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배우 김상호가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보는 이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는 그가 이번에도 극 속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대호'는 일제강점기,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으려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극중에서 김상호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의 사냥에 앞장선 포수대 리더 칠구로 등장한다. 대호를 잡아야만 하는 구경(정만식)과 산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하는 만덕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극의 균형을 유지한다.
'대호'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상호를 만났다.
대호의 모습을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접했다는 김상호는 많은 화제를 모았던 호랑이 CG 이야기를 먼저 꺼내며 "우리나라 CG 기술력은 이미 충분히 세계적이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에 어떻게 완성됐을지 궁금했었다. 작품을 보고는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만들어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얘기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 대호는 100% CG로 구현됐다. 6개월의 긴 촬영을 이어가는 동안, 김상호를 비롯한 배우들은 호랑이를 상상 속으로 그리며 연기를 펼쳐야 했다.
현장에서는 배우 곽진석이 모션 액터가 돼 동선은 물론, 실제 호랑이처럼 연기를 하며 도움을 줬다. 김상호는 "3m 80cm의 큰 호랑이다"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연기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궁금증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양분되지 않은 그 가운데 어디쯤엔가 머물러 있을 사람들. 그들이 과연 어떤 마음으로 삶을 이어갔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포수였던 칠구는 김상호가 표현하고 싶었던 인물에 부합하는 캐릭터였다.
그렇게 하나씩 캐릭터 분석을 해나갔다. 김상호는 언론시사회 당시 칠구의 캐릭터를 '무색무취'로 표현했던 것을 다시 떠올리며 "칠구의 무색무취라는 것은 구경과 만덕 사이에서 자기 포지션을 정확하게 지키려고 하는 점을 말한 것이다. 칠구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칠구는 물론이고 구경, 만덕도 무너진다. 마음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그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제강점기 그 시절의 불편하고 놀랍고, 또 황당할 수도 있는 그런 감정이 이입된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을 이었다.
때문에 대호라는 존재는 칠구에게도 '삶의 하나의 방식'이 된다. "산군님을 잡으면 안 된다는 마음속의 불편함이 있지만, 생활의 방식이기 때문에 사냥에 나서는 것이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상호가 분장, 의상 테스트를 하는 모습을 본 박훈정 감독이 "칠구는 됐네"라며 단번에 만족감을 드러냈을 만큼, 그는 겉모습부터 완벽한 칠구 그 자체였다. "아주 좋은 말이다. 그렇게 외형적으로 칠구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배우로서 좋은 일인 것 아닌가"라고 너털웃음을 지은 김상호는 "산을 오르고, 뛰어다니고 하는 장면들이 있었지만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진짜 힘든 것은 내가 원했던 표현 방법이 나오지 않을 때다. 쉽게 말해서 연기가 잘 안될 때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뛴다"며 "속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다른 작품을 할 때는 '배우를 계속해도 되나' 자괴감이 들 때도 있는데, 다행히 '대호'를 할 때는 그렇게까지는 안 되더라.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2015년의 시작과 끝을 모두 '대호'와 함께 하게 된 김상호는 그 사이에도 드라마 '디데이'를 비롯해 영화 '미쓰 와이프', '뷰티 인사이드'로 꾸준히 대중과 호흡해왔다. 스스로도 "신났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즐거운 작업들이었다. 어떤 역할이든지 보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배우 김상호가 가진 큰 힘이기도 하다.
자신을 '명품조연'이라고 평하는 주위의 의견에 김상호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웃은 뒤 "그 이유는 '저 사람은 명품조연이야, 신스틸러야' 이렇게 한정 지어놓는 것 같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김상호는 "저를 믿어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다. 저 뿐만 아니라 연기를 잘하는 좋은 분들은 정말 엄청나지 않나. 김상호라는 배우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참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다.
1994년 연극 '종로고양이'로 데뷔한 뒤 20년이 넘는 경력을 쌓아온 그도 매 작품마다 "진짜 잘하자. 지금 잘해야 나중에 죽을 때까지 이걸 하지"라며 스스로를 다잡고 있었다. 그만큼 연기는 그에게 절실하고, 또 소중한 존재다.
김상호는 "배우는 이 직업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인데, 거기에서 잊혀져간다는 것은 절망적인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유를 덧붙였다.
'연말과 연초도 '대호'와 함께 보내게 될 것'이라는 일상 속의 김상호는 취미로 캠핑을 즐긴다. '대호' 속 칠구와 그의 모습이 다시 한 번 꼭 들어맞는 순간이다.
앞으로도 계속 '연기' 하나만 보고 달려 나갈 김상호는 "저 스스로가 지금보다 좀 더 용기 있고,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며 다시 한 번 푸근한 웃음을 내비쳤다. 우리가 아는 '참 좋은 배우', 그의 진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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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