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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의 '시네리뷰'] '무뢰한', 그림자 사나이의 '인간실격'

기사입력 2015.06.20 13:00 / 기사수정 2015.06.27 01:11

이영기 기자


[엑스포츠뉴스=김동진 대중문화평론가] 형사 정재곤(김남길)은 살인자 박준길(박성웅)을 잡기 위해, 그의 애인 김혜경(전도연)이 마담으로 있는 단란주점에 영업부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점차 혜경에게 마음을 뺏긴다.

범인의 여자를 감시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형사 이야기. ‘무뢰한’의 기본설정은 격정멜로를 기대하게 했다. 주인공이 신분을 위장한다는 내용소개를 보고는 ‘색계’를 떠올리기도 했다. 적을 사랑한 스파이가 겪는 감정적인 고뇌와 신분이 발각될지 말지 초조하게 만드는 긴장감까지! 하지만 ‘무뢰한’은 이 고뇌와 서스펜스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림자 사나이들

‘무뢰한’의 사내들은 암흑 속에서 걸어 나오거나 사라진다. 암흑 위에 본을 뜨고 오려낸 인물들, 암흑 속에 오랫동안 몸을 숨기다가 어둠과 하나가 된 그림자 사내들. 이들은 누군가를 대신한다. 건달 민영기(김민재)는 영화 내내 등장하지 않는 보스를 대신해서 김혜경을 괴롭힌다. 정재곤도 불명예 퇴직당한 그의 선배 역할을 이어 받는다. 상하체계의 대역 혹은 대체물들.

빈자리가 진공처럼 인물들을 빨아들인다. 박준길을 협박하다가 죽은 사내의 자리는 민영기가 다시 채운다. 정재곤 역시 사라진 박준길을 대신한다는 듯이 김혜경의 곁에 머문다. 영화 속의 ‘스폰서’는 이들을 계속 누군가의 ‘새끼’이거나 꼭두각시로 묶어둔다. ‘얼굴 없는 자’의 명령과 청탁이 위에서 떨어진다. 스폰서는 정재곤이 수사를 미적거리자 주저 없이 청탁대상을 곽병규(곽도원)로 바꾼다. 좌우체계의 대역 혹은 대체물들. 줄줄이 엮여 있는 이 대체가능한 악당들.



정재곤은 유령처럼 등장한다. 재곤의 뒷모습을 쫓는 매혹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차가우면서도 몽롱하다. 마치 이불 밑의 죽은 사내가 불러내기라도 한 것처럼. 혹은 죽은 사내가 정재곤의 몸을 빌려 다시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오승욱 감독은 15년 전에 만든 ‘킬리만자로’에서 ‘건달 행세를 하는 형사’이야기를 이미 다룬 적이 있다. 악질형사인 형(해식)이 건달생활을 하다 죽은 쌍둥이 동생(해철)으로 위장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쌍둥이라는 외형적 동일성은 마치 동일인의 부활이나 유령의 귀환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미 거칠고 악질이었던 형사는 ‘건달’이라는 역할변화에서 딱히 변화할 게 없었다. 건달과 형사 사이에 존재해야 할 윤리적 칸막이가 없었다.

‘무뢰한’의 정재곤은 ‘킬리만자로’의 해식과 닮았다. 두 사람은 범인을 잡을 수만 있다면 ‘무슨 방법’이든 써도 상관없다고 믿는 부류인데, 특히 재곤은 돼지발정제를 이용해서 여자의 자백을 얻어낼 정도의 악한이다. 사실 ‘무뢰한’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내들은 사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란 것을 전혀 모른다. 박준길은 욱하는 마음에 살인을 저질러서 자신과 애인의 미래를 낭떠러지로 처박는다. 이 ‘나쁜 방법’에만 올인하는 사내들이 어떻게 좋은 결과를 얻겠는가.

단순화시켜 표현하자면 세상의 모든 범죄는 ‘나쁜 방법’으로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할 때 일어난다. 이런 측면에서 정재곤과 박준길은 똑같은 무뢰한이다. 어둠에서 어둠으로만 발길을 옮기는 그림자 사내들, 누군가의 유령이나 꼭두각시가 되어 자리바꿈을 하는 사내들, 죽고 죽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헛것들, 영원한 무뢰한들.



