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용운 기자] 스승이 제자를 시기(猜忌)했다. 술자리에서 입에 담기도 창피한 말을 공식문서화했다. 제자의 아픔을 들춰낸 가해자이면서도 농담이었다는 말로 벗어나려는 뻔뻔함까지 보여줬다.
WK리그 6개 구단 감독들이 박은선(27·서울시청)의 인권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서울시청을 제외한 이들은 지난 5일 여자축구연맹에 박은선의 성별 논란이 포함된 10가지 안건을 제출했다.
"술자리 농담이었다"던 해명과 달리 7번에는 '박은선 선수 진단, 13년 12월31일까지 출전여부를 정확히 판정하여 주지 않을시 서울시청팀을 제외한 6개 구단은 14년도 시즌을 모두 출전 거부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감독들이 앞장서 박은선의 축구인생을 위협했다. 방황을 끝내고 그라운드로 돌아와 정상을 찍은 제자에게 박수를 쳐주지 않았다. 지난 시간 무수히 많은 성별 논란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봐왔음에도 자신들이 코너에 몰리자 그 카드를 다시 꺼냈다.
발단은 질투였다. 이미 지난 시즌 박은선이 돌아왔지만 그때는 조용했다. 서울시청의 성적이 하위권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올 시즌은 다르다. 일찍부터 팀 훈련을 소화한 박은선은 19골로 정규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이에 힘입어 서울시청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국체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갑자기 성적이 급상하자 태클을 건 셈이다.
문제는 박은선을 전술로 막으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그라운드에서 내쫓기 위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전 같으면 흔들렸을 박은선이다. 박은선은 '여자축구의 박주영'이라는 평가와 함께 '풍운아'로도 불린다. 아직 미성숙하던 어린 시절 팀 이탈과 합류를 반복했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인 행동이 우선이었다. 그랬기에 이번 논란이 일었을 때 가장 우려한 부분도 박은선의 돌발행동이었다.
그러나 박은선은 이제 달라졌다.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이젠 그냥 아무생각 안 하고 푹쉬다 내년 시즌 준비하는데 집중하려 한다. 니들 하고 싶은대로 해라. 나도 내 할 일 하련다"고 격양됐지만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의 감정과 싸우지 않고 우선순위를 축구에 맞춘 모습에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서울시청 서정호 감독도 "과거였다면 운동을 안 하겠다는 말이 먼저 나왔을 텐데 지금은 다르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고 믿음을 보냈다.
더 이상 부족한 스승의 세치 혀에 자신의 축구인생을 포기할 만큼 박은선은 어리지 않다. 모진 풍파를 견뎌내선지 풍운아는 단단해졌고 덩치만큼이나 정신력도 함께 성장한 모습이다. 이제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된다. 주변에는 자신을 믿는 서 감독이 있고 팬들은 '박은선을 지켜주자'는 서명운동에 뜻을 함께하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조용운 기자 puyol@xportsnews.com
[사진=박은선 ⓒ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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