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30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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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그리고 후헨반트

기사입력 2004.08.20 01:05 / 기사수정 2004.08.20 01:05

이정빈 기자


지난 몇번의 올림픽만큼의 기대감이나 설레임은 없었던 아테네 올림픽이지만 그래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4년만의 세계인의 대제전답게 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평소라면 중계를 해주지도 않고, 보러가지도 않았을 여러 종목들에서 펼쳐지는 짜릿한 명승부에 흥분하고 아쉬워하는 나날들이 몇일째 계속되고있다.
 
그 와중에 한국은 고대하던 첫번째 금메달이 터져나왔고, 다시 어제 저녁 메달박스라는 여자양궁에서 두번째 금메달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첫번째 금메달이라는 상징성에 통쾌한 한판승이라는 점까지 더해져 이번대회 한국팀의 최고스타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해보이는 유도의 이원희 선수가 단연 화제의 중심이다. 나역시도 생전 유도라고는 그닥 관심도 없었지만 이원희 선수의 준결승, 결승전은 손에 땀을 쥐고 쳐다보았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결승전 마지막 장면은 거의 30번은 넘게 본 것 같고 그의 예선 첫경기부터 결승까지의 경기도 대략 10여번은 봤으며 그의 인생역정도 다섯번정도는 본 것도 모잘라 티비를 끄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각종 포털싸이트를 장식하는 그와 관련된 뉴스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 슬슬 지겨워 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너무도 통쾌한 한판승을 일궈낸 이원희 선수에 대한 각종 뉴스와 에피소드의 넘쳐나는 홍수속에서 특히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경기후 그가 가진 인터뷰이다.  새로운 `영웅`을 맞아서 특유의 오도방정성 멘트와 온갖 잡식성 질문들중에서도 단연 빠지지 않는 질문인 `애인의 유무?`와 `결혼계획?`에 관한 질문에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여자는 멀리한다", "하지만 결혼은 빨리해서 운동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원희 선수의 답변을 보는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그중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한 점은 `세계최고의 자리에는 아무나 오르는 것이 아니다`라는
존경심이 먼저였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선남선녀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성에대한 관심`마저 없애는 것을 당연시하는 한국의 `엘리트 체육`의 잔인함 역시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내가 즐겨가는 `후추닷컴`이 정상운영을 할때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김윤미`선수와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다. 당시 갓 대학교 1학년에 입학했던 김윤미 선수는 1학기동안 학교에 단 두번을 가봤다고 한다. 그외의 생활은 오로지 선수촌에서의 훈련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대학 1학년생 스무살짜리 처녀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하루종일 운동하고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몇년째 해왔다고 하니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고 두번째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건 이원희 선수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금메달`에 촛점을 맞춘체 그야말로 `기계`와 같은 생활을 몇년째 반복 했을 것이다.
 
물론 혹자들은 말한다 `노력없이는 댓가가 없다`, `금메달은 가만히 앉아서 따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 역시도 이원희 선수를 비롯한 금메달리스트들의 엄청난 노력과 자기 절제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 노력과 자기절제의 삶에 보상이라면 보상을 받은 `영웅`들은 그렇다 치자.그러나 그 와중에 기량이 못미치거나 부상등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좌절하고 낙오된 수많은 `미래의 꿈나무`들을 생각하면 한국의 소위 말하는 `엘리트 체육`은 너무도 잔인한 것이다.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아무튼 지인중에 농구선수생활을 했던 분이 한 분 계신다.
우리나라에서 농구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학에 스카웃을 받아서 입학했을 정도이니 중고등학교때까지 이 분 역시 농구에서라면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빠지는 축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대학시절 너무도 화려했던 팀멤버들의 기량과 명성에 가리어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프로팀 입단에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하지만 한때 그래도 꽤나 알아주던 `농구 유망주`였던 이분은 지금 이곳 저곳의 `어린이 농구교실`과 학교의 `시간제코치`등의 자리를 전전하고 계신다. 그나마 본인이 어린시절 배웠던 환경처럼 다소 강압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스타일의 지도방침 때문에 `동네꼬마`들의 여가활동을 위한 각종 `농구교실`등에서 극성스런 학부모들과의 트러블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솔직한 상황이다. 
 
