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3.17 16:15 / 기사수정 2008.03.17 16:15
[엑스포츠뉴스=울산, 이현석] 1) 뛰어난 볼 키핑력 2) 폭넓은 활동 반경 3)제공권 장악 4) 동료와의 연계 플레이 5)뛰어난 침투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6) '골 결정력'까지….
현재 뛰고 있는 축구 선수 중 이 단어를 조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로 누가 있을까. 아마 십중팔구 적잖은 사람들이 현재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루드 반 니스텔루이(32)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 K-리그에도 이제 저러한 수식어를 붙일만한 선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엑츠 인터뷰' 만난 주인공은 지난 시즌 광주에서 활약하고 전역한 후 울산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진호(24)다.
지난 2008년 3월 15일 2008 K-리그 2라운드 울산과 포항의 경기, 전반 12분 반 니스텔루이의 전매특허인 소위 '잘라먹기'가 문수구장에서 나왔다.
그 골의 주인공이 바로 이진호였다.
이진호는 누구?
사실, 그는 데뷔전부터 주목을 받은 선수다.
이진호는 지난 2000년 브라질로 건너가 '축구 황제' 호나우도를 배출한 크루제이로 청소년(U-18)팀에 입단하였다. 그 당시 다수의 주요 일간지에 실릴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크루제이로 클럽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자신의 기량을 더욱 발전시킨 이진호는 그 후 2002년 이호, 송한복과 함께 이탈리아로 건너가 세리에A의 키에보 베르나와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 VS 이탈리아 전에서의 안정환의 골 이후 이탈리아 축구 협회에서 새로운 용병 영입관련 룰을 제정하면서 아쉽게도 이탈리아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꼭 안정환 선배 때문만은 아니에요, 월드컵 직후 이탈리아 축구협회에서 유럽선수 보호차원을 이유로 성인팀에는 아시아선수 1명, 그리고 u-18팀에는 입단자체를 허락 안했어요. 그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어요. 처음부터 원하는 큰 무대에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억울하게 뺏겼잖아요…….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세리에 A 같은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은데…."
그 후 이진호는 2003년 울산과 정식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K-리그 데뷔를 앞두고 러시아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왼쪽 쇄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거의 한 시즌 전부를 치료와 재활로 보낸 '신인' 이진호에겐 절망적인 첫 시즌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데뷔 연도에서 리그 1경기 출장이 그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시즌인 2004년도에도 3경기 출장이 전부였다. 브라질 크루제이로 시절부터 함께 활약했던 이호가 울산에서 선발출장 기회를 잡고 자리를 잡는 반면, 이진호는 그렇지 못했다.
"그 경기에 투입될 당시 2주 정도 무릎 부상으로 치료하다가 거의 완쾌돼서 코치님이 경기 감각이나 살릴 겸 경기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저를 넣어주셨는데 잘 해보려고 하는 마음에 무리하며 (김)도균이형이 올린 크로스를 수비보다 앞서 받으려다 넘어지면서 어깨부터 땅에 닿았어요……. 그래서 큰 부상으로 반년 이상 쉬었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러나 이진호는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기회를 엿봤다. 팀 연습 후 남아서 개인연습을 1~2시간씩 더 하고, 지인을 통해 해외리그를 시청 한 후 자신의 '롤 모델'인 '루드 반 니스텔루이'를 닮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스스로 자신감을 씌었다.
"노력은 정말 많이 했죠. 일단 노력이 없으면 경기장에 들어갈 기회조차 안주니……. 정말 노력할 땐 하루에 연습을 4회 이상 했어요. 새벽에 다른 선수들이 잘 때 몰래 나가서 새벽 운동하고, 오전, 오후엔 팀 훈련 한 번씩 그리고 제가 '반 니스텔루이'를 좋아하고 장점을 닮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지인들께 부탁해서 '반 니스텔루이'의 경기를 구해서 그 선수의 움직임을 살피고 볼 터치나 패스 이런 것들을 될 때까지 수백, 수천 번을 연습했어요."
