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사격을 불과 3년 전에 배웠는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나이는 이제 16살이다.
하지만 자만하지 않고 계속 앞을 보고 나아가겠다고 했다. 한국에 역대 하계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을 안긴 주인공, 반효진의 당찬 각오다.
한국 사격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여갑순, 2000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에 이어 또 한 번 여자 고교생 신데렐라 스토리를 써내려갔다.
반효진은 29일(현지시간) 프랑스 샤토루 국립사격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반효진은 이날 금메달을 통해 역대 가장 어린 나이에 하계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우리나라 선수로 기록됐다. 2007년 9월 20일생인 반효진은 16세 10개월 18일의 나이로 올림픽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이는 1988 서울 대회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손에 쥔 윤영숙(17세 21일)이 갖고 있던 최연소 금메달 기록을 36년 만에 경신했다.
직전 대회인 도쿄 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을 때 사격을 먼저 하는 친구를 따라 중학교 2학년에 총을 잡은 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경기력을 반효진이 펼쳤다.
반효진은 본선과 결승에서 모두 올림픽신기록을 세웠다.
28일 열린 본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메달 색깔을 금빛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60발 합계 634.5점을 쏴 자네트 헤그 뒤스타드(노르웨이)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세운 종전 올림픽 기록(632.9점)을 경신한 것이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 사격에서 신기록을 수립하기는 1988 서울 올림픽 남자 공기소총 본선 안병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50m 권총 결승 진종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였다.
결승에서도 반효진의 천재성은 빛났다.
공기소총 10m 결승은 선수들이 1발당 10.9점 만점으로 10발을 격발한 뒤 두 발씩 사격, 최하위가 한 명씩 떨어지는 '서든데스' 방식으로 진행된다.
반효진은 첫 10발에서도 104.8점을 기록, 역시 사격 강국 중국이 자랑하는 천재 총잡이 황위팅(105.5점)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부터 맹추격전을 시작했고 결승에서 18발을 쐈을 때 190.0점을 기록, 189.9점인 황위팅을 제쳤다. 22발을 쐈을 땐 232.3점을 찍으면서 231.0점에 그친 황위팅과의 간격을 크게 벌렸다. 소총의 경우 1점 차이면 1~2발에 따라잡기 힘든 큰 차이다.
반효진은 여기서 주춤했다. 황위팅과 단 둘이 벌인 금메달 시리즈에서 9.9점, 9.6점을 기록하면서 황위팅에 추격을 허용한 것이다. 결국 반효진과 황위팅 모두 251.8점으로 동점이 됐고, 단 한 발로 메달 색깔을 가리는 슛오프를 실시했다.
기적 같은 승리였다. 먼저 쏜 황위팅이 10.3점으로 나쁘지 않은 점수를 챙겼으나 반효진이 10.4점에 총알을 꽂아넣은 것이다. 0.1점 차로 반효진이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새토루 국립사격장에서도 명승부에 많은 박수를 보냈다.
한국과 중국의 천재 소녀들이 펼친 대결에서 한국이 이겼다.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환하게 웃은 반효진은 비록 짧은 선수 경력이지만 올림픽 앞두고 강훈을 거듭한 땀의 댓가를 보상받았기 때문인 듯 시상대에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반효진의 사격 입문기는 거의 만화 같다.
총을 10~20년 쏴도 출전하기 어려운 올림픽을 총 잡고 단 3년 만에 나섰기 때문이다. 파리 올림픽 대표 발탁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출전한 선발전에서 덜컥 1위를 차지하더니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그래서 반효진은 자신을 사격으로 이끈 친구 전보빈을 큰 은인으로 생각한다.