얼마전 이분과 담배한대 태우면서 지나가는 얘기로 여름휴가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강릉이나 속초`쪽으로 갈것 같다는 얘기를 하자, 한참을 생각하던 그 코치님이 나에게
물었다. "야 강릉이 동해냐? 서해냐?"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처음에는 다소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그 코치님은 오로지 농구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 농구에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앞서도 얘기했지만 절대 운동선수를 폄하하거나 비웃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소양교육도 전혀 무시한체 너무도 불확실한 목표에 한 아이의 모든 것을 걸게 한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잔인함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나마 저 코치님은 그래도 인기종목이라는 농구지만 다른 종목의 수많은 유망주들의 경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제외하고는 제일 관심깊게 지켜보는 종목은 다름아닌 수영이다. 개인적으로 그나마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가끔이나마 하고 있는 운동이고 취미라고 내세울만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영경기관람도 무척 좋아한다. 다만 이놈의 나라에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정도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아무튼 수영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종목은 역시 가장 경쾌한 자유형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호주의 인간어뢰 `이언 서프`와 미국의 수영신동 `마이클 펠프스`의 맞대결로 온갖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던 자유형 200m가  나 역시도 가장 기대하던 종목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다린 선수는 서프나 펠프스가 아니다. 다름아닌 디펜딩 챔피언인 네덜란드의 수영스타 `페테르 반 덴 후헨반트` 선수이다.
 
이번대회의 펠프스처럼 지난 대회에서 수영신동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다관왕을 노린다던 호주의 이언서프를 자유형 200m와 100m에서 연속으로 물먹인 장본인이며 네덜란드 수영의 간판스타이다.
 
이언서프의 영법에 관한 영상을 한번 보고 그의 발을 클로즈업 해주는 장면을 본 이후로 이언서프의 천부적인 신체조건은 거의 `반칙`에 가깝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져버린지라 나는 서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신체조건이 좋다고 아무나 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서프의 발은 사람의 발이 아니다. 그건 오리발이다 오리발.)
 
아무튼 이번 대회 200m에서 다들 펠프스와 서프의 대결에만 주목했지만 내가 가장 기대했던 `후엔반트`는 서프에게 간발의 차이로 뒤지며 은메달을 낚았다. 오로지 서프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되던 지난 시드니 올림픽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서프의 앞을 막아섰던 드라마는 다시 한번 재현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8관왕을 노린다느니 어쩌느니 하던 미국의 애송이에게 세계무대가 만만치 않음을 확인시켜준 후헨반트의 기량은 여전하였다.
 
영법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나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지 않고 거만해 보이기 까지 하던 서프에 비해 역동적인 후헨반트의 역영하는 모습이 너무도 멋있어 그를 처음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에 대해 조금 알고나서는 더욱 놀랬다.
 
이유인 즉슨, 올림픽 2관왕에 한때 세계신기록까지 가지고 있던 수영선수인 동시에, 후엔반트는 의대를 다니며 의사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4년전에 의대생이었으니 지금은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아버지는 네덜란드의 축구팀 PSV아인트 호벤의 팀닥터이고 어머니는 전직 수영국가대표 선수였다고 한다. 양친의 길을 동시에 물려받은 셈이다.
 
단순히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 일, 더군다나  공부를 꽤나 잘한다는 사실때문에 이 사실을 놀랍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세계 신기록을 작성할만한 자질을 가진 선수가 운동과 학업을 병행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시스템을 구축한 그들의 인식이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이원희나 후헨반트나 그들이 가진 천부적인 재질에 더해 엄청난 노력과 피나는 훈련과 자기절제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수영에서나 한국의 유도에서나 한때는 후헨반트나 이원희 못지 않은 자질을 가지고 각광을 받은 선수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의 부상이나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운동을 그만두었을 양국의 재능들은 그 후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꾸려나갈까.?
 
아마도 네덜란드의 또다른 후헨반트들은 수영이 아니라도 각자 자신이 꿈꿔오던 분야에서 그들의 새로운 재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또다른 이원희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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