이렇게 다른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 이진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05시즌 성남과의 경기에서 출장 기회를 잡은 이진호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노력에 보답하는 데뷔골을 성공시킨 것이었다. 그 후 선발 출장 횟수가 점점 잦아지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특히, 지난 2005년 10월 2일 울산이 프로통산 첫 300승을 기록한 경기에서 추격 골을 넣어 300승 기록에 일조하기도 했으며, 성남과 울산의 2005 K-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에서 후반 38분 다이빙 헤딩슛으로 결승골을 넣어 자신에 대한 믿음에 다시 한 번 보답했다.
이진호의 활약으로 울산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인천을 꺾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헌데, 여기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원래 이진호는 성남과의 준플레이오프전 직후 훈련소에 입대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발가락 부상으로 훈련소에서 '퇴짜'를 맞았다. 훈련소에서 퇴짜를 맞은 이진호는 치료에 전념했고, 플레이오프 2차전에 출전하여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그때 저도 모르게 발가락이 안 좋았나 봐요. 경기 뛸 땐 아무 이상 없었는데 훈련소에 들어가서 검사를 하니 발가락에 금이 가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훈련받는데 무리가 있다고 치료 다 받고 2개월 후에 다시 입소하라고 했어요. 발가락 덕분에 울산이 우승하는 걸 볼 수 있었어요(웃음) 저에겐 발가락부상이 정말 고마웠죠^^"
이렇듯 이진호는 힘겨운 노력을 통해 전국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떠오른 생각이 '왜 하필이면 한참 잘나갈 적에 입대를 했을까'였다.
"사실 전기리그에는 그다지 많은 출전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군대에 갔다 온 후 '다시 한번 주전에 도전해보자'라는 심정으로 후기리그가 시작하기 전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입영 신청을 한 후 카르로스(현 제칼로)도 이적하고 (김)진용이형도 다쳐서 저에게 기회가 찾아온 거에요. 그래서 '노력한 것을 보여주자'라는 심정으로 열심히 뛰었더니 경기가 잘 풀리는 거에요…. 그래서 덕분에 팀이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고……. 그런데 저도 그렇게 잘 풀릴지 몰랐던 거죠…"
한참 잘 풀릴 때 상무로 입대하게 돼서 안타깝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진호는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쉽진 않았어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꼭 다녀와야 하는 곳이고. 상무에 있으면서 정말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상무에 다녀온 후 이렇게 잘 풀리고 있잖아요(웃음)"
울산 토박이, 이제 울산의 스타로
광주에서 전역한 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진호의 가장 큰 목표는 자신이 주연으로 활약하여 울산을 우승으로 이끄는 것이다.
"일단 우승이 제일 하고 싶어요. 제가 주연으로 활약해서 우승을 맛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시즌 목표인 17골을 넣어서 득점왕도 차지해 보고 싶어요. 득점왕에 오른 다음 대표팀에도 '꼭' 들어가고 싶어요. 기회만 주어진다면 좋겠지만 해외진출은 차근차근히 준비하고 싶어요. 일단 울산을 우승시키고 난 후에…."
학성고를 졸업한 이진호는 사실 '울산 토박이'다. 브라질과 이탈리아에 유학 간 시절과, 광주에서 활약할 때를 빼곤 울산을 떠나본 적이 없다. 이진호는 어릴 적부터 공설운동장 스탠드에서 선수들과 호흡을 함께했다. 김병지, 김현석, 정정수를 보고 자랐으며, 울산의 성적이 곤두박질칠 땐 눈물을 같이했고, 우승을 할 때엔 같이 행복해 했다.
"96년도엔 TV로 울산의 우승을 지켜봤지만, 오늘은 경기장에서 울산의 우승을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제 어릴 적 꿈이 이루어진 날이에요."
2005시즌 울산이 우승한 날 이진호가 팬들과의 만남에서 한 말이다.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던 코흘리개에서 이젠 꼬마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축구선수 이진호, 앞으로 울산과 이진호의 영광이 항상 함께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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