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아쉽다는 말로 끝낼 수 없다.
믿을 수 없는 참패였다. 결승 진출만으로도 값진 성과였다고 하기엔 허무한 결과였다.
세계선수권 은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합작한 한국 수영의 황금세대가 올림픽 메달 획득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아깝게 놓친 게 아니다. 하마터면 예선탈락할 뻔했다. 결승에서도 일찌감치 기대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4번 영자를 놓고 갈팡징팡 행보를 드러낸 코칭스태프의 판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수들의 컨디셔닝 실패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31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수영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경영 남자 계영 800m 결승에서 양재훈(강원도청), 이호준(제주시청), 김우민, 황선우(이상 강원도청) 순으로 역영한 한국은 7분07초26으로 6위에 올랐다.
이날 우승은 모든 외신의 예상대로 영국에 돌아갔다. 이번 대회 남자 자유형 200m 은메달리스트 매튜 리처즈를 비롯해 4위를 차지한 던컨 스콧, 그리고 202 도쿄 올림픽 남자 자유형 200m 금메달리스트 톰 딘, 그리고 자유형과 접영에서 세계적인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베테랑 제임스 가이를 보유한 영국은 초반부터 독주 체제를 구축한 끝에 6분59초43을 기록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디펜딩 챔피언 딘이 영국 대표선발전에서 남자 자유형 200m 3위에 그쳐 참가하지 못할 정도로 영국은 영자 4명이 200m씩 헤엄치는 800m 계영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이번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6분대 기록으로 들어왔다.
이어 은메달과 동메달은 전통의 수영 강국에게 돌아갔다.
에이스 루크 홉슨이 남자 자유형 200m에서 동메달 딴 여세를 몰아 계영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고 자존심을 지켰다. 동메달은 외신이 한국과 함께 3위를 다툴 것으로 예측한 호주의 몫이었다. 7분01초98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호주는 이 종목에 뚜렷한 강자는 없지만 세계적인 수영 강국 답게 탄탄한 기본기를 드러냈다. 여기에 이번 대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은메달을 딴 일라이자 위닝턴이 3번 영자로 뛰어들면서 3위를 공고히 다졌다. 신의 한 수가 됐다.
한국에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패했던 중국이 4위에 올랐다. 기록은 7분04초37로 호주와 3초 가까이 차이 나는 등 부진했다. 중국 역시 한국, 호주와 함께 3위를 다툴 후보로 꼽혔고 지난 2월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지만 파리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3번 영자로 나선 판 잔러도 1분45초81에 그쳐 위닝턴과의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개최국 프랑스는 당초 결승 진출 후보로도 꼽히지 않았으나 7분04초80으로 5위에 올랐고 한국을 제쳤다.
한국은 30일 열린 예선에서 주축 선수 둘을 제외했다. 에이스 황선우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할 때 1번 영자로 나서 잘 버티고 금메달 주축이 된 양재훈을 뺐다. 대신 이번 대표팀 6명 멤버 중 이유연과 김영현을 투입했다. 이호준~이유연~김영현~김우민 순으로 달렸다.
한국은 사실 예선에서도 불안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노출된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번 남자 자유형 800m에서 메달을 노릴 수 있었던 이유로는 지난 3차례 세계선수권에서 남자 자유형 200m 입상을 전부 해낸 황선우, 자유형 200m와 400m 기록이 고른 김우민, 그리고 어릴 때부터 수영 신동으로 불리며 지난해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서 남자 자유형 200m 6위를 차지했던 이호준 등 3명이 좋은 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만큼 4번 영자를 해즐 선수가 없었고, 이번에도 황선우를 빼고 4번 영자급 선수 둘을 투입하면서 중반에 크게 뒤졌다. 다행히 김우민이 예선에서 1분45초59를 기록하면서 맹추격전을 벌인 끝에 7분07초96을 기록하고 예선 1초에서 4위, 2조까지 합친 전체 16개 팀 중에서 7위를 차지해 상위 8팀(실제론 일본과 이스라엘 같은 기록으로 9팀) 안에 진입하고 결승에 올랐다.
