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관명기자] 인공지능 알파고가 또 이겼다. '인류 최강자'라는 이세돌 9단을 또 좌절시켰다. 많은 프로바둑기사나 아마추어 애호가들이 느끼고 있다. "알파고에게서 후지와라노 사이가 느껴진다."
후지와라노 사이는 일본만화 '고스트 바둑왕'에 등장한 가상의 바둑 최고수. 헤이안 시대, 모함에 빠져 스스로 물에 빠져죽은 그가 구천을 떠돌다 빙의를 한 주인공이 바로 혼인보 슈사쿠였다. 혼인보 슈사쿠는 에도 시대 최고의 바둑기사로 칭송되는 실존인물인 만큼, 사이는 만화속에서 그야말로 천재 바둑기사로 설정된 셈. 그런 그가 20세기 들어 다시 초등학생(신도우 히카루) 몸에 빙의돼 내로라하는 현대 바둑고수들을 제압한다는 게 '고스트 바둑왕'의 핵심 내용이다.
지난 2003년 총 23권으로 완결된 '고스트 바둑왕'은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은 물론, 당시 프로기사들 중에서도 "사이가 나한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 사이가 긴 생머리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준수한 외모에, 만화에 등장하는 일본 국내외 고수들을 연이어 제압하는 초절정의 실력까지 겸비했기 때문.
사실 9, 10일 연이어 이세돌 9단을 꺾은 알파고에게서는 사이의 체취가 많이 느껴진다는 게 '고스트 바둑왕' 애독자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우선 영혼으로 존재하는 사이가 신도우 히카루의 몸을 빌려 바둑을 두는 설정부터가 비슷하다. 구글의 인공지능인 알파고 역시 인간 대리자인 아자 황의 몸을 빌려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뒀다. 아자 황은 잘 알려진 대로 알파고 프로그램을 개발한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의 선임연구원이자 실제 아마 6단의 실력을 갖춘 기사이다.
뿐만 아니다. '고스트 바둑왕'에 보면 신도우 히카루가 인터넷 바둑을 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도 실제 바둑을 두는 주인공은 신도우 히카루의 몸을 빌린 사이였다. 이는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 9단 대국에서 아자 황이 모니터에 일일이 이세돌 9단의 수를 찍어주는 모습과 유사하다. 사이 입장에서 모니터 화면을 통해 상대 인간의 수를 봤던 그 설정 그대로인 셈.
무엇보다 사이가 대국을 거듭할수록 실력이 막강해지고 표정변화를 읽을 수 없다는 점도 인공지능 알파고를 빼닮았다.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지켜보던 프로 바둑기사들이 알파고에 대해 "인간이 기존에 알고 있던 수가 아니다"고 입을 모으는 대목은 바로 만화에서 묘사된 사이에 대한 평가와 동일하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2004년 '고스트 바둑왕' 애니메이션이 국내 방송됐을 때 국내 감수를 맡은 주인공이 바로 이세돌 9단이었다는 것. 심지어 인간을 꺾기 위해 컴퓨터 바둑프로그램을 비밀리에 개발한다는 대목까지 나온다.
영혼으로 존재한 사이와 인공지능으로 존재하는 알파고. 분명한 것은 둘 모두 인간을 넘어 신의 한수에 도전했고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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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명 기자 el3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