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현기증' 포스터 ⓒ 메가폰
[엑스포츠뉴스=조재용 기자]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몇 초 사이의 현기증'만으로 한 가족이 눈 앞에서 붕괴됐다. 스크린과 마주하기 편할 리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이야기에 공감했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 어느 가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지난 3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영화 '현기증'은 학교폭력, 남편과의 갈등, 인간의 나약함과 생존본능 등 여러 단면을 한 번에 담았다.
'현기증'은 평범했던 가족이 치명적인 사고 이후 무참하게 파괴되는 과정을 그렸다. 순임(김영애 분)은 큰 딸 영희(도지원)와 사위 상호(송일국) 그리고 고등학생인 작은 딸 꽃잎(김소은)과 살고 있다.
하지만 영희가 한 차례 유산 끝에 낳은 아기가 순임의 치명적인 실수로 죽으면서 이 가족의 비극은 시작된다.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인 순임은 심한 자책감과 공포감에 자신의 죄를 침묵하고 점점 이상 행동을 보이지만 지켜보는 가족 모두 각자 직면한 자신의 고통 때문에 서로를 돌 볼 여력은 없다.
이 가족의 단란한 모습은 영화 시작과 함께 원테이크로 5분 가량 보여준 식사 장면 뿐이다. 영화 말미에 다시 만난 이들은 처참하리만큼 달라졌다. 순임과 영희는 날선 대립을 이어가고 상호는 그 사이에서 우왕좌왕한다. 혼자 남겨진 꽃잎이 도움받을 곳은 없다.
'현기증'은 화려한 카메라 워크도, 잔인한 장면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종일관 긴장을 놓지 못한다. 배우들의 눈빛만으로도 관객들은 숨이 막힌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까지 한달이 걸렸다"는 김영애는 신들린 연기로 관객을 조여오고,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도지원은 자식을 잃은 엄마의 슬픔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송일국과 김소은도 각자의 위치에서 서서히 소멸되는 인간을 담담하면서도 가슴시리게 담았다.
'현기증'의 메가폰을 잡은 이돈구 감독이 말하는 바는 '공감'이다. 인간의 나약함, 침묵으로도 많은 사람이 고통 받을 수 있고, 가족과의 관계, 나 자신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분명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여과없이 드러낸 '현기증' 앞에 한편으로는 숙연해진다. "인간이 끔직한 공포에 직면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까 의구심이 들어 시작된 영화"라고 밝힌 이돈구 감독의 실험이 꽤나 성공적으로 보인다.
한편 '현기증'은 데뷔작 '가시꽃'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많은 주목을 받은 이돈구 감독의 첫 상업장편영화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고 문제작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오는 6일 개봉.
조재용 기자
jaeyong2419@xportsnews.com
조재용 기자 jaeyong2419@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