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12.05 18:15 / 기사수정 2007.12.05 18:15
[엑스포츠뉴스=박영선 기자] 지난 11월 21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올림픽 대표팀은 0-0으로 베이징 진출을 확정지었다. 6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한 날이었지만, 밋밋한 경기 결과에 졸전이었던 이전 경기와 맞물려 경기장 밖에서는 매서운 여론의 매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경기를 마치는 휘슬이 울리었을 때,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에게선 앞선 근심보다는 베이징을 향한 환희와 기쁨이 컸다.
0-0의 경기에서 무득점이 아닌, 무실점으로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의 1등 공신인 정성룡은 휘슬이 울리자마자 주먹을 쥔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추어올리고는 내릴 줄 몰랐다. 주장 완장을 차고 있던 김진규는 가까이에 있던 선수들부터 차례로 격하게 껴안았다.
비록 승리하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를 손아귀에 잡아챈 자신들이 스스로 대견하였던지, 올림픽 대표팀의 축하 세리머니는 경기 후에도 한참을 이어졌다. 정성룡을 필두로 몇몇 선수들이 N석의 붉은 악마들에게 유니폼을 벗어 던져주었고, N석 앞에 어깨동무를 한 선수들은 붉은 악마의 탐 소리에 맞춰 흥겨움을 함께했다.
올림픽 대표팀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인 김창수는 같은 85년생이어도 '빠른 85'이기에 평소 '형'이라 깍듯이 부르는 김진규를 향해 장갑을 벗은 맨손의 양팔을 크게 벌려 안아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경기장 밖에서는 아시아팀을 상대로 한 홈경기에서 무승부의 결과를 탐탁지 않게 생각들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경기장의 불이 꺼지기 전, 경기장 안에서는 하얀 입김이 나올 만큼 시린 공기 속을 함께 뛴 붉은 유니폼을 입은 서로 하나로 연결되었다. 이제야 한팀이 된 듯한 그들의 모습에서 예선보다도 본선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희망이 느껴지던 유일한 모습이 경기중이 아닌 경기 후였지만 말이다.
23살 동갑내기들 혹은 그보다 어린 이들의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이 오래간만에 한팀이 되었다는 느낌을 공유한 순간이었다. 경기 후 이렇게 웃으며, 그라운드를 나올 수 있었던 순간이 대한민국의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얼마 만이었고, 또 동료를 안아줄 수 있었던 경기는 또 얼마 만이었던가.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 된 레게음악의 대부, 밥 말리는 말했었다. "왼손으로 악수 합시다. 그쪽이 내 심장과 가까우니까요." 당신의 심장과 나의 심장이 좀 더 가까이할 수 있도록 왼손으로 인사하자던 밥 말리보다도 서로 심장을 가까이하는 이들이 있다.
피치위에서 죽을 듯이 달리던 그들이 그렇다. 휘슬이 울린다. 온몸에서 물과도 같은 땀이 뚝뚝 떨어진다. 젖은 유니폼이 축하니 늘어질 만큼, 모든 것을 쏟아 내었다. 그런 동료가 어여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살포시 가슴에 어깨에 안아준다. 너와 나의 심장과 심장이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전에 들릴 만큼 가까이, 나의 심장 소리인지, 상대의 심장 소리인지 구분되어지지 않는 하나가 될 만큼 가까이, 심장과 심장을 맞대어 안아준다.
심장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하면, 90분 동안 육수를 쏟아낸 육체에서는 단내와 체취에 끕끕하게 응축된 땀내가, 쉴 새 없이 뿌려댄 맵고 달달한 파스 냄새에 섞여 있을 텐데, 땀이 배다 못해 흘러내리는 유니폼의 등은 손끝에서 철썩 달라붙을 텐데, 그래도 껴안아 줄 마음이 드는지, 무엇이 그래도 예쁜지 대전시티즌의 주장 강정훈에게 물어보았었다.
