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정지원 기자] 이효리, 신화, 이선희, 신승훈, 백지영, 성시경, 윤미래, 아이유, 휘성. 그리고 수지, 백현에 에릭 베넷까지. 내로라 하는 가수들에 뒤지지 않고 그 무게감 겨루는 이가 있다. 바로 올해 작곡가 데뷔 25년을 맞은 박근태. 앞서 말한 가수들은 박근태와 손을 잡고 음악한 이들이다. 이처럼 그는 작곡가로 발을 내딛은 후 최고의 가수들과 함께 했고, 그들에게 최고의 성적을 선사했다. 자연히 박근태 역시 항상 정상의 자리를 유지했다.
작곡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과정 무탈해보이지만, 사실 박근태는 쉴 새 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스타일이었다. '최고의 작곡가'로서 한창 잘 나가던 시기, 보다 나은 음악을 위해 기존 작법을 모두 버리는 기행도 서슴지 않았고,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도 항상 그 다음을 위해 달려나갔다. 그렇게 2년간 준비한 작품의 첫 작품이 바로 수지X백현의 '드림'이었다. 1월부터 공개된 '이름 없는' 프로젝트, 또 성공이다.
◆이번 프로젝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뭔가를 하고 싶은 법이죠. '현재' 유행하는 음악과 구분되는, 일종의 경계가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이 이번 프로젝트 시작 이유입니다. 음반 작업의 일원으로 가수에게 곡을 주는 것과는 또 다른 거죠. 2년 정도 준비하고, 섭외 기간을 거쳐서 이제 한 곡 씩 내고 있는 겁니다.
◆이미 리메이크 프로젝트 '블랙라벨'을 진행한 적도 있는데요
-세 차례 정도 하다가 생각을 다시 재정비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어요.
◆올해 첫 타자는 엑소 백현과 미쓰에이 수지였습니다
-백현을 먼저 섭외하고 수지를 섭외될 것을 가정했던 상황에서 쓴 노래가 '드림'이죠. 그 결과 두 명에게 최적화된 노래가 나왔습니다. 노래 장르가 재즈라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두 사람 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어 섭외가 가능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 알겠지만, 키워드는 '선남선녀'였습니다. 아주 잘 어울렸죠.
◆왜 백현과 수지였나요
-수지와 백현에겐 '잘생기고 예쁘고 멋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그 부분에서 똑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두 사람은 모두 가수지만, 백현은 '아이돌 그룹'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본인의 음악성이 제대로 드러날 기회가 많지 않았고, 수지는 가수보다는 배우 쪽에 더 치중해 활동 중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음악적 실력과 재능을 드러내주고 싶었어요.
◆재즈 장르에 도전한 두 사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지는 이 노래를 듣고 먼저 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음악적으로도 재능 있고 욕심도 있더군요. 주변에서 '수지는 못하는 게 뭐야'라고 하던데요. 하하.
◆2월엔 에릭 베넷이 브라운아이드소울 '정말 사랑했을까'를 리메이크했어요. 놀라운 섭외였습니다
-재작년 겨울, 에릭 베넷의 매니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그를 통해 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사실을 전하며 프로젝트 합류를 제안했죠. 그 때 보냈던 노래가 브아솔의 '정말 사랑했을까' 편곡 버전입니다. 그 곡을 고른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저 곡이 좋고, 가수의 목소리와 상성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노래를 들은 에릭 베넷이 OK 하면서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됐죠.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네 명이 부른 노래를 혼자 불러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원곡의 일부는 살리되 일정 지점 이후부터는 에릭 베넷에게 맡겼죠.
◆가사는 어떻게 바꿨나요
-가사의 경우엔, 직역한 내용을 미국으로 보내, 그 곳에서 다시 작사하는 쪽으로 이뤄졌습니다. 원곡 가사와 비교했을 때 더 시적으로 바뀌었죠. 이런 식으로 상당히 자유롭게 프로젝트가 진행됐습니다.
◆이 프로젝트만의 특징이 있나요?
-지금까지 해온 음악을 답습하진 않을 겁니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조합을 선보이려 하죠. 수지와 백현이 재즈에 도전했듯 말입니다. 실제로도 이번 프로젝트는 가수 조합을 생각하고 섭외,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모티프를 찾고 노래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에릭 베넷처럼, 리메이크 작도 있지요. 가수들의 장점과 제 노래가 결합돼 대중에게 '하나의 감정'으로 전달되는 과정, 그 과정을 변함없이 보여드릴겁니다.
◆맞습니다. 백지영 '사랑 안 해', 브아걸 '아브라카다브라', 샵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등은 가수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반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다 잘 어울렸죠
-작곡가 생활을 하던 중 내가 잘 하는 음악을 가수들에게 나눠주던 흐름에서 변화를 맞게 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잘 할 수 있는 음악 위주로 하다보니 아티스트의 장점과 제 장점이 결합되지 않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아까 말했듯 이 모든게 하나로 합쳐져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 가수들의 장점과 제 노래를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가 언제인가요
-2000년 쯤입니다. 그때 저는 잘하려는 욕심에 가득 차서 음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을 평생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하다간 이도저도 안 될 것 같았죠. 그 때 미국에서 우연히 음악하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감정에 충실한 그들의 모습에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배웠어요. 그 날 그 시간, 가지고 있던 기존 작법을 다 버렸습니다. 완전히 새롭게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거죠.
