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청담동, 조은혜 기자)
"임 선수에게 사정을 해야겠습니다. 가지 마시고 사인을…"
"도장을 집에 놓고 와가지고…"
LG 트윈스 임찬규는 8일 서울 강남구 호텔리베라 청담 베르사이유홀에서 열린 '2023 뉴트리디데이 일구상' 시상식에서 최고투수상을 수상했다. 임찬규는 수상 후 ""선배님들 발자취에 따라가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더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인사 잘하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야구 더 잘할 수 있는 선수가 되라는 상으로 주신 걸로 알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우주의 기운이 온 것 같았냐' 묻는 질문에는 "시즌 초에 시작하면서 감독님께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내가 던지던 대로만 던지면 그 이상의 성적을 낼 거라고 하셨다. 우주의 기운은 모르겠다. 많은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공을 던졌더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지난해 FA 자격을 얻었으나 '재수'를 택한 임찬규는 올 시즌 30경기 144⅔이닝 규정이닝을 소화, 평균자책점 3.42를 기록하며 14승3패 1홀드로 국내 투수 최다승을 달성하는 등 LG 마운드를 든든히 지키며 팀의 29년 만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고 시장에 나와 있는 상황. 임찬규의 LG 잔류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는 가운데, 차명석 단장은 이미 "임찬규와 함덕주, 김민성 세 명을 모두 잡을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단상에 오른 차명석 단장은 직접 임찬규를 언급하기도 했다. 올 시즌 LG 트윈스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100만 관중을 넘어 120만 관중을 달성했고, LG 트윈스 마케팅팀이 이날 '프런트상'을 받으면서 차 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차명석 단장은 스토브리그 계획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120만 관중도 어려웠고, 29년 만의 우승은 더 어려웠다. 가장 어려운 건 임찬규 선수 FA 계약이다. 오신 김에 도장을 찍어주고 가셨으면 좋겠다. 갑을관계가 바뀌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차 단장은 "임 선수에게 사정을 해야겠다. 잘 부탁드린다. 가지 마시고 사인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차 단장에 이 말에 임찬규는 "도장을 집에 놓고 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임찬규는 "단장님께서 꽃도 주시고 기분이 좋다. 확실히 나와 다르게 대인배이시다. 단장님은 첫 순서 상이기도 해서 꽃을 못 드렸는데, 단장님이 꽃을 주셔서 의미있다"며 "악수를 세게 하시더라. 특별한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고 웃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만난 임찬규는 그간의 과정을 털어놨다. 임찬규는 "(협상을 위해) 단장님은 한 번 만나 뵈었고, (에이전트) 이예랑 대표님이 지금 해외에 있기 때문에 한 번 통화를 한 게 다다. 어떻게 보면 아직 두 번 만난 거고, 크게 오간 얘기 없이 잘 대화했다. 아마 이예랑 대표님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임찬규는 "사실 대표님만의 일정이 아니다. 우리도 한국시리즈로 시즌이 늦게 끝났고, 또 늦게 끝나면서 이제 밀린 업무를 다 맞추셔야 되는 게 단장님의 역할이다. 그것들을 기다린 뒤에 한 번 만나 뵌 거고, 이예랑 대표팀의 개인 스케줄과도 맞물렸다"면서 "모든 선수가 아마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일 거다. 급할 거 없이 차분하게 생각하고 운동하고 있으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우승보다 임찬규와의 계약이 더 어렵다"는 차 단장의 말에 임찬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나와의 계약 테이블이 어렵다는 게 아니고 나를 측정하기 어려우신 것 같다. 나를 존중하신 말씀이다. '그만큼 어려운 선수다'라고 얘기해 주신 것 같아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나는 방송에서도 얘기했듯이 그냥 딱딱 끝내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에 잘 되길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팬들은 물론 동료들까지 모두가 임찬규의 LG 잔류를 바라고 있다. 올해 임찬규와 함께 배터리 호흡을 맞춘 포수 박동원은 "찬규가 없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도망갈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도망가면 이제 우리 강타선 LG한테 많이 혼날 것 같다. 안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우리 선수들이 다 혼내 줄 것 같다. 찬규 평균자책점이 많이 올라갈 것 같다"고 웃으며 으름장 아닌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박동원은 "찬규가 FA 재수를 택했기 때문에 시즌 중에도 걱정도 많이 하고 그랬다. 충분히 잘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잘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먼저 해본 입장에서 걱정하지 말라고만 얘기했다"면서 "혹시 좋은 계약 소식이 오면 첫 번째로 알려준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안 왔다. 찬규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임찬규는 "행복하다. 구단과 감독님, 코치님이나 단장님도 마찬가지고 특히 팀 동료들이 남아주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정말 크나큰 행복인 것 같다"면서 "13년 동안 'LG에서 잘 살아왔구나' 생각도 든다. 가족 같은 사람들이 다 나를 반겨주니까 좋다"고 전했다.
통합우승 후 한 달 여. 각종 행사와 방송 출연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 임찬규는 "이게 생각보다, 우승 직후보다는 열흘, 2주가 지나니까 더 (여운이) 오는 것 같더라. 그때는 정신이 없었다. 이제 조금 추스를 시간을 가지면서 돌아보는데, 이제 막 오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제 우승의 기쁨을 뒤로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임찬규는 모레부터 곧 운동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1년 일구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던 임찬규는 이제는 최고의 투수로 우뚝 섰다. 수상 소감으로 "이 자리에 오면서 많은 선배님들, 후배님들을 봤는데, 내가 가장 야구 실력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을 주신 선배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던 그는 "쭉 둘러봤는데 내가 가장 부족하더라. 그래서 한 시즌이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하게 해서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생각으로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찬규는 "힘든 경험도 많았지만, 그걸 토대로 이 자리의 시상식까지 왔다. 다시 돌아왔다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또 (시상식에) 자주 올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며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우승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 우승을 하고 싶다는 바람 전하는 것을 보면 임찬규의 재계약을 원하는 LG 팬들의 가슴이 뛰지 않을까. 다른 팀 FA들이 속속 재계약 혹은 새 팀과의 도장을 찍는 가운데 LG가 임찬규를 시작으로 FA 시장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한국시리즈 우승 뒤 외쳤던 왕조 구축의 기치를 다시 높이 들어올릴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청담동, 박지영 기자
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