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잠실, 강산 기자] "느린 커브를 더 느리게."
LG 트윈스 사이드암 우규민은 위력적인 패스트볼로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가 아니다. 빠른 승부와 정교한 코너워크를 앞세워 '맞혀 잡는' 피칭을 선보인다. 야수들의 도움도 필수다. 최고 구속이 140km도 채 안 되지만 그에겐 '팔색조 커브'가 있다. 풀타임 선발 첫해에 팀 내 최다승(7승) 투수로 등극할 수 있던 이유다.
우규민은 올해 LG 토종 선발진의 중심이라 불릴 만하다. 시즌 성적이 이를 말해준다. 16경기(14 선발)에서 완봉승 포함 7승 3패 평균자책점 3.43.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1.19로 리그 4위다. 그만큼 안정적이다. 무엇보다 올 시즌을 앞두고 "맞혀 잡는 빠른 승부를 펼치겠다"는 공약(?)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11일 NC전이 그랬다. 우규민은 이날 6⅔이닝 5피안타 5탈삼진 무사사구 1실점 호투로 시즌 7승째를 따냈다. 가장 인상적인 구종은 커브였다. 이날 우규민은 25개의 커브를 던졌는데 최고 구속은 124km였다. 가장 느린 커브는 84km였다. 같은 구종인데 40km 차이가 났다. 그의 변화무쌍 커브에 NC 타선은 5회까지 단 2안타로 꽁꽁 묶였다.
우규민은 이날 투심패스트볼(33개)과 커브 위주의 투구를 선보였다. 간간이 체인지업(12개)과 포심패스트볼(9개)을 섞었지만 구사 빈도는 높지 않았다. 79구 가운데 58구가 직구와 커브였다. 그는 "주무기인 커브에는 자신이 있다. 언제 쓰느냐가 문제다"며 "오늘은 직구 위주 승부를 펼치다 결정구로 커브를 사용했는데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날씨가 습하다 보니 변화구가 잘 먹혔다. 경기 전부터 달라붙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우규민은 이날 등판을 앞두고 같은 사이드암인 신정락이 등판한 9일 경기를 복기했다. 효과가 있었다. 그는 "(신)정락이도 커브를 던진다"며 "내가 정락이보다 직구 구속이 느려 변화를 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신정락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6km까지 나온다. 반면 우규민은 140km가 채 안 된다. 그는 "커브도 더 느린 커브가 있고, 빠른 커브, 더 빠른 커브가 있다"며 "오늘 80km대 느린 커브를 던지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볼이 되더라. 느린 커브를 더 느리게 던질 수 있게끔 했다. 나름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40km의 구속 차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날 우규민은 5개의 탈삼진 중 3개를 좌타자를 상대로 잡아냈다. 일반적으로 사이드암 투수는 좌타자에 약하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이날 NC 좌타라인(김종호-나성범-조영훈-박정준-차화준)은 우규민을 상대로 16타수 3안타에 그쳤다. 특히 좌타자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우규민의 커브는 일품이었다.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도 빛났다. 6회초 1사 1, 2루 위기에서 김종호의 3루 도루를 잡아낼 때는 1.18초에 불과한 그의 빠른 퀵모션이 큰 몫을 했다. 이후 추가 실점은 없었다.
잘 되고 있지만 만족이란 없다. 이날 6회초 3연타를 맞고 실점한 장면을 복기하며 "NC전에서 항상 집중타를 맞았다. 오늘도 6회 3안타 맞고 실점했는데 좀 더 집중했어야 한다"던 우규민, 그는 개인 성적에 어떤 욕심도 없단다. 그는 "올 시즌은 기회다. 개인 욕심보다는 내가 못하더라도 팀만 이기면 된다"며 "무조건 포스트시즌 가는 게 첫 목표다"고 힘주어 말했다. 변화무쌍한 '팔색조 커브'와 달리 그의 목표는 한결같았다. 믿음직한 선발투수의 위용이 느껴졌다.
강산 기자 posterboy@xportsnews.com
[사진=우규민 ⓒ 엑스포츠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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