◆지금의 작법은 어떤가요
-아티스트를 중심에 두고, '하고 싶은 음악'과 '해야만 하는 음악'과 '할 수 있는 음악'을 투영시키죠. 그럼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과, 제가 하고 싶은 장르가 나와요. 뭔가 분출돼야 한다는 마음이 생길 때, 그렇게 작곡을 시작하죠. 무조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건 아니에요. 아티스트를 보면 다양한 장르가 나올 뿐이죠. 사실 곡이 나오지 않으면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니 헛고생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하하.
◆박근태의 도전을 부르는 원동력은?
-'가능성'이죠. 이 노래를 기점으로 아티스트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면이 보여질 수 있다는 가능성. 그걸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다작이 가능한가요
-앞서 말했듯, 예전엔 내가 잘하는 음악만 뿌린 뒤, 아티스트들이 알아서 곡을 받게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작이 안되더라고요. 하지만 작법을 바꾼 뒤엔 다작 했어요. 2004년에만 40여곡을 냈죠. 하지만 지금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연 10곡 이내로 곡을 쓰고 있어요. 건강도 챙기고, 여행도 다니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1992년 '모르는 사람처럼' 이후 작곡가 25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슬럼프는 없었나요
-언제나 슬럼프입니다. 마치 감기몸살처럼. 음악하는 사람들은 다 알거에요. 예전엔 워커홀릭이라 부를 정도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일만 했어요.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채로요. 지금은 강박은 없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장벽이 있죠.
◆예를 들면?
-정형화된 흥행 코드에 맞춘 곡을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이를테면 'OO처럼 해주세요'나 '저번 OO같은 노래 좋던데, 그런 스타일로요' 같은. 사실 전 그러고 싶진 않거든요. 실제로 그러지도 않고요.
◆하지만 대중은 이런 고민을 모르죠. 아쉽진 않나요
-아니요. 저란 사람은 대중 앞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냥 음악으로 보여주는거죠. 실제로도 제 음악과 성격이 비슷해요. 음악가는 음악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말이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해요. 음악의 소신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굳이 내 음악과 내 이야기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가요계를 평가하자면요
-리스너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지면서 '공장형 가수'가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음악 하는 친구들이 떠오르고요. 전형적인 음악보다는 자유로운 표현이 중시되는, 틀을 깨는 음악이 사랑받고 있죠. 이젠 그럴듯한 포장에 속는 대중은 없어요. 뻔한 걸 싫어하는 거죠. 오리지널리티가 느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흐름이 전문 작곡가에게 반가운 건 아닐것 같은데요
-마냥 반가울 수는 없겠죠. 어떤 현상이 퍼지고, 머물고, 바뀌는 이 유행이 쉴 새 없이 바뀌어버려요. 유행하는 음악이 대중적으로 바뀌는 순간, 유행은 다시 변화를 맞으니까요. 그래도 작곡가들이 그 유행을 잘 받아들이고 음악 잘 해야죠. 하하.
◆ 그래서 팀을 이뤄 협업해 시너지를 내기도 합니다
-제가 그 협업을 거의 최초로 시작했다는 사실 아세요? 조영수와 팀을 이뤘었고, 브랜뉴뮤직과도 함께 했었죠. 하지만 협업 기간이 길진 않았어요. 또 '사단' 역시 만들지 않았어요. 팀을 이뤄서 음악을 하면 일적인 관계에 감정이 들어가고, 이내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작곡가로서 같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우린 다 같은 동료에요. 좀 더 일찍 태어나고 일을 많이 했을 뿐이라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입장은 아니죠. (그렇다면 후학 양성은?) 그런 개념도 없앴어요. 제자를 키운다기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함께 일을 하는거죠.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오래 일하고 싶습니다. 말은 쉬운데 굉장히 쉽지 않더라고요. 이번 프로젝트로 후배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 역시 리프레시의 일환입니다. 지금도 전 다른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렇게 더 잘 해야죠. 감각 잃지 않고.
◆마지막으로, 올해 프로젝트와 관련해 한 마디 더 해주신다면요
-히트를 노리는 듯한 음악은 지양할 것입니다. 노래가 너무 쉽지도 않을거에요. 요즘은 리스너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음악이 좀 어려워도 퀄리티만 좋으면 사랑받더라고요. 사실 일부 가수 섭외를 제외하고, 정해놓은 건 거의 없어요. 달마다 내야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습니다. 한 달에 한 두 곡, 두 달에 두 세 곡을 발표하는 쪽으로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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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기자 jeewonj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