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조은혜 기자) '한국 펜싱 간판' 오상욱이 2024 파리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개인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하며 남자 사브르 세계 최강임을 확실히 알린 오상욱의 레이스를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파리 올림픽 한국 선수단 최초 2관왕, 한국 펜싱 첫 올림픽 2관왕에 도전한다. 아울러 한국 펜싱 첫 올림픽 금메달 3개 획득도 정조준한다.
오상욱은 28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 결승전에서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와 격돌, 15-11 승리를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상욱의 생애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 개인전은 첫 금메달이다.
오상욱은 3년 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구본길, 김준호, 김정환과 함께 팀을 이뤄 이집트, 독일, 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펜싱 강국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개인전에선 8강 탈락하고 빈 손으로 마쳤는데 3년 만에 아쉬움을 풀었다.
또한 오상욱은 이번 대회 금메달로 '펜싱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역사까지 썼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등 다른 메이저대회에서 남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을 이미 따냈고, 올림픽 우승으로 화룡점정을 이뤘다.
오상욱은 이날 첫 경기인 32강전에서 에반 지로(니제르)를 15-8, 16강전에서 이란의 복병 알리 파크다만을 15-10으로 제압했다. 8강에선 캐나다의 무명 선수 파레스 아르파와 진땀 승부 끝에 15-13으로 따돌리며 순항했다.
이날 오상욱의 금메달 여정 최대 고비는 도쿄 올림픽 개인전 은메달리스트 루이지 사멜레(이탈리아)와의 준결승이었다. 초반 연속 실점하며 0-3으로 끌려갔던 오상욱은 상대 템포를 빼앗고 주도권을 가져왔고, 1피리어드를 마쳤을 땐 8-4 더블 스코어로 앞섰다. 이후 사멜레를 묶고 7점을 더 따내며 15-5 압승을 거두고 결승 무대에 올랐다.
결승전을 다소 싱거웠다. 32강전에서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 맏형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을 제압하는 등 이변을 계속 연출한 페르자니는 준결승에선 세계 1위 엘시시를 잡아 기세가 오를대로 오른 상황이었다. 게다가 오상욱과의 상대 전적에서도 2승1패로 앞서고 있어 만만치 않은 한판 승부가 예고됐다.
하지만 오상욱의 빠른 발과 민첩한 몸놀림에 페르자니는 와르르 무너졌다. 초반 2득점을 따낸 오상욱은 이후 상대에 실점하며 3-3 동점까지 허용했으나 준결승처럼 중반 접어들면서 연속득점하며 순식간에 8-4로 달아나고 1피리어드를 마쳤다.
2피리어드에서도 오상욱이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 직전까지 다가섰다. 페르자니의 칼에 발이 찔리는 작은 부상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았다. 페르자니가 경기 도중 넘어지는 불상사에도 오히려 그를 일으켜 세웠고, 14-6까지 훌쩍 달아나 금메달 포인트를 찍은 오상욱은 이후 5점을 연달아 내줬으나 벌려놓은 점수 차를 지키고 여유있게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입상 경력만 보면 탄탄대로를 걸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 앞두고 슬럼프에 빠졌던 터라 이번 파리 올림픽 금메달이 더욱 빛난다.
오상욱은 지난 5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국제그랑프리대회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앞서 열린 이 대회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는 등 초강세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상욱은 8강에서 당시 세계랭킹 78위에 불과했던 필리프 돌레지비치에게 12-15로 져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올해 들어 손목을 다쳐 한동안 자리를 비운 오상욱은 부상 부위를 자주 만지는 등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대회 직후 열린 스페인 마드리드 월드컵에서는 아예 개인전 16강에서 떨어졌다.
절치부심한 그는 다시 연습에 매진했고 지난달 열린 아시아선수권을 통해 다시 부활했다.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우승하며 한국 펜싱의 '에이스'가 돌아왔음을 알렸다.
오상욱의 금메달로 한국 펜싱은 올림픽 4회 연속 금메달 획득의 쾌거를 일궈내고 21세기 한국 스포츠의 효자 종목임을 확실히 알렸다.
지난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김영호가 남자 플뢰레에서 우승, 불모지 한국 펜싱에 기적 같은 올림픽 금메달을 선사했고, 12년 뒤인 2012 런던 올림픽에선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김지연이 여자 선수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같은 대회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구본길, 원우영, 김정환, 오은석이 한국 펜싱사 첫 단체전 금메달 획득을 해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선 남자 에페 박상영이 결승에서 10-14로 뒤져 패색이 짙은 상황임에도 '할 수 있다'는 외친 끝에 기적 같은 15-14 대역전극을 만들고 시상대 맨 위에 올라 한국 펜싱의 상승세가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3년 전 도쿄 올림픽에선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금메달 맥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오상욱이 해냈다. 오상욱은 한국 펜싱 최초로 올림픽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제 오상욱은 단체전에 나서 또 하나의 금메달을 노린다. 자신의 올림픽 세 번째 금메달, 한국 펜싱 역사상 전례 없었던 올림픽 2관왕이라는 새 역사를 노린다.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어펜져스'라는 닉네임 답게 지금도 세계 최강을 자랑한다. 의외의 변수가 많아 하위 랭커가 국제대회에서 곧잘 우승하는 게 펜싱의 특성이긴 하지만 3명이 한꺼번에 나서 서로 교차하면서 싸우는 단체전은 다르다. 각국 펜싱 실력이 정확하게 반영된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모든 세부 종목의 입상자를 예상하는 기사에서 한국의 파리 올림픽 성적을 금메달 5개, 은메달 5개, 동메달 7개로 분석하며 참패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그럼에도 한 개의 금메달은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나올 것이라 보기도 했다.
오상욱이 금메달을 따내면 한국 펜싱사 첫 올림픽 단일 대회 2관왕이 된다. 한국 펜싱은 지금까지 올림픽 통산 금6 은3 동8을 기록했지만 한 대회에서 개인과 단체를 모두 석권한 이는 없었다. 오상욱이 그런 역사를 쓸 기회를 잡은 셈이다.
올림픽 통산 금메달 3개의 몫도 오상욱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생겼다. 런던 올림픽과 도쿄 올림픽에서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딸 때 핵심 멤버였던 구본길과 김정환이 한국 선수로는 금메달 2개를 거머쥔 펜싱 선수들이다. 이 중 구본길이 이번 대회를 은퇴 무대로 삼고 단체전에 오상욱과 함께 나선다. 금메달을 따낸다면 오상욱이 구본길과 함께 한국 펜싱 올림픽 금메달 3개를 거머쥐는 첫 선수가 된다.
오상욱을 넘어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88년 만에 이 종목 3연패에 도전한다. 과거 헝가리 대표팀이 1928년과 1932년, 1936년, 1948년, 1952년 등 5개 대회에 연달아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우승을 일궈낸 적이 있었다. 이후 어느 팀에도 3연패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한국이 이를 이룩할 기회를 잡았다. 남자 사브르 단체전은 2016 리우 올림픽 땐 정식 종목이 아니었다.
사브르 남자 단체전은 오는 31일 열린다. 오상욱은 "코치님께서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 그냥 열심히만 하라고 하신다"며 "이어지는 단체전에서도 똑같은 마음으로 해보겠다"고 덧붙였다. 단체전에서도 우승하면 8월 초 혼성 단체전 및 남녀 개인전에 나서는 양궁 선수들보다 먼저 한국 선수단 2관왕을 달성할 확률도 매우 높다.
사진=연합뉴스
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