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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표 축구협 후보 “7천원짜리 점심, 소주 한잔이면 행복”(인터뷰)

기사입력 2013.01.25 18:57 / 기사수정 2013.01.25 19:02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스포츠부 김덕중 기자]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28일 대의원총회를 통해 16명의 시·도 축구협회장과 8명의 축구협회 산하 연맹 회장의 투표로 향후 4년 간 한국축구의 운명이 결정된다.

4명의 최종 후보가 막판 표 다지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2전 3기'에 도전하는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의 행보가 유독 눈길을 끈다. 그동안 현대가(家)의 축구협회장 독주에 맞서는 야권 주자의 이미지로 부각됐으나 25일 피플웍스 사옥에서 만난 그는 뜻밖에 소탈하고 검소했으며 올곧았다. 

-축구협회장 후보 허승표가 아닌 어린 시절 허승표가 궁금하다.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5일장이 들어서는 시골서 컸는데 집에 냉장고가 없어 굵은 소금을 뿌린 저린 생선을 먹곤 했던 기억이 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아버님(고 허만정 회장)이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다. 허씨와 구씨가 같은 동네서 살았는데 성격 탓인지 예전부터 그룹 쪽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어떤 성격이면 가능한 것인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동등한 입장에서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이 싫었다. 만에 하나 훗날 내가 심하게 망가진다고 해도 나 스스로 떳떳하면 되는 것 아닌가. 공기 좋은 시골에 가서 자가용 몰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경제적 여유에도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지 않았는데 비슷한 이유인가. 

결혼 후 아내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자고 했다. 난 거절했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아야지 어려서부터 공주, 왕자로 키워서 되겠느냐며 아내를 설득했다. 살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순수하고 인간적인 접근을 오해하고 곡해한다. 가진 자들의 단점이다. 난 특별한 사람이라는 마인드는 위험하다. 아이들을 사람답게 키우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내 뜻대로 성장한 것 같아 기쁘다.

-1946년생인데 지금도 축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주말마다 볼을 찬다. 선수 때는 69kg을 유지했는데 은퇴하니까 78kg으로 늘었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73,74kg을 유지하고 있다. 아내는 일요일마다 외식을 하고 싶어하는데 나의 축구 사랑 때문에 속상해 한다. 우리 축구 모임에는 정년 퇴직하신 분, 설렁탕집 주인, 빌딩 관리인도 있다. 그 분들과 운동을 하고 40년된 목욕탕에서 함께 씻고 7천원 짜리 점심식사에 소주 한 잔을 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정말 행복하다. 사는 데 자신감이 생긴다.  

-젊은 시절 축구를 선택해 화제가 됐는데. 

초등학교 4학년부터 축구를 시작했고 선수의 꿈을 품었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 시절 런던서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지역리그 어느 경기를 가더라도 축구장이 관중들로 꽉 찼다. 그게 바로 영국의 힘이다. 축구가 곧 삶이고 자부심의 원동력이다. 월요일이면 지역 신문을 통해 전날 경기를 꼼꼼히 챙긴다. 그런 열기가 부러웠다. 리그 시스템은 지역의 풀뿌리 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직접적 이유로 봐도 되나.

그렇다. 축구협회가 정몽준 명예회장 임기 마지막 해에 75주년 기념행사를 크게 했는데 이 정도 역사를 가졌다면 벌써 시도됐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아직 계획조차 없더라. 축구협회 80주년 기념행사는 100주년까지 한국형 성인 리그 피라미드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 돼야 한다. 만약 회장으로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축구협회는 이번 4년 동안 한국 축구 미래 40년을 기획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4년 안에 등록선수 20만명은 무리 아닌가. 양적 팽창만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풀뿌리 축구의 가능성을 낮게 보지 말아라. 영국에 있을 때 일이다. 지역리그서 우유 배달을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 이탈리아 친구가 있었다. 생활 때문에 일주일에 2번 볼을 차는 게 전부였는데 정말 열심히 했다. 우연히 경기장을 찾아온 아스날 스카우트에게 발탁됐다. 그런 곳에서 진주가 나오는 법이다.  

-축구의 저변 확대가 출마의 동기인 것 같은데 더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나.

우리나라에서 축구가 시작된 것을 1882년으로 삼고 있으니 올해로 131년이 됐다. 나는 그동안 두 번 회장 선거에 도전했다. 20년 동안 축구 발전을 염원하며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이 이뤄지지 않았다.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토대 구축인데 그동안 이런 것들이 제대로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국내 축구 구조의 틀을 제대로 만들고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기 4년 동안 등록선수 20만 명, 향후 10년 이내 100만 명의 목표를 잡고 축구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하면 대한축구협회 100주년이 되는 20년 후에는 축구 선진국 수준의 축구 인구로 확대될 것이다. FIFA에서 발표한 전 세계 인구 대비 축구 인구 평균은 4%다. 우리나라 인구 대비 4%는 200만 명인데 만일 이렇게 될 수 있다면 국민의 건강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스포츠 활동 인구 증가를 위한 노력은 국가적인 문제다. 선진국 수준으로, 또 그 이상 올라가면 국민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반비례하고 병원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한체육회나 국민체육진흥공단도 이를 위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야구에 밀린 K리그 부활을 위한 묘책은 없나.

프로 영역이어서 조심스럽다.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영표 선수하고 가끔 밥을 먹는데 그 친구가 했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미국 축구는 TV 중계권 계약시 경기 도중 2차례 감독 인터뷰를 할 수 있으며 선수 라커룸에 출입이 가능하도록 사전 계약을 한단다. 팬들이 축구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경기 자체에 빠져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축구팬이 축구장에 올때는 이유가 있다. 단발성 이벤트 보다는 축구 자체로 승부를 봐야 한다.

-이번 선거에 강력한 라이벌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가.

솔직히 투표 결과를 볼 때까지 잘 모르겠다. 언론에서 정몽규 후보와 저 두 사람을 '빅2'로 꼽아주시더라. 정몽준 명예회장이 축구계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촌동생도 유력한 후보로 생각하시고 저와 경쟁 구도로 보고 계신 것 같다.

-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대의원들께서는 오래 준비했으니 크게 신경쓰지 말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박빙의 힘든 선거가 될 것이라는 분도 있다. 오늘 오전에도 대의원들 5분의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대의원들 95% 정도는 심정을 굳히지 않으셨을까 싶다. 선거 후에 당선 결과를 얻는 분이 겸손해야 할 것 같다.

- 지난 선거 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루머가 있는데

4년 전과 똑같이 표현하자면 이렇다. 지방 축구협회를 다니며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를 하는 유소년이 많았다. 제가 축구협회장이 되든 안 되든 지역 축구협회마다 장학재단이 생겼으면 좋겠고 만약 협회장이 되면 사재로 장학금을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년에 장학재단을 통해 축구하는 유소년을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대의원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이걸 악용해서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 나와 관련된 숱한 소문을 생각하면 개의치 않는다. 일일히 밝히고 싶지는 않지만 그동안 조용히 축구계 여러 곳에 나눔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바람과 달리 공식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웠다. 나랑 관련있는 단체나 사람에게 부정적 압박이 많아서 피해를 입히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 대의원, 축구팬들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최근 몇 년 간 축구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이 안타깝다. 우리나라 축구 행정의 수장인 축구협회장이 마지막 공식 행사에서 '나같은 축구협회장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도자들의 목표이자 최고 위치에 올랐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나같은 대표팀 감독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축구인으로서 너무 안타깝다. 내가 가진 경험과 모든 힘을 다해서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축구로 돌려놓고 싶다.

[사진=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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