그는 지난 5월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개최된 파리 올림픽 사격 국가대표 미디어데이에서 "2025년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게 원래 목표였다. 경험을 쌓기 위해 편한 마음으로 선발전에 출전했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감사한 마음으로 대표팀에 들어오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사격을 권한 전보빈이) 사격이 매력 있다면서 '네가 한다면 정말 잘할 것'이라고 설득하더라. 사격을 시작하고 2개월이 좀 안 돼서 대구광역시장배에 출전해 1등을 했는데, 그 때부터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대하던 엄마도 본격적으로 밀어주게 된 계기"라고 돌아봤다. "사격을 시작하고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도쿄 올림픽이 시작했다. 그 때는 편하게 봐서 내가 저런 무대에 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물오른 경기력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지만 총을 내려놓은 반효진은 탕후루를 좋아하고, 마라탕을 먹고 싶다는 어느 고교생과 다르지 않았다.
2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마지막에 두 발 연속 9점대를 쏴 슛오프까지 간 것에 대해선 "두 발을 그렇게 크게 (과녁 밖으로) 뺄 줄은 몰랐다"면서도 "(슛오프는)그냥 심호흡하고 똑같이 쐈다"고 했다.
한국의 100번째 하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에 대해선 "너무 큰 영광이고, 기쁘고, 또 슬프다"고 했다. 슬프다고 말한 건, 정말 슬픈 게 아니라 감동의 눈물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반효진은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 코치님들까지 너무 힘들게 왔는데 제가 금메달을 따서 벅차올랐다. 언니들도 울면서 뛰어오더라. 엄청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사격에 입문한 뒤 파죽지세로 올림픽 무대까지 섰지만 반효진은 최근 작은 시련을 겪었다. 지난 27일 10m 공기소총 혼성에 박하준(KT)과 함께 나가려고 준비하다가 파트너가 최대한(경남대)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이 혼성 쿼커를 한 장만 받았다가 한 장 더 늘어 두 장이 되면서 박하준-반효진 조가 박하준-금지현 조로 바뀌었다.
그런데 박하준-금지현 조는 은메달을 따냈고, 최대한-반효진 조는 22위로 본선 탈락했다.
반효진은 금메달을 따고 나서야 그 때의 소감을 전했는데 담담하게 받아들였음을 알렸다. 반효진은 "제가 못해서 바뀐 게 아니라 지현 언니가 너무 잘해서 바뀐 거다. 그렇게 해서 메달을 따서 너무 기뻤고, 저도 소름이 돋더라"고 말했다. 실제 박하준-금지현 조가 출전한 혼성 결승을 지켜보며 응원도 했다.
파리 올림픽 두 종목을 모두 마친 반지현은 4년 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겨냥한다.
더욱 성장해 한국 사격의 새 에이스가 될 수도 있고, 금메달 감격에 취해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다. 반효진은 한 뼘 더 발전할 것을 다짐했따.
"운이 좋았다. 최대한 겸손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다짐한 그는 "경기에 나갈 때마다 최대한 겸손하게 했다. 하나라도 더 배우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친구이자 은인인 전보빈에 대한 고마움은 평생해도 부족하지 않다.
반효진은 "결승 들어가기 전에도 연락하고 왔다. 항상 정말 고맙다. '너 하던 대로만 해'라고 믿음직스러운 말을 해주더라"고 고마워 하더니 "보빈아, 네 덕분에 내가 메달을 땄어. 정말 고맙게 생각해. 잘해줄게"라고 다시 강조했다.
한국 사격은 반효진까지 금메달을 따내면서 새 전성기를 열어젖히고 있다.
대회 첫 날 박자훈-금지현 조의 은메달로 웃은 한국 사격은 28일 여자 10m 공기권총에서 오예진과 김예지가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눠갖는 쾌거를 달성하면서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50m 권총 진종오 이후 8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추가했다.
이어 반효진이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도 금빛 총성을 쏘면서 금메달 3개를 차지했던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단일 올림픽 복수의 금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아직 이번 대회 사격 일정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사격의 메달 소식은 더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3~4번째 금메달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한국 사격은 이번 대회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여갑순을 감독으로 위촉하고 파리에 데려왔다. 여갑순은 당시 올림픽 전체 종목에서 첫 금메달 주인공이 돼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여 감독의 그런 기운이 한국 사격에 이어지더니 자신이 우승했던 종목에서 반효진이 자신과 비슷한 고교생 신분으로 깜짝 금메달을 따내는 진기한 스토리를 썼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