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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득도의 경지' 오른 류현진의 당당함

기사입력 2013.03.26 18:24 / 기사수정 2013.03.30 00:43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류현진이 이겼다. 시범경기 2승째. 7이닝 1피안타 2실점. 타석에선 사이영상을 받은 투수를 상대로 안타도 쳤다. 이제서야 조금 안심이 된다. 초반의 부진을 드디어 극복했구나. 지금부터는 행복한 고민을 해도 괜찮을듯 하다. 과연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첫 해부터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을까. 있다. 얼마나. 상당히. 그 근거는?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를 취재중인 허구연 해설위원이 전하는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허니컷 투수코치 등 LA다저스 코칭스태프들의 말을 들어보면 류현진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일단 류현진이 마운드를 지배한다는 점을 중요시하고 있다. 코칭스태프는 그날 구위나 스피드보다 마운드에서 지배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더욱 중점적으로 본다. 류현진은 첫 경기부터 지배력을 보여줬다. 흔들리지 않는 투수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 견해도 비슷하다. 류현진은 사소한 것에 흔들림이 없는 선수이고, 하면 된다는 마인드가 있다. 멘탈과 마운드 지배력이 뛰어난 선수이니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다.”

류현진에 대한 평가가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초반 몇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스프링캠프 달리기 훈련에서 낙오하자 현지 언론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검증되지 않은 투수다, 기초체력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자기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거냐, 사상 최악의 먹튀가 될 조짐이 보인다, 한국 프로야구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리그다, 한국에서 거둔 류현진의 성적은 참고기록에 불과하다 등등. 류현진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투수였다. 전력이 약한 한화 이글스를 홀로 떠받친다고 팬들이 그에게 헌정한 별명이 ‘소년가장’이 아니었던가. 류현진이 상대팀을 영봉하면 이기고, 한 점을 주면 비기고, 두 점을 주면 진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떠돌만큼 그는 피아를 막론하고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런데, 집중 비난? 그것도 한국 야구 수준까지 싸잡아서 융단폭격? 이런 경우, 어지간한 사람이면 곧바로 상처받고 흔들리기 쉽다. 중심과 자신감을 급격히 잃어버리고 방황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요즈음은, 기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증폭하고 퍼나르는 저 무시무시한 인터넷마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공자님의 처방은 무엇? 설마 공자님이 인터넷 대응책까지 언급하셨다고?

子張이 問明하자 子曰 “浸潤之譖과 膚受之愬가 不行焉이면 可謂明也已矣다. 浸潤之譖과 膚受之愬가 不行焉이면 可謂遠也已矣다.”(안연편/6)
자장이 문명하자 자왈 “침윤지참과 부수지소가 불행언이면 가위명야이의다.
침윤지참과 부수지소가 불행언이면 가위원야이의다.

해석) 자장이 물었다. 명철함(밝은 분별)이란 어떤 것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살을 파고드는 비방과 마음을 찌르는 저주에 곧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면 가히 밝은 분별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살을 파고드는 비방과 마음을 찌르는 저주에 곧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면 가히 원대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류현진은 언론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았다. 언론보다 더 살을 파고들고 더 깊숙이 마음을 찌른다는 인터넷 댓글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인터뷰 석상에서, 기사에 근거한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져도 류현진은 한결같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선발 경쟁에서 탈락할 경우 불펜에서 던질 생각은 있느냐? 전혀 생각한 적이 없다. 시범경기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 코칭스테프가 결정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투수는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운드에서 공을 잘 던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실력으로 모든 비난을 일거에 잠재웠다.

이것은 득도(得道)의 경지다. 류현진은 20대 중반에 어떻게 그 경지에 도달했을까? 동산고 시절, 류현진의 인대가 끊어졌다. 훈련에 열중하다 생긴 사고였다. 의사선생님이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인대가 끊어져도 살아가는데는 별 지장이 없다면서. 류현진이 야구선수라는 사실이 의료진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전해들은 류현진의 아버지는 병원으로 찾아가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류현진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병원 가구들의 위치를 다 바꿔놓으셨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수술은 한참 후에야 이루어졌다. 소년의 휴식기는 그래서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졌다. 하고 싶은 야구를, 해야 하는 야구를 할래야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 소년은 생각했으리라. 삶이 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이 자각(自覺)을 통해 류현진은 소년에서 도인(道人)으로 진화한 것이 혹시 아닐는지.

문제는 우리들이다. 본인의 능력만으로 헤쳐가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사람들은 좌절하거나 성장한다. 혹은 좌절하다가 성장한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만큼 위중하고 힘들며 괴로운 상황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이 자주 찾아오는 일이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어려움과 괴로움은 일상의 한 부분처럼 우리들의 삶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넘겨버리기엔 상황이 간단치 않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숱한 괴로움에는 분명한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살을 파고드는 비방’과 ‘마음을 찌르는 저주’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나에 대한 자잘한 험담과 비난만으로 내 마음은 얼마나 상처받는가. 내 가슴은 얼마나 쿵쿵 내려 앉는가.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있다. 자존감을 키우면 된다. 자존감? 자존심은? 그 둘은 같지 않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마음이 나아가는 다른 길이다.

자존심은 남들이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존감은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반비례한다. 자존심은 남들의 기준에 자기를 맞춰가는 것이고,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스스로를 스스로가 지키는 힘이다. 이 힘이 없는 사람들이 자존심을 내세운다. 남에게 나를 높이 봐 달라는 뜻을 담아서. 자기를 존중하고 지키는 힘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남에게 구걸하는 마음이 바로 자존심이다. 자기 자신은 자기가 지켜야한다. 남들보고 나를 존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거만이고, 욕심이며, 게으름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이 자기를 어찌 평가하든 개의치 않는다.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이 센 사람이 남의 평가에 예민한 법이다. 스스로의 평가는 스스로 해야 한다. 바로 잡는 것도, 지키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서 류현진이다. 류현진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하기에 그토록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류현진의 금년 시즌 예상성적은? 최소한 12승이다. 빛나라 류현진, 소년가장이여 마운드를 지배하라.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류현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류현진 트위터]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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