그 만큼 결승에선 잘 될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계영 800m 2시간 전 열리는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을 포기하고 단체전에 올인 선언을 한 황선우, 그리고 결승전을 위해 준비됐으며 아시안게임 금메달 기억을 갖고 있는 양재훈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준비한 결승전 치고는 허무한 레이스를 펼쳤다. 순위가 밀린 것은 물론 기록도 나빠서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 게임과 올해 세계수영선수권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할 때 성적과 비교해도 6초 가까이 뒤졌다.
대표팀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금메달을 딸 때 세운 7분01초73를 한국기록으로 보유하고 있다. 당시 결승전 영자 순서가 양재훈~이호준~김우민~황선우 순이었다.
또 지난 2022 부다페스트 대회부터, 2023 후쿠오카 대회, 2024 도하 대회(2월)까지 3차례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면서 7분06초93, 7분04초07, 7분01초94로 기록을 쑥쑥 끌어올렸다. 세계선수권 예선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우고 결승에서 이를 다시 갈아치우는 식이었다. 그 만큼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러다보니 이번 대회에선 7분01초대, 더 나아가 메달을 무조건 보증하는 6분대 진입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실제론 정반대였다.
이번 대회가 열리는 파리 라데팡스 아레나는 전문 수영장이 아니다. 대형 경기장에 임시 수조를 만들어 물을 채웠다. 그러다보니 경기장 자체도 상당히 거대하다.
반면 수조의 수심이 일반적으로 치르는 경영 종목의 2.5~3m가 아닌 2.15m다. 그러다보니 저조한 기록이 속출하고 있다. 세계신기록이 단 하나도 없고, 황선우는 물론 친하이양이나 판잔러(이상 중국) 등 아시아권 선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7분07초대는 그간 한국이 계영 메달을 위해 쏟아부은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 아쉬운 결과다.
항저우의 황금 루틴은 사라졌다. 한국은 아시안게임 때처럼 첫 영자 양재훈이 물속에 뛰어들었으나 1분49초84에 그치면서 결승에 나선 9개 팀 중 가장 늦게 레이스를 마쳐 불안하게 출발했다. 양재훈은 레이스를 사실상 망쳤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 땐 1분46초83을 기록, 예상을 뛰어넘는 기록으로 중국과 일본의 콧대를 납작하게 누르는 원동력이 됐으나 이번 올림픽 결승에선 큰 짐이 됐다.
이어 이호준이 맹렬하게 추격전을 벌였으나 역시 200m 구간 기록이 아쉬웠다. 이호준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땐 2번 영자로 나서 1분45초36을 끊었지만 이번엔 1분46초45를 기록했다. 역시 1초 이상 늦었다. 이호준이 들어오는 400m 지점에서 한국은 여전히 9위였다.
그나마 이번 대회에서 자유형 400m 동메달을 따내고 예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린 김우민이 반전 동력을 살렸다. 구간 기록 1분44초98을 기록했다.
신들린 듯한 역영을 펼쳤다. 200m 구간 기록만 따지면 영국의 마지막 영자 던컨 스콧(1분43초95), 미국의 마지막 영자 키어런 스미스(1분44초80) 다음으로 빨랐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긋난 레이스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고 한국은 한 계단 올라선 8위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 계속 부진한 마지막 영자 황선우의 투혼을 기대했지만 황선우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독일 등 두 팀을 제치고 6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으나 구간 기록이 1분45초99에 불과했다. 넉넉하게 잡아도 평소보다. 1초 이상 뒤졌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이번 대회 수영장의 핸디캡을 감안해도 양재훈이 3초, 이호준이 1초, 황선우가 1.50초 정도를 늦게 들어온 셈이 됐다. 한국 기록만큼만 냈어도 동메달 획득이 가능했으나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김우민 한 명만 예선과 결승에서 제 몫을 해낸 셈이 됐다.
