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8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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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테의 값진 승리, 승강제의 또다른 묘미

기사입력 2008.03.05 20:34 / 기사수정 2008.03.05 20:34

김주연 기자

레반테 UD(Levante Union Deportiva)는 국내 축구팬들에게 아직 생소한 팀이다. 1909년에 창단했으니 그 역사만으로도 100년에 가까워지지만 발렌시아 CF와 함께 발렌시아를 연고로 하는 팀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레반테는 63/64 시즌에 1부리그에 올라온 후 2년간 1부리그에 있다가 다시 40년간 2부리그에서 머물렀다. 이후에는 1부리그와 2부리그를 계속 오르락내리락했다. 04/05시즌 1부리그로 승격한 지 1년 만에 2부리그로 내려갔고, 이듬해 2부리그 3위를 기록하며 1부리그로 복귀했다.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팀이기에 연고 기반이 같은 발렌시아에 눌려 빛 볼 일이 많지 않은 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주말 레반테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그 어느 팀에도 뒤질 것 없는 승자였다. 사실 현지에서 프리메라리가 33라운드 최고의 빅 게임으로 손꼽힌 것은 레알 마드리드와 세비야간의 2, 3위 대결이었다. 이들에 대한 뉴스가 한 주 내내 스페인 언론을 달구었고 스페인 축구팬들의 관심도 이 경기에 집중돼 있었다. 단 한 지역, 발렌시아 시민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발렌시아 시민들은 이번 시즌에 1부에 올라온 레반테와 힘나스틱(Gimnastic de Tarragona)의 맞대결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세비야의 경기가 리그 우승권의 다툼이었다면 레반테-힘나스틱 경기는 어느 팀이 강등권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경기였다. 직전 라운드까지 레반테는 승점이 같은 빌바오에 골득실차로 우위를 보이며 17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힘나스틱은 20위에 위치해 있었다.

레반테의 팬들에게는 강등권에서 더욱 멀어질 수 있는 기점이 되는 경기였던 셈이고 힘나스틱 팬들에게는 최소한 꼴찌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경기였다. 양팀 팬들의 높은 기대치를 반영하듯 레반테의 홈 구장은 모처럼 만원을 이뤘다. 발렌시아 시민은 물론 힘나스틱 원정팬들도 많았다. 이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레반테 홈 구장의 수용인원은 발렌시아 홈 구장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구장을 찾는 관중수는 수용 인원의 3분의 2도 채 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경기의 흐름은 거의 레반테가 몰고 갔다. 힘나스틱에게 결정적인 기회는 한두 번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레반테 구단 관계자는 하프타임 때 강등권에 있는 다른 팀들의 경기 상황을 알려줬다. 다른팀들이 다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기장에 모여든 모든 팬들이 환호하며 파도타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필자에게는 좀 생소하게 느껴졌다. 성적이 좋지 않고 꼴찌에 가까운 순위를 달리고 있는 팀끼리의 대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러 온다는 것은 역시 ‘승강제의 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승강제가 정착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유럽 리그이기에 오늘 레반테의 경기처럼 꼴찌팀들에게도 사활을 걸고 싸울 만한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관중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았고 경기 역시 시종 박진감이 넘쳤다.

특히 레반테-힘나스틱 경기는 단순한 승패의 의미를 넘어선 분위기가 느껴졌다. 양팀 선수들 모두 1부리그에 잔류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는 듯했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니 시즌 종반까지 꼴찌들의 경기도 선두권의 다툼만큼이나 흥미를 모으는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승리한 레반테는 결국 17위 자리를 사수했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현재 1위인 바르셀로나 선수들 못지 않게 리그 우승이나 한 듯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레반테의 선수들과 팬들에게는 정말 값진 게임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K리그 승강제의 개념을 도입하는 원년이 될 뻔한 작년 시즌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우승팀의 올 시즌 K리그 참가는 우여곡절 끝에 무산됐지만 진정한 승강제가 도입될 수 있도록 기틀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K리그의 꼴찌 다툼(?)에도 그 나름의 생존 의미가 있는, 시즌 끝까지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재 발렌시아에 살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발렌시아와 함께 레반테가 시즌이 끝날 때까지 17위를 유지하거나 혹은 순위가 더 올라가 내년에도 1부리그에 남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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