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3.12 14:49 / 기사수정 2008.03.12 14:49
[엑스포츠뉴스=박영선 기자] 축구장에 들어서며 사람들은 제각각 무언가를 바란다.
누군가는 승리를 바라고, 골을 바라며, 승리 후 쏟아지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축구장에 들어선다. 어찌되었건, 모든 욕망이 만나는 꼭지점에는 언제나 승리가 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에 누군가가 이겼다면, 누군가는 져야만 한다. 모든 이들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승리를 얻어 축구장을 나갈 수 있는 없다.
세상의 모든 축구팬들이 항상 승리를 얻어갈 수 있었다면, 그들은 승리보다도 중요한 무언가에 대해 생각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승리보다 중요한 페어플레이 정신과 같은 당연하지만, 고상한 말을 따를 여유 말이다. 페어플레이 후 패배보다는 페어플레이와는 무관하더라도 승리하였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고, 구단주의 투자금이 부도덕하게 형성된 자금이라 할지라도 막대한 투자가 승리를 불러온 다면 더 이상 팬들은 도덕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승리는 모든 것들의 위에 존재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존재 자체로 축구팬들에게 승리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편애하는 ‘자신의 팀’이라는 존재다. ‘자신의 팀’이라는 것이 생겨버린 축구팬은 스스로를 ‘서포터’라 칭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 한다. 팀의 색깔에 따라 자신의 피는 붉다고 하거나, (이건 당연한 것이지만) 자주색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파랗다거나 주황색이라고도 한다. 물론 이것은 은유적인 표현이고, 상징적인 화법이다. 일면 종교적인 분위기까지 나는 이들의 맹목적인 사랑은 기실 종교에서 요구하는 그것과도 크게 다르진 않다. 사람들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고 싶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사랑 할 대상을 찾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그것이 사람이 되기도 하고, 직업이 되기도 하고, 업적이 되기도 하고, 테러가 되기도 하는 와중에 때론, 그것은 축구가 되기도 한다.
서포터, 그들은 어떻게 처음 자신의 팀을 정하게 되었을까?
각자의 개인사에 따라 여러 이유들을 내놓기도 하지만, 결국 지금 그들이 사랑하게 된 팀은 바로 그 팀이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마치 연인들의 사랑 고백처럼, 너를 사랑하게된 것은 네가 어떤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너이기 때문이야 라는 듯, 낯간지럽기 그지없는 고백이다.
사랑을 제외 한다면, 팀과 그들 사이의 관계는 서포터라 해도 표 값을 내고 경기를 보러 가는 여느 관중들과 다를 바가 없다. 때론 그들 역시 자신이 투자한 자본에 상충하는 대가를 요구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팀에 존폐가 위협될 만큼 경기력이 엄청나게 형편없었을 때, 자격 있는 자로써 항의 하는 카드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팀에 고용된, 비록 자신이 지불하는 표 값만으로는 그들의 수당을 모두 챙겨 줄 수 없을 만큼의 연봉을 받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서 용역을 제공하는 서비스 수행자가 아닌, 이웃이나 형제처럼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서포터라 자신을 정의한 사람들 자체가 이미 지불한 재화=제공된 용역과는 무관한 범위에 발을 들여 놓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오래된 말도 있지 않던가.
“이제는 제가 저 녀석들을 서포터 해줘야죠.” 대전시티즌 골기퍼 최은성이 말했다. 최은성, 올해로써 K-리그 12년차로 그는 대전시티즌의 붙박이 주전 골기퍼이다. 그는 축구 선수다. 그것은 그의 직업이다. 대전시티즌의 골기퍼라는 이름으로 지난 12년 동안 그는 자신의 노동의 댓가를 받고 있다.
12년이라는 숫자는 그가 K-리그에 몸담은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전시티즌에서 함께한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는 원클럽맨인 그가 가진 별명은 두 가지이다. 공식적으로 그는 ‘수호천황’이라 불리 우지만, 몇몇 팬들 사이에서는 ‘큰 형님’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호천황이라는 별명은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팀과 팀의 승리를 지켜내야 하는 골기퍼에게 지상최대의 찬사중의 하나일 것이다.