제주(祭酒)를 바치는 여인들

남자들은 죽고 여자들은 눈물을 흘린다. 남자들은 악당이나 살인자에 불과한데도, 그의 여인들은 죽은 남자를 위해 이불을 덮어 준다. ‘무뢰한’은 우리가 뉴스를 보며 매번 궁금해 했던 그 여자들, 탈주범을 숨겨주고 같이 도망가려고 했다는 그 여자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김혜경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인 것일까? 그녀와 박준길의 관계는 ‘보스의 여자를 사랑한 건달’의 위험한 순애보다.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김혜경과 박준길’이 보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뢰한’은 이들에게 그런 행복을 선사하지 않는다. 사랑을 위해 도망친 자들에게 더 험난한 시련을 안겨준다. 혜경은 ‘살인자의 애인’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다시 보스의 부하들이 혜경 주위에 얼쩡거리고, 도망 다니는 애인은 상의도 없이 혜경을 담보로 주점에서 돈을 가져간다. 박준길은 그 돈으로 도박을 한다! 불행에는 마지노선이 없다. 박준길과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혜경은 지금 여기 마카오 단란주점의 하루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이런 혜경에게 이영준이 된 정재곤이 다가선다. 건들건들 농을 걸고 소주잔을 주고받으면서, 혜경이 선 낭떠러지 안으로 재곤이 들어선다. 영화에서 가장 밝은 순간은 둘이 외상값을 받으러 돌아다닐 때다. 그야말로 희한한 데이트다.

혜경이 차린 단출한 밥상. 어두운 거실 바닥에서의 고백. 혜경에게 잠시의 위안이 구름처럼 떠돌다가 이내 흩어진다. 보스나 박준길이나 정재곤은 혜경 손목위의 담배빵과 다를 바 없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일은 더 크게 우는 것뿐이다.



인간실격

정재곤의 밤은 김혜경을 몰래 훔쳐보는 것으로 채워진다. 김혜경의 낡은 아파트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차로 미행한다. 뒤이은 재곤의 위장수사는 계획적이기보다는 우발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아마도 혜경이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다시 그것을 고스란히 쓰레기통에 버렸던 날. 그때 도청수신기에 들렸던 혜경의 울음소리가 재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지 않았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오지 않을 남자를 위해 기약 없이 음식을 준비하는 여자. 자신 역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기약 없이 범인을 가다린다. 더구나 박준길이라는 한 인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공통점. 그리고 이 기다림은 직업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는 희미한 자각. 그래서 재곤은 더 다가가기로 마음먹지 않았을까?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천사 다니엘은 서커스단의 공중곡예사인 마리온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는데, 마리온과 함께 하기 위해 천사의 직분을 버리고 인간이 된다. 다니엘은 천사일 때 영원성의 권태를 느낀다. 이 권태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고 목소리를 들어야하는 그들의 조건(인간 세계에 대한 불간섭주의)에서 기인한다. 나는 이상하게도 혜경을 감시하는 정재곤을 보면서, 천사 다니엘이 떠올랐다. 재곤의 사랑이 매우 기묘한 엿보기와 엿듣기에서 가지를 뻗어나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신(神)조차도 육신을 입으면 오욕칠정에 시달린다. 인생이란 이런 보편적인 감정을 넘나드는 역할극이다. 재곤이 혜경의 눈앞에 등장한 것은 이 ‘감정의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그가 서 있던 암흑 속에서는 밥이 차갑게 식고, 목소리와 얼굴이 희미하게만 반짝였다. 그래서 재곤은 마카오 단란주점이라는 무대에 오른다. 거기서 이영준이라는 가면을 쓰고 편안함마저 느낀다. 이영준은 그렇게 낮의 시간을 살아낸다.



하지만 정재곤은 끝내 이영준이 되지 못하고 김혜경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재곤은 이번 생에서도 무뢰한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정체를 까발리고, 연극의 막은 내려진다.

그가 마약중독자의 간병인이 된 혜경을 찾아가서 ‘자신은 경찰이었고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할 때, 그간의 모든 인간적인 감정은 산산이 부서진다. 재곤은 사랑을 느꼈으나 사랑의 방법을 여전히 모르고, 또한 여전히 가장 ‘나쁜 방법’으로 밤의 시간을 살아낸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과업이다.

그럼에도 화면을 향해 고통스럽게 걸어 나오는 재곤을 보면서 우리는 뭔가를 기대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유령처럼만 보였던 재곤이, 고작 뒷모습으로만 존재했던 재곤이, 그림자를 벗어 던진 고통으로 신음하며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그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그의 안녕을 빌어주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 사내는 자신에게 그 정도의 몫이 있음을 충분히 증명했다.

김동진 대중문화평론가 nivriti@naver.com 

[사진=무뢰한ⓒCGV아트하우스]

이영기 기자 leyoki@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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