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다. 대표팀 경기가 열리면, 모든 사회가 그대로 일시정지 모드로 돌입하는. 병원과 소방서와 학교가 멈추는데, 학교가 개점휴업인 건 교사들이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길거리 응원단은 브라질이 볼을 잡고 하프라인만 넘어서도 폭죽을 터뜨리며 열광하기 시작한다. 1970년, 월드컵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4-1로 물리치고 사상 최초의 3회 우승을 달성하며 줄 리메컵 영구소유권을 획득하자,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춤을 추던 대통령이 화끈하게 선언한 ‘임시 공휴주.’ 하루 가지고는 부족하니 한 주를 통째로 빼서 축구축제를 벌이자는 결정. 국기 안에 그려진 지구본을 축구공 문양으로 바꾸자는 제안은 안타깝게도(?)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다.
브라질 축구는 한국 축구가 넘을 수도 닿을 수도 없는 나라였다.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상대와 같은 조건에서 한 합을 겨룬다는 건 70년대만 해도 ‘공상과학 소설’같은 이야기였다. ‘브라질’이 대통령배 축구대회에 모습을 보인 건 1976년부터다. 사실은 상파울로 U-21세 팀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팬들은 브라질 본토 축구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일개 프로팀의 U-21팀을 우리 대표팀이 버거워하던 시절이다. 상파울로 U-21은 몇 년 연속 대통령배에 출전했고, 이후 ‘브라질’팀의 구성은 1981년엔 레이싱 코르도바 리져브, 82년엔 아틀레티코 미네로 리져브, 84년엔 방구로 다변화된다.
한국 축구가 FIFA 주관 공식대회에서 브라질을 만난 건 1983년이 처음이다. 멕시코에서 벌어진 U-20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북한에 3-5로 패하고 탈락했다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3,4위전 난동으로 ‘국제대회 5년 출전정지’의 징계를 받은 북한의 대타로 본선 진출. 첫 경기를 스코틀랜드에 0-2로 내줄 때만 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골키퍼 김풍주가 지면으로 낮게 깔리는 공을 쳐내려 다이빙을 했으나 겨드랑이 사이로 공을 흘려보내 실점했을 만큼 우리 선수들은 굳어 있었다. 두 번 째 경기 6월 6일 홈 팀 멕시코와의 2차전이 신화창조의 분수령이다. 첫 경기 장소 토루카에서 200km를 이동, 멕시코시티 아즈테카 스타디움의 10만 관중 앞에서 펼친 명승부. 한국은 11분 만에 선취점을 얻어 맞았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태. 2패면 어차피 에선 탈락이다. 한국 선수들이 긴장감을 벗어던지고 깨어나기 시작했다. 부담감이 심했던 건 오히려 멕시코였다. 29분, 노인우의 통렬한 중거리 슛으로 1-1. 경기종료 5분을 남기고 ‘지옥문 여행.’ 한국이 골 문 2미터 앞에서 날린, 낮은 크로스를 반 쯤 웅크린 상태에서 날린 원바운드 헤딩슛은 멕시코 오른쪽 골포스트를 퉁겼고, 곧바로 이어진 반격에서 펼쳐진 멕시코의 롱볼 크로스에 이은, 페널티 박스 바로 안쪽에서 쏘아올린 고공 헤딩슛은 그 지점까지 달려나간 한국 골키퍼 이문영의 점프보다 빠르고 높았지만, 골대 앞에서 커다랗게 바운드된 뒤 크로스바의 상단을 때리고 경기장을 벗어났다. 종료 1분 전 이태형의 크로스를 신연호가 골대 바로 앞에서 인사이드 킥으로 정확히 가격. 멕시코 골키퍼는 필사의 다이빙으로 이 공을 걷어냈는데, 불규칙 곡선을 그리며 떠오른 공을 신연호가 다시 달려들며 머리로 밀어 넣으며 승부를 끝냈다. 이 경기 후 멕시코 언론이 우리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로 ‘붉은 악마’다.
3차전 대 호주 전 2-1 승리. 준준결승 우루과이 전 연장 접전 끝에 다시 2-1 승리. 우리는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우루과이는 크로스바를 두 번 맞췄다. 그렇게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브라질이다. 6월 15일 몬테레이.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 축구사 최대의 빅게임. 브라질과 대등한 자격으로, 그것도 친선경기가 아닌 FIFA 주최의 선수권대회에서 만났다는 감격. ‘언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 버린 거지?’라는 느낌이 들만큼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던 경기. 한국은 선전했다.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브라질은 처음 겪는 스타일의 축구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전반전 15분 이태형의 패스를 받은 김종부의 완발 슛이 브라질 골문 왼쪽 하단을 통과하며 1-0. 이거,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 아냐? 20여 분이 지나면서, 브라질은 경기 템포를 조절하며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경기 템포를 한없이 느리게 가져가다 급격히 스피드를 올려 한국 팀의 진을 뺐다. 그 때까지 한국 축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3단 기어를 넣고 달리는 자동차였다. 상대가 1단부터 5단까지 변속하며 경기하자 마땅한 대응전략을 찾지 못했다. 상대가 에너지를 비축할 때도 우리는 전력으로 뛰면서 체력을 소진했다. 브라질은 전반에 1-1을 만들고 후반 36분 역전골을 터뜨리며 결승행 티켓을 가져갔다. ‘순발력과 세밀한 개인기’라는 강점을 극대화한 경기 운영. 브라질은 결승에서 실바의 골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물리치며 우승햇고, 우리는 3-4위전에서 이기근의 선제골로 앞서가다 폴란드에 1-2로 역전패했다.
옛 일을 추억하는 와중에 논어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則不復也.
자왈, 불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 불이삼우반즉불복야.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고, 애쓰려 하지 않으면 가르쳐 주지 않으며, 한 귀퉁이를 들어주었을 때 나머지 세 귀퉁이를 들어 반응하지 못하면 다시 더 일러주지 않는다.
유럽과 남미 프로팀의 2군도 이기지 못하던, 브라질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아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한국을 찾아준 것만으로도 감사를 표하던 때가 불과 40년 전이다. 그런데 지금은 브라질과의 A매치.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기의 플레이를 펼친 태극전사들에게 박수를.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경기장에서 인터뷰장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쉽을 보여준 브라질에게 찬사를. 상암벌 대회전은 우리의 0-2 패전으로 막 내렸지만, 감정적 비난과 욕설을 몰아낸 대한민국 관중과 언론에도 감사를. 어쩌면 우리는, 축구실력 ․ 경기장 건설 ․ 관중 매너 등 모든 면에서 ‘한 귀퉁이를 들어주었을 때 나머지세 귀퉁이를 들어 반응하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세계 축구계의 기대주가 아니었을까. 아직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이제까지의 성취만으로도 우리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청명한 가을이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한국과 브라질전 ⓒ 엑스포츠뉴스DB]
조용운 기자 puyol@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