땅보다 높은 하늘에 있는 왕이 되었으니 지상에서 그와 견줄 자 없으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만큼, 대전 팬들이 최은성을 올려다보는 시선의 끝은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큰형님이라는 불량한 남자의 향기가 물씬 나는 또 다른 별명 역시, 수호천황과 다를 바 없는, 자신들의 골대를 팀을 지켜준 최은성에게 받치는 팬들의 높은 찬사이기도 하다. 큰 형님이라는 별명의 근원을 찾아본다면, 그가 어느덧 팀 고참 중의 한명이 되었을 때부터 였을 것이다. 처음 큰 형님이라 불리었을 때에도 그는 팀 내 최고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그를 큰 형님이라 인정한데에는 골기퍼라는 그의 포지션과 당시 주장의 위치에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필드 플레이어들과 달리 골기퍼는 자신의 서포터 앞에서는 45분 동안 등만 보이고 있어야 하거나, 혹 마주보게 된 남은 45분 동안은 필드 저 만치 너머에 가장 멀리 떨어진 선수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서포터들에게 있어서 골기퍼 란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일 닿지 않는 곳에, 적진의 바로 앞에 위치하거나, 자신들과 같은 방향을 보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서는 최후의 보루다.
대전팬들이 최은성에게서 언제나 제일 굳은 일을 묵묵히 앞장서 해치워주는 팀의 큰형 같은 존재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거기에 ‘님’이라는 존칭의 표현까지 붙여 최은성을 부르는 데에는 2002년 7월 31일 전북을 상대로 한 승리 이후 그해 시즌을 마감할 때까지 승리가 없었던 109일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함께했던 골기퍼를 향한 대전팬들의 믿음과 존경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패배에 대한 고통이 모두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팀이 패배했다는 것은 실점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매번 실점하는 경기를 마쳐야 했던 골기퍼에게는 제아무리 경기 중 기록되지 않은 슈퍼세이브가 많다 하더라도 위로가 되질 못하였을 것이다.
100년이 넘는 유럽의 축구 클럽들과는 달리, 12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가 겪기에도 짧은 세월이다.
12년씩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전은 처음 겪어 보는 일들이 많다. 그것들은 앞으로 대전시티즌에도 100년의 역사가 쌓였다 해도 다시는 누구도 대신 차지 할 수 없는 ‘첫 번째’ 라는 자리의 것들이다. 프로 12년차 최은성이 대전시티즌에서 기록해나가고 있는 것들은 굳이 첫 번째라는 자리가 아니어도, 이후 쉽게 누군가에 의해 순위를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400경기 출장과 이미 달성된 100 경기 클린시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업적이라 평가 받을 만한 것이다. 한 팀에서 100 경기 클린시트를 달성한 것은 현재 K-리그에서 최은성이 유일하다. 최은성의 경력은 그대로 대전의 역사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런 그가 2008년 시즌, 자신은 팀 동료들을 위한 ‘서포터’가 되겠다 한다. 하지만 그것은 포지션 경쟁을 양보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2008년 최은성의 목표는 12년 동안 그래왔듯 대전시티즌의 ‘선수’가 되는 것이다. 필드에서 날선 경기의 긴장감을 느끼며, 동료들과 함께 소리치고 호흡하기를 원한다. “아직 적어도 2,3년간은 선수로써 뛰고 싶습니다.” 라며 멋쩍게 웃는다. 이제는 웃음 결결이 주름이 잡힌다. 12년이라는 세월이 남겨준 또 다른 흔적이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나이순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실력으로만 비교될 뿐이다. 오히려 축구 선수에게 많은 나이란 실력도 폄하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2008시즌 대전시티즌에서 최은성과 서너살의 혹은 그 아래의 차이를 보이던 동료들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였거나, 그보다도 어린 새로운 얼굴들이다. 사회초년생이라고 부르기에도 설익은 그들이지만, 그들이 발을 들이 민 곳은 프로의 세계다. 적자생존이라고도 불리는 주전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만이 피치에 나갈 수 있다.
2008시즌 경기 중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갈고 가다듬기 위해 그들은 모두 겨울 전지 훈련지인 통영으로 내려갔다. 두 달여의 기간 동안 그들이 통영에서 흘릴 땀방울들은 대전시티즌의 2008년 시즌에 주춧돌이 되어 줄 것이다. 김호 감독의 체제하에, 대전시티즌이 패배에 익숙한 팀이 될 것인지, 능숙하게 승리를 쟁취할 줄 아는 팀이 될 것인지, 선수들 간의 주전 경쟁뿐만 아니라, K-리그의 다른 13팀과의 경쟁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저 녀석들, 제가 돌봐줘야죠.”
