장면 분할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철저한 준비 끝에 진행된 촬영임에도, ‘피고인’ 1인 2역 장면은 이틀에 걸쳐 촬영이 진행될 만큼 고난도 작업이었다.
“한 화면에 1인 2역을 표현하는 것은 사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피고인’처럼 동적인 장면을 연출할 경우엔 카메라와 각각의 인물이 매번 같은 시간에 움직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MCC(Motion Control Camera)라는 장비가 동원된다. MCC는 로봇 팔과 컴퓨터를 이용해 카메라의 움직임을 기계적으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비로, 배우는 카메라 타이밍에 맞춰 약속된 동선에 따라 정확한 연기를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차례 촬영된 장면을 합성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 화면으로 만든 것.”이라며 장면의 결정적 비밀을 밝혔다.
이어 “차선호, 차민호가 동시에 등장한 호텔 객실 장면은 100컷 가까이 되는 CG 컷이 작업됐다. 1인 2역인 설정 자체도 까다로웠지만 장면의 외경 역시 크로마 스크린을 이용한 합성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크로마 스크린을 이용한 CG 작업은 CG 테크닉뿐만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배경 영상의 질도 중요하다. 호텔 객실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야경은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서울 마포구의 한 빌딩 옥상에서 직접 촬영한 것이며, 추가적으로 강릉의 한 호텔에서도 드론을 날려 세트와 어울리는 배경을 확보했다.”라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CG 작업을 위한 열정 가득한 비하인드스토리를 들려주었다.
확실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촬영 당일에도 연출팀과의 의견 조율은 계속됐다. 덕분에 그는 엄기준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한 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매 테이크 같은 움직임으로 연기해야 하는 MCC 촬영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한 컷을 위해 3~40번 같은 동작, 같은 연기를 했는데 나중엔 연기 동작의 시작점이 매번 같아서 놀랐다. 마치 컴퓨터처럼 정확히 연기를 시작했다. 정해진 촬영 순서 때문에 여러 번 의상과 분장을 바꿔가며 연기를 해야 했는데, 어렵고 피곤한 작업임에도 끝까지 웃으며 최선을 다하는 멋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며 열심을 다한 엄기준에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드라마 CG를 경험 중인 시청자들에게 바람의 메시지를 전했다. “드라마의 소재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인기작들만 봐도 이전에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소재나 내용을 CG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표현,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작품에 걸맞은 적절한 CG를 제작하고자 조금 더 새롭고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촬영분이 많고, 작업할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간간이 부족함을 느끼실 수 있겠지만, 여유로이 봐주시면 좋겠다.”
소은석 씨와의 인터뷰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킨 명장면 뒤에는 배우들의 빛나는 열연뿐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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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기자 ly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