한국 수영이 경영 종목 단체전 결승에 처음 오른 것 자체는 쾌거지만 결승 진출만 갖고는 웃을 수 없는 이유다. 기록이 어떻게 지난 2월 세계선수권과 비교해 5개월 만에 6초 가량 떨어졌는지도 미스터리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수영계에선 결국 4번 영자를 놓고 코칭스태프 등이 갈팡질팡 행보 보인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을 한다. 지난 3월 대표 선발전에서 기록이 좋지 않았음에도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 양재훈을 믿고 그를 결승에 투입한 것이 패착 아니었냐는 뜻이다.
대한수영연맹은 지난 3월 김천에서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했는데 이 때 계영 800m 멤버 선발의 기준이 되는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예상밖 결과가 일어났다.
황선우가 1분44초90으로 우승하고, 김우민이 1분45초68로 2위에 올라 남자 자유형 200m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가운데 이호준은 1분46초43으로 3위, 김영현이 1분46초43으로 4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호준까지 1~3위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으나 생각하지 않았던 김영현이 기존에 태극마크를 달고 계영 800m에 나섰던 이유연과 양재훈을 제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어 이유연이 1분47초58으로 5위를 차지했고, 양재훈은 1분48초27로 6위를 기록했다.
대한수영연맹은 대표 선발전 종료 후에도 계영 800m 종목은 선수 구성에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원칙상으론 김영현까지 1~4위를 차지한 선수들이 가는 게 맞지만 계영의 경우 예선과 결승 멤버를 다르게 할 수도 있다보니 고민에 들어갔다.
대한수영연맹 경기력향상위원회는 지난 5월 말 유럽 전지훈련 출발 전 자유형 200m 1분45초대 기록 진입 선수는 전원 파견, 1분46초50 이하 기록을 내는 선수가 여러 명일 경우에는 상위 두 명만 파견, 김영현, 이유연, 양재훈 세 선수 모두 1분47초대 이상 기록이면 선발전 4위를 차지한 김영현만 파견한다는 기준을 발표했다.
하지만 수영연맹은 이 기준을 다시 바꾼다. 선발전 5위 이유연과 6위 양재훈이 유럽 전지훈련 기간에 기록을 끌어 올리지 못하자 김영현만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주는 게 맞았지만 최적의 컨디션과 파리 올림픽 성적 향상을 위해 이유연과 양재훈도 계영 800m 멤버에 포함시킨 것이다.
결국 올림픽 무대에서 이유연과 김영현을 예선에 참가하게 하고 양재훈을 결승에 투입하는 작전을 짰지만 양재훈이 터무니 없는 기록을 내면서 메달은커녕 입상권과 큰 격차를 내는 이유가 됐다. 이유연과 김영현은 예선에서 각각 1분47초58, 1분48초26을 기록했다. 물론 결승전이라는 긴장감, 독일의 경우 남자 자유형 400m 이번 대회 금메달리스트 루카스 마르텐스가 뛰어든 변수 등이 있었지만 양재훈이 이유연과 김영현보다 기록 면에서 크게 떨어졌다.
양재훈은 지난 2월 세계선수권에서도 한국이 은메달을 딴 가운데 부진했는데 이번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4번 영자를 놓고 갈팡질팡한 코칭스태프 판단이 틀렸음을 확인했다.
여기에 선수들의 컨디셔닝이 성공했는지도 의문이다. 김우민은 제외하고 전부 제 기량을 내지 못한 것은 메이저대회를 앞두고 휴식과 훈련을 반복하는 테이퍼링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남게 한다. 대표팀이 올 초 실시한 호주 전지훈련이 너무 강도 높게 실시되다보니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난 2월 세계선수권 기간 중 털어놓은 선수도 있었다. 선수마다 대회 준비 방식이나 컨디셔닝 방식이 다른데 이를 존중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남자 계영 800m 대표팀은 이제 내년 싱가포르 세계선수권, 2027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그리고 2028 LA 올림픽을 준비한다. 2028년이 지금 경영 대표팀 주축을 이루는 황선우, 김우민, 이호준의 마지막 전성기다. 4번 영자를 제대로 찾는다면 한 번 더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