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뒤에도 '한국산 철기둥' 김민재를 잊지 못했다.
지난 시즌 이탈리아 나폴리를 33년 만에 세리에A(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루치아노 스팔레티 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의 수상 소감이 화제다.
스팔레티 감독은 5일(한국시간) 이탈리아축구선수협회(AIC)에서 진행한 '그란 갈라 델 칼초'에서 2022/23시즌 세리에A 올해의 감독으로 뽑혔다. 이전까지 세리에A 우승을 단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던 스팔레티 감독은 지난 시즌엔 나폴리의 승승장구를 지휘하며 정상 등극의 기쁨을 누렸다.
특히 지난해 여름 영입한 김민재와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가 각각 수비와 공격에서 걸출한 활약을 하면서 시즌 초반부터 선두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내달렸다.
이에 선수들이 직접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이탈리아 최고 권위를 갖고 있는 '그란 갈라 델 칼초'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아울러 이날 시상식에선 김민재 역시 나폴리의 우승 공로를 인정받아 베스트11 수비수에 뽑혔다.
'그란 갈라 델 칼초'는 1997년부터 시즌이 끝나면 지난 한 해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 감독, 심판 등을 선정해 시상식을 진행했다. 보통 이러한 시상식은 일반적으로 시즌이 끝나면 진행하지만, AIC는 12월에 시상식을 개최했다. 지난해에도 10월에 2021/22시즌 올해의 팀을 발표했다.
이날 시상식에선 2022/23시즌 세리에A 베스트 11, 올해의 감독, 올해의 심판, 올해의 클럽, 올해의 세리에B 영플레이어 등이 발표됐다. 남성팀뿐만 아니라 여자 프로팀도 함께 수상 대상에 포함됐다.
김민재 우선 남자 세리에A 베스트 11 수비수 후보 8인에 이름을 올렸다. 김민재와 함께 조반니 디 로렌초(나폴리), 테오 에르난데스, 피카요 토모리(이하 AC밀란), 프란체스코 아체르비, 알레산드로 바스토니, 페데리코 디마르코, 덴절 뒴프리스(이하 인터밀란)가 후보에 포함됐다.
그리고 예상대로 디 로렌초와 함께 4-3-3 전형으로 이루어진 베스트 11에서 수비진 4자리 중 2개를 꿰찼다. 나머지 두 자리는 에르난데스와 바스토니한테 돌아갔다.
베스트 11 골키퍼 자리는 밀란 수문장 마이크 메냥이 차지했다. 중원 3인방은 스타니슬라프 로보트카(나폴리), 하칸 찰하놀루, 니콜로 바렐라(이하 인터밀란)가 뽑혔고, 최전방 3톱 자리엔 하파엘 레앙(AC밀란), 빅터 오시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이하 나폴리)가 이름을 올렸다.
이어 남자 세리에A 최고의 감독상이 스팔레티 감독한테 돌아갔다.
스팔레티 감독은 나폴리 우승 뒤 사임해 야인으로 지내다가 로베르토 만시니 전 감독이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으로 가면서 생긴 이탈리아 대표팀 자리를 맡고 있다.
이 자리에서 스팔레티 감독이 수상 소감을 전하다가 지금은 독일의 세계적 명문 구단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 김민재를 언급한 것이다.
5일 나폴리 지역지 '아레아 나폴리'에 따르면 스팔레티 감독은 "김민재는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했다. 날 보고 '감독님, 예, 아니오?'라는 말을 했다"며 "그리고 그는 떠났다. 멋진 소년이었다. 그는 그런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의 출신이다. 행동에 있어서도 인상적인 선수였다"고 했다.
축구와 감독을 대하는 김민재의 태도와 실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뜻이다.
스팔레티 감독은 이어 크바라차헬리아에 대한 뒷이야기도 공개했다. 스팔레티 감독은 "그는 아직도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는 선수다. 훈련을 할때 디로렌초가 그와 상대하곤 했다. 난 디로렌초에게 '디를로(애칭),어떤 선수 같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디로렌초는 그는 '(흐비차와 상대하기 싫으니) 감독님, 반대편 측면에서 뛰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하곤 했다"고 했다.
