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정지원 기자] (인터뷰②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정선희에게 여유로움을 느꼈다. "내려놔서 그렇죠. 내가 내린 건 아니고 남이 내려주긴 했지만"이라는 말도 여유 있기에 할 수 있는 너스레다. 형식상 준비한 인터뷰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이야기는 술술 풀려나갔다.
"오로지 방송이 내 자존감의 기준이었고 최우선이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마치 성전같은. 방송 이외 다른 건 상상도 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걸 이제 안거에요. 예컨대 가족과의 관계가 있겠죠. 난 항상 가족을 '부양해야 할 대상'이라 생각했어요. 집 사드리고 차 사드리며 딸의 의무를 다한다 생각했죠. 그러다 내가 부양의 기능을 잃자, 정말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 때, 가족들이 최선을 다해 전투적으로 날 사랑해주더라고요. 부양? 우리 오빠가 나보다 더 잘하더라고요. 물질이 다가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된겁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니 버티듯이 살아온 지난 세월들에 미안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과거 내가 진행하던 라디오 엔딩멘트가 '누리면서 사세요'였는데 정작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던거에요."
정선희의 말마따나 '전투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준 가족들,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면서도 짐짓 대수롭지 않게 반응해준 연예계 지인들, "돈 없으면 정확히 더치페이다"며 그녀의 지갑을 닫는 장난도 서슴지 않았던 친구들까지. 사람들이 그녀를 살렸다.
"문득 내가 고층건물에서 실크가운 입으며 혼자 절대고독을 느껴야 하는, 아주 높은 위치의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늘에 기도하며 '수다스럽고 시끌시끌하고, 정리 안 된 듯이, 이렇게 상스럽게 행복해도 되죠? 행복하니까 그걸로 된거겠죠?'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만약 나 혼자 그 고독을 견디라고 했다면 그건 불가능이었을 거에요.
비싼 수업료를 내고 인생을 새로 배운다고 생각해요. 결핍된 요소들이 이제야 채워지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된거고요. 이젠 마음이 충만해지고 있습니다. 물질은 내려놓고 마음은 채우고. 그리고 책 홍보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책 역시 변화에 분명히 도움을 줬습니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또 다시 미래를 설계하는 중이다. "번역 한 번 할 때마다 노안이 온다"며 우스갯소리를 건네지만 결국엔 지금처럼 또 하나의 책을 번역하고 쓰고 싶을 것 안다. 앞으로의 길을 묻는 질문의 답만 미뤄봐도 알 수 있다.
"삶의 경험이 축적되면 직접 그림 그리고 글 써서 동화를 내고 싶어요. 머리가 희끗희끗 해졌을 때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사실 미대 준비를 해서 '넓고 얕게' 할 줄 아는게 있거든요. 하하. 또 난 한과 응어리가 없는 사람이에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팠던 기억은 있지만 한이 없으니 누군가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고 후련할 수 있다면 그 고민 다 받아주고 싶어요.
이제 우린 타고난 내 '덩어리'를 찾아야 합니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집착하지 않고, 어떤 것과도 무관한 행복을 찾아야 해요. 저 역시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내 모토 역시 '무관하게 행복하자'입니다. 우리 모두 '무관하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jeewonjeong@xportsnews.com / 사진=김한준 기자
◆정선희 인터뷰를 더 읽고 싶다면?
정선희 "의지대로 되는 삶이 어딨겠습니까"(인터뷰①)
정선희, 44년 세월에게 받은 선물(인터뷰②)
정지원 기자 jeewonj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