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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중의 스포츠2.0] 알고보면 오래된 대만야구의 친일-반한 감정

기사입력 2013.11.15 23:07 / 기사수정 2013.11.16 03:39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타이중(대만), 김덕중 기자] #Scene1.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 1라운드 한국과 대만전이 열린 지난 3월 5일 대만 타이중시의 타이중 인터콘티넨탈 야구장. 경기 전 대만 관중들의 손에는 ‘봉타고려(棒打高麗)’라는 격문이 적혀 있는 포스터가 배부됐다. ‘방망이로 한국을 때리자’는 자극적인 문구다. 이 포스터는 현지 신문사에서 배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한국 응원단이 대형 태극기를 들어올리려 했으나 일부 대만 관중이 방해했다. 애국가가 후렴구로 넘어갈 때까지 '우~'하는 야유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Scene2. 한국을 탈락시키고 WBC 본선 2라운드에 진출한 대만은 도쿄에서 일본과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연장 접전 끝에 대만의 3-4 패. 그런데 이날 경기 앞뒤로 분위기가 한국-대만전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일본 측 중계 화면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 당시 많은 성금을 낸 대만에 감사하다는 내용의 도쿄돔 응원문구가 포착되자, 패배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대만 내 여론이 형성됐다. 이 에피소드는 일본 방송에서도 몇차례 소개되며, 적어도 야구에 있어서 두 나라의 유대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과 일본을 대하는 대만 야구팬들의 자세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먼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을 대하는 한국과 대만의 국민정서에 적지않은 차이가 있다. 한국은 1905년, 대만은 이에 앞서 1895년 부터 일본의 본격 지배를 받았지만, 일제는 한국과 달리 대만에서는 문인통치를 시행했고 상대적으로 강한 압박도 가하지 않았다. 16세기부터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터라 민족의식이 채 성장하지 못했던 대만은, 오히려 일제의 근대화 정책으로 국가 발전의 기틀이 확립됐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틀에서 대만과 일본의 야구 교류도 발전해갔다. 대만에 처음 야구가 도입된 때는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06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대만 야구는 일본인들의 전유물과 다름 없었다. 1915년 결성된 대만야구협회 소속 선수는 모두 일본인이었다. 변화는 1920년대 부터 생겼다. 대만 학생들로 구성된 지아이 농림학교가 일본 고시엔 대회에 4차례 참가했고 1931년 준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 학교 출신인 우부(일본명 : 고 쇼세이)는 193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창단 멤버로 이후 20년간 일본에서 활약했다.

1945년 일제의 패망, 4년 뒤 국공내전 패전 이후 대만에서 야구는 또 다른 의미를 추가하게 됐다.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탈대만화 및 중국화 정책을 폈다. 야구만 예외였다고 한다. 야구는 대만 인구의 80%를 상회하는 본성인들에게 10%대에 불과한 중국 본토 출신 외성인들이 강요하는 '중국적인 것'이 아니었다. 다수였던 본성인들에게 야구는 일종의 해방구였으며, 국제대회(리틀야구) 성적이 뒷받침되면서 대만은 야구에 관한한 강력한 '프라이드'를 갖게 됐다. 이 점을 야구가 대만의 국기가 된 이유로 풀이하는 의견도 많다.

대만 입장에서 한국은 분명 일본과는 경우가 다르다. 1992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역사적 공감대가 틀어져버렸다. 두 나라간 감정의 골이 깊게 패였다. 한국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대만은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1992년 당시 대만의 길거리에서 한국말이 들리면 돌을 던질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한다. 물론 21년의 시간이 지났다. 짧다고 볼 수 없는 시간이며, 대만의 젊은 세대들은 당시 상황을 깊게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실제 K-POP 등 대중문화의 전파 때문인지 한국에 대해서 꼭 비판적인 시각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야구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또 다르다는 점이다. 야구는 대만의 국기다. 중화문화권에 대비되는 대만만의 문화가 야구다. 대항할 종목이 아예 없고 '스포츠=야구'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국가간 감정은 누그러지고 있다고 해도 야구 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대만의 '프라이드'가 한국 야구를 겨냥하고 있는 듯싶다. 이는 눈살 찌푸려질 정도의 홈 텃세로 2013년 아시아 야구를 달궜다. 건전한 라이벌 관계로 볼 수 없는 비방이 난무했다. 2013 아시아시리즈 삼성-퉁이전이 17일 대만 타오위엔 구장에서 열린다. CPBL은 이번 대회 최고의 흥행카드로 삼성-퉁이전을 꼽고 있다. 경기도 경기지만 대만 팬들의 반응이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사진= 대만 팬들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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