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신태용 감독을 경질한 인도네시아축구협회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중 하나였던 파트리크 클라위베르트 감독을 영입한다.
세계적인 이적시장 전문가인 파브리치오 로마노는 6일(한국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클라위베르트가 인도네시아에 올 예정이며 이미 계약이 성사됐다"고 알렸다.
이어 "2+2년 계약이다. 오는 12일 인도네시아에서 그의 선임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이 이뤄지며 그의 목표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지금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구성하는 주축 멤버들인 네덜란드계 이중국적 선수들과의 호흡,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지도자를 데려오려는 인도네시아축구협회의 욕심 등이 겹쳐 인도네시아 대표팀의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월드컵 본선행을 향해 나아가던 신 감독이 충격적으로 물러나게 됐다.
인도네시아축구협회는 6일 홈페이지를 통해 "신 감독과의 인도네시아 성인 대표팀, 23세 이하(U-23) 대표팀 계약을 해지한다"며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이 달성해야 할 장기적 목표에 대해 오랜 기간 신중하게 검토하고 평가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이 물러난 직접적인 이유는 동남아 최대 축구 축제인 2024 아세안축구연맹 미쓰비시전기컵(AFF컵)에서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회 조별리그에서 신 감독은 한국인 감독이 지휘한 팀에 잇따라 덜미를 잡혔다. 하혁준 감독의 라오스에 반드시 이겨야 했으나 3-3으로 비기고 말았고, 김상식 감독이 지휘한 베트남에는 0-1로 패했다. 결국 조 3위에 그치면서 1·2위가 진출하는 4강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했다.
2019년 말 인도네시아 지휘봉을 잡은 신 감독은 코로나19로 지도 환경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빼어난 성과를 냈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 축구 사상 처음으로 자국 대표팀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단계까지 올려놓은 지도자여서다.
지난해 1~2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16강 진출을 일궈낸 신 감독은 이어진 4월 U-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한국을 8강에서 꺾는 역대급 이변을 쓰고 4강에 진출했다. 이후 올림픽 티켓 확보에 실패하면서 아쉬움을 남겼으나 인도네시아 축구를 아시아 4강 반열에 올려놓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11월엔 월드컵 본선에 5차례나 진출한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홈에서 2-0으로 완파하며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역사적인 첫 승을 챙겼다.
앞서 5경기에서 3무 2패를 기록 중이었던 인도네시아는 3차 예선 최하위까지 내려갔으나 사우디전 승리를 통해 승점 6(1승 3무 2패)을 쌓고 최하위인 6위에서 3위로 올라서며 월드컵 본선행 가능성을 키웠다.
아시아 3차예선에선 각 조 1~2위가 본선에 직행하고 3~4위는 월드컵 티켓을 놓고 6개국이 다시 겨루는 4차 예선에 나간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40위권인 인도네시아가 신 감독 영입 뒤 경기력이 확 달라져 월드컵 본선을 넘보는 단계까지 이른 것이다.
신태용 감독은 당초 4차 예선 진출을 목표로 세웠으나 지금 상황에선 본선 직행까지 꿈꿀 정도가 됐다.
그런데 연령별 대표팀을 데리고 출전한 AFF 컵에서 베트남 최정예 1군에 패하고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축구협회는 신태용 감독 경질하는 황당한 일을 저질렀다.
콤파스닷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축구협회를 이끄는 에릭 토히르 회장은 신 감독 경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표팀 평가에서 우려된 부분은 '역동성'이다. 선수들이 전략을 더 잘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선 인도네시아축구협회가 네덜란드 혹은 벨기에 2중 국적 선수들을 택하고 신 감독을 내치는 수순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76년생인 클라위베르트는 현역 시절 아약스(네덜란드), AC밀란(이탈리아)을 거쳐 1998년부터 2004년까지 FC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활약하며 공식전 257경기 112골을 터트린 세계적인 공격수 출신이다.
이후 뉴캐슬 유나이티드(잉글랜드), 발렌시아(스페인),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 릴(프랑스)에서 1년간 뛰고선 은퇴한 그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승인 루이스 판 할 감독 아래 코치를 맡아 네덜란드의 껌짝 3위에 보탬이 됐다. 이후 2015~2016년 북중미카리브해에 있는 네덜란드령 퀴라소 대표팀을 맡았지만 비중 있는 국가대표팀 혹은 클럽 지도자를 한 적은 없다.
지난해 7월 튀르키예 아다나 데미르스포르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프로구단 지휘봉을 잡았으나 6개월 만에 경질됐고 지금은 무직이다.
현역 시절 명성은 신 감독이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클라위베르트가 탁월하지만 지도자 커리어는 신 감독이 훨씬 앞선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는 거의 초보나 다름 없는 클라위베르트를 선임하려는 도박수를 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인도네시아축구협회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