"아, 근데 그 냄새가 좋아요." 갑작스런 원초적인 발언에 말을 한 선수도 웃고, 듣던 이들도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저희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땀 흘린 것처럼, 소중한 게 없어요. 전 그 땀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좋아요." 동료의 땀과 노력이 좋기에 그 땀으로 범벅된 축축한 몸을 가슴으로 안아주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강정훈이 주장이 되기 오래전부터 그러해왔던 일이었다.
대전에서만 10년. 강정훈의 축구인생은 대전시티즌 그 자체와 일치한다. 이긴 경기보다는 진 경기가 많았던 팀이었지만, 2003년 최윤겸 감독의 부임 이후에는 진 경기보다는 이긴 경기의 숫자가 많아졌다. 강정훈의 왼팔에 주장완장이 메어지기 전에도 그는 그러해 왔고, 이긴 경기에서도 진 경기에서도 누군가를 안아주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승리를 하거나, 함께 목표를 달성한 후 기쁨에 겨워 동료를 안아주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이기지 못한 경기에서도 동료의 어깨를 안아주고, 가슴으로 안아주는 일이 세상에서는 드물다. 드문 일을 하는 강정훈에게 어떻게 그리할 수 있는지 묻자 그는 포옹의 가장 순수한 의미를 말해주었다.
"만일 게임을 졌으면은 다시 시작하자는 위로의 차원이죠. 진 경기에서 실수를 하고 골을 먹게 되면 선수들은 자기 때문에 졌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럴 때면은 위로가 될까 생각해서요."
그리 말하면서, 얇게 웃어보이는 강정훈의 미소는 히말라야 차마 고도의 오색깃발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자신의 영달을 비는 소원의 글이 아닌, 진리와 타인을 위하는 히말라야 사람들의 마음이 적혀있는 룽다가 하늘 끝에서 펄럭이는 듯, 그런 마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위로가 된다.
공자는 30세에 마음이 확고히 서 도덕 위에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30대가 되면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들 한다. 마음이 도덕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그리 쉬웠다면, 모두가 공자를 칭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덕’이라는 말의 무겁고 깊은 의미에 공자님의 그것을 따르긴 힘들다 해도,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30대, 강정훈의 나이, 32세, 강정훈은 가슴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가슴으로 세상을 안아주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안아주고 싶은 사람도 적고, 안아주는 사람도 적다.
축구 경기도 우리를 안아 주며 위로 해 주는 일이 거의 없다. 기쁘게 하거나, 화가 나는 일들뿐이다. 내 팀이라는 대입을 통해 상대팀의 팬들에 대한 우월의식을 느낄 수 있거나, 모멸감을 받기도 한다. 경기는 지거나 이긴다.
그러나 인간 승리에 가까운 선수들의 노력과 한계에 대한 도전을 보며 감동받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스포츠의 순수한 에너지는 노력과 도전이 돈이나 권력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력과 도전으로 살벌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스포츠 선수들이 때로는 그 조차도 뛰어넘어 자신보다도 동료와 팀을 위할 때, 그것이 공자가 얘기하던 도덕과 다르지 않게 된다.
이라크에서 지뢰를 밟아 양쪽 다리를 모두 의족에 의지해야 했던 소년 트와나가 대전에 왔을 때, 그의 축구 지도를 처음 부탁받았던 것은 강정훈이 아니었다. 그러나 강정훈은 처음엔 자신의 몫이 아니었던 부탁이었는데도 한시도 웃음이 지워지지 않는 얼굴로 이라크 소년에게 즐겁게 축구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함께한 짧은 시간이 끝났을 때, 트와나도 강정훈도 인사 대신 서로를 안아주었다. 그것은 중동만의 인사법이었을 수도 있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트와나의 마음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국에서는 흔한 인사법이 아니었지만, 강정훈에게는 마음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스포츠가 때론 눈물이 되고, 누군가의 삶이 되고, 인생의 가치관을 가르쳐 주는 것은 스포츠속의 스포츠맨들, 패배한 경기에서조차 동료를 위로하며, 가슴으로 안아주는 강정훈처럼,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는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위로와 위안을 얻고, 스포츠는 스포츠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 스포츠가, 축구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 1등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1등보다도 소중한 사람이 있고, 사람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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