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프랑스 파리, 김지수 기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가장 권위 높은 대회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리정식-김금용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4년 뒤 미국 LA에서는 금메달 따고 싶다는 출사표를 던지고 아쉬움을 달랬다.
북한 탁구 대표팀 리정식-김금영 조는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사우스 파리 아레나 4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혼합복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중국의 왕추친-쑨잉사 조에 게임 스코어 2-4(6-11 11-7 8-11 5-11 11-7 8-11)로 졌다.
리정식-김금용 조는 비록 중국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북한 선수단의 파리 올림픽 첫 메달을 안겨줬다. 두 사람은 북한의 하계 올림픽 역대 17번째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리정식-김금용 조는 이번 파리 올림픽 개막 전까지만 하더라도 탁구 종목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북한의 폐쇄적인 사회상은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적용됐다. 두 사람은 세계랭킹 포인트 산정에 필요한 국제대회에 나서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이 없는 상태로 혼합복식을 치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리정식-김금용 조는 '다크호스'를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혼합복식 16강에서 만난 세계랭킹 2위 일본의 하리모토 도모카즈-하야타 히나 조를 격침시킨 게 시작이었다.
하리모토 도모카그-하야타 히나 조는 중국의 왕추친-쑨잉사, 한국의 신유빈-임종훈 조와 함께 파리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을 다툴 것으로 전망됐던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하지만 리정식-김금용 조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조기에 이 종목 레이스를 마감했다.
리정식-김금용 조의 일본전 승리는 우연이나 운이 아니었다. 8강에서 만난 세계랭킹 9위 스웨덴의 크리스티안 카를손-크리스티나 칼베리 조까지 게임 스코어 4-1(11-7 11-8 9-11 11-4 11-8 11-6)로 격파했다.
리정식-김금용 조는 준결승에서도 세계랭킹 6위 홍콩의 웡춘팅-두호이켐 조까지 제압했다. 결승 무대를 밟게 되면서 최소 은메달을 확보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리정식-김금용 조는 세계 최강 중국과 맞붙은 결승에서도 명승부를 연출했다. 수준 높은 경기력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등하게 맞섰고 관중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탁구 혼합복식은 리정식-김금용이라는 '월드 클래스'가 있음을 확인했다. 향후 이 종목은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한층 더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신유빈-임종훈 조가 이번 파리 올림픽 혼합복식 준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거나 북한이 홍콩과의 4강전에서 패해 동메달 결정전을 치렀다면 역대급 '남북대결'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신유빈-임종훈 조는 북한과 중국의 혼합복식 결승에 앞서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 홍콩을 게임 스코어 4-0으로 완파하고 동메달을 따냈다. 한국 탁구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배출은 지난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단체전 이후 12년 만의 쾌거다.
김금용은 시상식 종료 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에 참가해 기쁘기도 하고 (결과가) 아쉽기도 하다'며 "중국과의 결승전 경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더 열심히 훈련해서 (다음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또 "중국을 상대로 비슷한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하지만 세계적으로 강한 팀과 맞붙으면서 마지막에는 (우리 실력이) 모자랐고 채우지 못했다"며 "결승전에서 잘하기는 했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돌아봤다.
리정식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해외 훈련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만 "아니다. 조국(북한)에서만 준비했다"고 짧게 답했다.
북한은 지난 2020년 초 전세계적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 이후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선수들의 각종 국제대회 참가를 금지시켰다.
북한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중 포기한 것을 비롯해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도 불참했다. 이 때문에 국제올림픽위원회(NOC)로부터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전까지 국제대회 출전 자격을 정지당하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북한 내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의 수준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북한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이번 파리 올림픽에도 선수단을 파견했다. 기계체조 안창옥, 레슬링 이세웅, 김선향 등 7개 종목 16명의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초 기계체조 도마를 비롯해 여자 다이빙, 복싱 등에서 메달이 예상됐으나 탁구에서도 웃은 만큼 향후 추가 메달도 예상된다.
이번 대회를 바탕으로 4년 뒤 미국에서 얼마나 활약할지도 벌써 궁금하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