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제가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 인물이 늙었을 뿐이죠.(웃음)"
30년 넘게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아이콘' 아놀드 슈왈제네거(65)가 10년 만에 돌아왔다. 그의 대표작 '터미네이터2-심판의 날'에 등장한 명대사인 'I Will be Back'처럼 복귀했다.
지난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슈왈제네거는 임기를 마친 뒤 '편안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은퇴란 없다"고 강조하며 배우로서 계속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전직 보디빌더였던 그는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서 3회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 보디빌더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슈왈제네거는 영화계에 도전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서툰 영어 실력 때문에 고정된 역할만 맡았다.
그의 할리우드 데뷔작은 '뉴욕의 헤라클레스'(1969)란 영화였다. 잦은 말썽으로 아버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헤라클레스(아놀드 슈왈제네거 분)는 지상 세계로 추방된다. 가진 것은 육중한 근육질 몸 밖에 없었던 그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악당들을 제거한다. 지극히 단순하고 유치한 내용을 지닌 이 영화에서 슈왈제네거의 대사는 극히 짧다.
이후 슈왈제네거는 B급 영화에 출연하며 '그저 그런 배우'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의 출세작 '코난 더 바바리안'(1982)을 통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에 발표된 '터미네이터'(1984)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코만도'(1985), '프레데터'(1987), '트윈스'(1988), '토탈리콜'(1990) 등 흥행작들에 계속 출연했던 그는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1991)'로 최고의 반열에 등극한다. 동시대 액션 스타인 실베스타 스텔론과 브루스 윌리스는 흥행작과 망작을 오고가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슈왈제네거의 상승세는 거침이 없었다. 처세에 능했던 그는 뛰어난 화술로 두터운 인맥을 형성했다. 또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를 선택해 '흥행실패의 늪'을 피해갔다.
최고의 흥행배우로 우뚝 선 슈왈제네거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캐런티를 받은 배우가 된다. 보디빌더로 세계를 제패했던 그는 배우로도 최고의 고지에 올라섰다.
'일 중독자'로 알려진 그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평소 정치에 큰 관심을 보였던 슈왈제네거는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된다. 한 때 미국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미국 대통령은 반드시 미국 태생자여야만 된다'는 법이 가로막고 있었다.
보디빌더, 영화배우, 정치인, 그리고 보디빌더 사업가로 활동한 그는 다시 스크린에 복귀했다. 6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슈왈제네거는 '라스트 스탠드'에서 대부분의 액션 연기를 직접 소화했다. "운동은 나에게 있어서 숨을 쉬는 것과 같다"고 말한 그는 규칙적인 운동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라스트 댄스'는 슈왈제네거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북미 지역에서 외면 받았다. 디지털 액션 영화가 붐을 이루는 가운데 60대 노인이 펼치는 아날로그 액션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지 못했다.
주지사 임기 당시 슈왈제네거는 가정부와의 불륜과 사생아 공개 등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줄곧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준 그는 이러한 스캔들로 인해 치명타를 입었다. 과거 슈왈제네거가 저지른 스캔들로 인해 관객들이 이 영화를 외면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병'은 결코 죽지 않았다. 흥행 여부를 떠나 슈왈제네거는 '라스트 댄스'에서 변신에 성공했다. '인류 최강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한층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영웅으로 돌아왔다. 영화 막판에 등장하는 옥수수 밭 카체이싱 장면과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최후의 액션 신은 매우 인상적이다.
[사진 = 김지운, 아놀드 슈왈제네거, (C)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