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김기태 감독이 지난 23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의 사퇴 이유는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 엑스포츠뉴스DB
[엑스포츠뉴스=신원철 기자] LG 트윈스 김기태 감독이 사퇴했다. 김 감독은 지난 23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다. LG는 "지난 해 좋은 성적을 내고 올시즌 한때 팀 타격 1위에 오르는 등 선수단이 정비돼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믿고 있는 가운데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갑작스런 김 감독의 자진 사퇴로 LG 뿐만 아니라 야구계 전체가 깊은 충격에 빠졌다.
▲ 4월 23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LG는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김기태 감독의 자진 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 22일까지 프로야구 9개 구단 가운데 4승 1무 12패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22일 기준으로 최근 10경기 성적은 1승 10패로 극히 부진했다. 지난 20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격렬한 벤치 클리어링과 함께 LG 투수 정찬헌이 올시즌 1호 퇴장의 불명예를 안았다. 정찬헌의 보복성 빈볼로 인해 LG는 숱한 여론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LG는 삼성과의 3연전을 앞두고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선수들 모두가 예외없이 삭발을 감행했다. LG 관계자는 "고참들이 먼저 솔선수범했다. 대구로 이동한 뒤 20일 고참들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자 이틑날 후배들이 이에 동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도 이를 놓고 표면적으로는 "고마운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내심 "나이 마흔을 넘긴 선수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고 했다. 최근 악재가 겹치면서 심신이 지쳤다는 게 주위의 설명이다. 22일 경기 전 인터뷰 때는 최근의 민감한 부분과 관련해 극히 말을 아꼈다. 이날 삼성에 1-8로 완패한 뒤에는 "모든 게 감독 책임"이라고 짧은 코멘트만 남겼다. 이 때 이미 사퇴를 결정한 듯보인다. LG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22일 삼성에게 1-8로 패한 뒤 감독님께서 숙소로 돌아가서도 잠을 청하지 않으셨다. 백순길 단장과 밤새 술을 드시며 자진 사퇴 의사를 전달하셨다. 단장님을 비롯해 구단 전체가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지난 해 김기태 감독은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며 팀을 무려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 엑스포츠뉴스DB
▲ LG에서 2년 6개월의 발자취
김기태 감독은 지난 2011년 10월 7일 취임했다. 전임 박종훈 감독은 2011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구단에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김 감독은 당시 수석코치로 박 전 감독을 보좌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정식 감독이 됐다. LG는 다시 한 번 초보 감독을 선임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당시만 해도 비판이 적지 않았다. 첫 시즌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시작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직전 시즌 혜성같이 등장했던 선발 박현준과 강속구를 보유한 유망주 김성현이 승부 조작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여기에 팀 내 FA 선수 3명이 다른 팀으로 떠났다. 이택근이 친정팀 넥센으로, 송신영이 한화로 떠났다. 영원히 'LG맨' 일 것 같았던 조인성은 SK로 팀을 옮겼다. 성적이 날래야 날 수가 없었다. 첫해 성적은 57승 4무 72패로 7위였다.
김 감독은 2012시즌 "60패만 하자"는 역발상 목표를 내걸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팀은 하나가 됐다. 뜬 소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 감독의 선수 관리 능력이 빛난 덕분이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팀 분위기는 그대로, 성적은 올랐다. LG는 2013시즌 74승 54패로 마무리했다.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무려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골인했다. PO 두산전 고비를 넘지는 못했지만 LG의 목표 의식은 더욱 확고해졌다. 김 감독은 2014년도 시무식에서 "더 높은 곳"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이날 신년사를 통해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세 번째 이 자리에 선다. 부족한 면이 많았는데 잘 따라줘서 고맙다. 지난 10여 년 간의 아픔에서 벗어난 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기태 감독의 재임 기간 동안 LG를 괴롭혔던, 확인되지 않았떤 뜬 소문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었다. ⓒ 엑스포츠뉴스DB
▲ LG를 지탱했던 김기태의 힘
김기태 감독이 누구인가. 지난 시즌 LG를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과거의 명장도, '화수분 야구'의 조력자도 해내지 못한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결말은 '성적 부진에 따른 자진 사퇴였다'였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LG는 올 시즌 김 감독이 지휘한 17경기에서 4승 1무 12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LG에서의 통산 성적은 지난 3년간 135승 5무 138패다. 김 감독은 성적만 좋은 지도자가 아니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 운영과 관련해서 미숙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동안 이를 지적하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김 감독의 지도 능력을 의심할 수는 없다. 프로 스포츠에서 감독의 역할은 '경기 운영'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02년 김성근 현 고양 원더스 감독의 해임 이후 LG는 말 그대로 '바람 잘 날 없는 집안'이었다. 2003년 이후 김 감독이 취임하기까지 12년 동안 7명의 감독(대행 포함)이 지휘봉을 잡았다. 그 사이 이런저런 뒷말들도 많았다. 선수는 선수대로, 감독은 감독대로 뜬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른바 '강남 도련님 야구'를 한다는 소문은 LG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또 정신력이 취약하다는 비판도 적지않았다. 하지만 김 감독이 취임한 이후에는 이러한 뜬 소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 감독 사퇴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퍼져나갔다. 당분간 팀을 이끌어야 할 조계현 감독 대행은 시작부터 거센 외풍을 맞게 됐다.
김 감독의 존재감이 비단 좋은 성적에서 온 것만은 아니었다. 잊을 만 하면 흘러나오던 뜬소문이 잠잠해졌던 것은 정확히 김 감독의 재임 기간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가 지휘봉을 내려놓은 순간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시즌 종료까지 앞으로 100 경기 이상이 남았다. 조계현 감독대행이 계속 지휘봉을 잡을지, 신임 사령탑이 선임될지, 이도 아니면 극적으로 김기태 감독이 마음을 돌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됐건 LG의 새 사령탑은 다시 한 번 큰 짐을 안게 됐다. 갈 길은 먼데 똑바로 가기가 힘들다.
신원철 기자 26dvds@xportsnews.com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