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문상열 칼럼니스트] 마이애미 말린스는 1993년 콜로라도 로키스와 함께 창단됐다. 출범할 때는 플로리다 말린스였다. 지난해 새로운 구장 말린스 파크 개장과 함께 이름도 플로리다에서 마이애미로 바꿨다. 프랜차이즈가 마이애미에 있다. 말린스는 1993년에 창단돼 올해 포함해 23년 동안 단 한번도 지구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90년대 이후 출범한 콜로라도, 탬파베이 레이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은 지구우승을 모두 한 차례 이상씩 차지했다. 말린스는 강팀들이 우글거리는 동부지구에 속한 터라 지구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미국은 4대 메이저 종목 팀들의 동부지구가 모두 강하다. 하지만 말린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두번이나 차지했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바로 메이저리그가 도입한 와일드카드 제도 덕분이다. 1997년 처음으로 와일드카드 팀으로 정상을 밟았고, 6년 후 다시 우승을 했다.
시카고 컵스가 무려 105년 동안 월드시리즈 정상을 탈환하지 못하는 것과 매우 대조를 이루는 팀이 분명하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한 말린스를 명문구단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우승은 못했지만 컵스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팀이다. 미국에서는 컵스를 ‘lovable losing team’이라고 한다. 허구헌날 패하지만 사랑하는 팀이다. 국내 프로야구의 LG 트윈스를 'Lovable losing team'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사실 스포츠에서 우승을 시점으로 이른바 ‘왕조(다이너스티)’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구단의 프런트나 감독도 타이밍이 됐다는 것을 안다. 국내 프로야구 왕조의 원조는 해태 타이거스였고, 두번째가 김재박 감독이 이끌었던 현대, 세번째 김성근 감독의 SK, 그리고 현 류중일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를 다이너스티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왕조가 되려면 최소한 정상 2연패가 기본이다.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9년 사이 4차례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명장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미스터 펀더멘탈 팀 던컨이 이룬 금자탑이다. 스퍼스는 올해도 파이널에 진출해 마이애미 히트에게 패했지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스퍼스는 분명 왕조를 이뤘다. 4회 이상 우승은 보스턴 셀틱스, LA 레이커스, 시카고 불스만이 이룬 업적이다. 그러나 스퍼스는 단 한번도 NBA 정상을 2연패하지 못한 독특한 팀이다. 레이커스와 불스는 3연패, 셀틱스는 8연패를 이루며 다이너스티를 구축했다.
NFL 세인트루이스 램스는 1999년 테네시 타이탄스를 23-16으로 꺾고 구단 창단 이래 첫 슈퍼볼 정상에 올랐다. 당시 아레나 풋볼과 슈퍼마켓 창고를 정리했던 대타 쿼터백 커트 워너의 센데렐라 스토리로 더 유명해졌다. 워너는 이 우승으로 NFL의 정상급 쿼터백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램스는 왕조를 이룰 기회를 놓치고 ‘원타임 원더(슈퍼볼 우승)’로 끝났다. 2001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의 슈퍼볼 격돌에서 절대적인 전력의 우세를 살지 못하고 톰 브래디에게 17-20으로 패하고 말았다. 스포츠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이 때 두번째 우승을 거뒀다면 램스는 막강 전력을 유지했을 수 있다. 램스는 이후 몰락해 바닥을 치고 있다.
LG 트윈스의 마지막 우승이 1994년이다. 내년이면 우승 2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해 5월 잠시 귀국했을 때 94년 우승 때의 프런트 멤버와 코치, 선수들과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당시 기자는 LG 담당이었다. 2014년에 LG가 우승 20주년 행사를 벌일 수 있을까라는 대화등이 오갔다. 국내는 성적이 나쁘면 이런 행사는 애시당초 계획을 내놓을 수 없는 분위기다.
LG의 1994년 우승은 신바람 야구였다.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이광환 감독과 신인 류지현, 서용빈, 김재현 3총사에 마운드의 베테랑 정상흠, 김태원, 김용수, 불펜에 강봉수, 차명석, 차동철 등 요즘처럼 신구조화를 이룬 탄탄한 전력이었다. 기자는 LG의 가장 아쉬운 대목이 바로 1994년의 우승을 이듬해도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1994년 우승 때 전력은 향후 몇년 우승은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 구단 프런트도 오프시즌 전력보강에 적극적이었다. LG가 2년연속 우승을 차지했다면 10년 연속 ‘노 포스트시즌’의 좌절은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팀은 항상 경쟁권을 갖춘 탄탄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 야구의 파이어니어 이광환 감독의 중도 해고도 없었을 것이고. 이 감독은 나중에 한화 이글스, 넥센 히어로스 감독을 수행하면서 처음에 추구했던 자율야구 등이 실종돼 비난을 받았다. 진정한 명문구단으로서 도약할 수도 있었다. 국내 프로야구는 진정한 명문구단으로 불리울 수 있는 팀이 없다. 그래서 삼성의 향후 운영 등이 중요하다.
1995년 LG는 0.5게임 차로 정규시즌 선두를 OB 베어스에 헌납했다. 당시 겉으로 드러난 게 이른바 ‘방위병 파동’이었다. 이 전에는 방위병이 원정경기도 출전할 수 있었다. 요즘에야 있을 수 없지만 그 때는 묵인됐다. LG는 팀의 핵심전력이었던 내야수 박종호와 류지현이 방위병이었다. 홈과 원정에서의 전력이 크게 차이가 나면서 엇박자 야구가 계속됐다. 결국 OB는 74승47패 5무, LG는 74승48패 4무로 정규시즌 1,2위가 갈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내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는 정규시즌 1위 팀이 ‘자뻑’을 하지 않는 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게 돼 있다.
아깝게 2위로 주저앉은 LG는 플레이오프에서 안방의 이점을 안고도 롯데 자이언츠에게 2승4패로 패해 완전히 몰락한 시즌이 돼버렸다.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OB는 롯데를 4승3패로 꺾고 1982년 원년 이후 13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이 것은 겉으로 드러난 LG의 정규시즌 2위, 한국시리즈 탈락이었다. 문제는 항상 그렇지만 내부에 있었다. 선수들간의 갈등이었다. 세월이 흘러 기자가 훗날 취재한 바에 따르면 베테랑 김용수, 정삼흠, 김태원 등 마운드 3인방의 갈등이 폭발일보 직전이었다고 한다. 당시 야수 다른 팀에서 이적해 우승 청부사로 통했던 베테랑은 “95년 LG가 한국시리즈 우승은 절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감지했다”고 한다. 3명의 투수들이 워낙 자기 고집을 내세워 팀워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4년 우승 이후 고참들이 한국시리즈 2연패에 집중하면서 한 배를 탄 동지가 됐다면 LG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는 항상 교훈을 남긴다.
LA|문상열 스포츠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LG 선수들 ⓒ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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