통영으로 내려가기 전 어린 후배들을 바라보며 최은성은 말했다. 자식뻘은 아니어도 어린 조카뻘은 될 듯 한 그들이 프로의 세계에 첫발을 내 딛는 통영에서 진정한 프로로 거듭 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위해, 그는 매서운 채찍질을 휘두르는 선배가 아닌, 그들의 서포터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큰형님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을 만큼 강한 인상의 그이지만, 후배들을 향한 시선이 왜 이리도 부드러운 것인지 새삼스러워 할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전부터 대전시티즌에서 그래왔던 것이다.
대전시티즌 구단의 재계약 포기로 10년간 뛰었던 대전시티즌을 떠나게 된 강정훈은 아쉬움과 아픈 마음을 뒤로 하며 언뜻 걱정 하나를 내비쳤다.
2007시즌 주장이기도 했던 강정훈은 고참 선수들이 대거 팀을 나가게 되고 팀의 주축이 2,3년 차 선수들로 이뤄지게 되는 다음 시즌에도 대전시티즌에서 사라지지 말았으면 하는 모습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경쟁 상대이기 전에 동료로써, 고참 선수들이 신인선수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이 깨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던 모습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대전의 방식'이고, 이제껏 대전을 만들어 온 중심 된 마음이었다. 생존경쟁, 적자생존의 프로의 세계에서 K-리그 팀들 중 가장 적은 운영비로 한해를 꾸려나가면서도 끈끈한 대전이라 불릴 수 있었던 배경에, 연봉을 떠나 그 팀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대전 시티즌을 만들어 낸 근본이었다.
프로 10년차인 그가 10년의 세월을 통해 깨달은 것은, 팀을 위해서는 나와 경쟁상대인 동료들도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100% 완벽한 선수들로만 이루어진 팀으로써 그린 대전시티즌이 아니라, 30명 40명의 선수들과 코칭스텝 모두가 하나가 되어 100%를 만들어 내는 끈끈한 팀웍이 상징이었던 대전시티즌이었고,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도 대전시티즌의 그런 모습을 계속 볼 수 있길 희망한다고 했다.
팀웍이란 경기장 안에서만 뛰는 주전 선수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벤치에서 혹은 경기장 밖에서도 대전시티즌이라는 이름만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유대감에서 베어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의 강한 경기력이다. ‘나’만 아닌 나와 함께 하는 동료들을 내 눈 안에 가슴에 담을 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숨소리가 내게 힘을 줄 수 있게 된다. 나와 함께 달리는 동료들에 대한 믿음은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해줄 것이고, 플레이에 힘을 실어 줄 것이다. 그렇게 결국 모두가 원하는 승리를 위해, 하나가 되어 달려갈 수 있게 된다.
통영 전지훈련장에서 다시 만난 최은성은 연습게임에서 좋지 않은 결과에 실망한 채 고개를 숙이고 피치를 나오던 김민수에게 다가가 조용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위로해준다.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다는 듯 한참은 어린 선수를 향해 큰형님의 미소를 보여준다. 그리고 프로 12년차의 노하우를 꼼꼼히 전수해준다. 제2의 창단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크게 변화된 대전시티즌 선수단이 2008년 달려가야 할 길을 위해, 자신과 함께 하는 동료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때론 감싸안아준다.
12년이라는 누구보다도 긴 축구인생을 달려온 최은성, 하지만 그가 앞으로 달려가야 할 길은 더욱 길다. 13년, 14년, 15년 후에도 그는 여전히 대전시티즌의 골문을 시키는 수호천황으로써 동료들과 경쟁할 것이다. 그것은 대전시티즌의 12주년, 13주년, 14주년이 될 것이고, 그는 축구 선수로써, 그의 후배들에게 대전시티즌의 선수가 살아가는 삶의 지표이며 상징이다. 최은성, 그가 가는 길이 곧 대전시티즌의 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대전시티즌의 선수임과 동시에, 대전시티즌의 서포터가 되어 그 길을 가려한다. 선수이기 이전에 12년을 함께한 동반자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그가 지켜온 대전의 골대처럼, 대전시티즌을 위해,
“이제는 제가 저 녀석들을 서포터 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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