스팔레티 감독은 이제 이탈리아 대표팀 사령탑이 돼 더 이상 김민재와 크바라츠헬리아를 지도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둘을 그리워했고, 특히 김민재에 대해선 조국인 대한민국까지 극찬하며 박수를 쳤다.
스팔레티 감독은 중국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축구인들의 추천 등을 받아 김민재를 알게 됐고 영상 등을 본 뒤 곧장 스카우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시즌 도중에도 김민재를 여러 차례 극찬했다.
사실 스팔레티 감독은 김민재 전임자로 지난여름 프리미어리그 첼시로 이적했으며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에서 뛰는 칼리두 쿨리발리의 공백을 우려했다. 쿨리발리가 나폴리에서 8년간 활약하며 워낙 큰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 언론은 "스팔레티 감독은 항상 쿨리발리의 열렬한 팬이었다. 과거 그는 쿨리발리를 내보내지 않기 위해 강경한 태도를 취한 바 있다"라고 할 정도였다. 스팔레티 감독은 직접 "쿨리발리는 내가 지도했던 선수들 중에서 최고의 선수"라며 "나폴리에서 그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수비수? 쿨리발리보다 나은 선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쿨리발리의 공백을 말끔히 채운 수비수가 한국에서 왔다. 지금은 유벤투스 단장을 맡고 있는 크리스티아노 지운톨리 당시 나폴리 단장이 튀르키예 클럽 페네르바체에서 뛰던 김민재를 추천한 것이다.
단장의 추천으로 김민재를 알아보게 된 스팔레티 감독은 김민재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나폴리 지역 언론은 "스팔레티 감독은 다양한 영상을 통해 김민재 활약을 살펴본 뒤 그의 뛰어난 실력을 확신했다"라며 "훈련과 공식 경기에서 김민재 경기를 지켜본 후 스팔레티 감독은 말 그대로 감명을 받았다. 지운톨리 단장에게 '당신은 천재(Fenomeno)를 찾았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했다.
실제 김민재는 빼어난 활약을 펼쳤고, 지난 시즌 세리에A 35경기를 비롯해 나폴리에서 공식전 45경기를 뛰며 유럽 A급 수비수로 올라섰다.
김민재 활약에 감명을 받은 스팔레티 감독은 지난 시즌 막판 인터뷰에서 "내게 김민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수비수"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김민재 활약상을 높게 평가한 세리에A 사무국은 시즌 막판 김민재를 세리에A 베스트11은 물론, 최우수 수비수로 선정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6개월이 지나 이번엔 선수들이 투표해서 주는 베스트11에 뽑혔다.
뛰어난 활약을 펼친 김민재는 시즌이 끝난 후 유럽 빅클럽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김민재 레이스 최종 승자는 독일 분데스리가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이 됐고, 김민재는 이적료 5000만 유로(약 710억원)에 나폴리를 떠나 뮌헨으로 향했다.
이번 '그란 갈라 델 칼초'에 뽑힌 베스트11 중 새 시즌 이탈리아를 벗어나 이적한 선수는 김민재 단 한 명이다.
이탈리아가 좁다는 것을 김민재는 뮌헨 이적 뒤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김민재는 다요 우파메카노, 마테이스 더리흐트 등 세계적인 센터백들이 부상으로 시달리는 와중에도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며 핵심 수비수로 등극, 매 경기 선발 출전 중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경기를 뛰는 탓에 과부하 우려가 생길 정도였다.
분데스리가 개막전부터 뮌헨의 분데스리가 및 챔피언스리그 16경기를 모두 선발 출전하는 초강행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김민재는 "못 뛰는 것보다는 이렇게 많이 뛰어 힘드는 게 행복하다"며 특유의 정신력으로 뮌헨 팬들을 감동하게 만드는 중이다. 스팔레티 감독이 극찬한 바로 그 정신력이다.
김민재는 초반 적응하느라 실수도 범했지만 지금은 뮌헨 구단에서 없어선 안될 상수가 됐다.
바이에른주 지역 유력지 '아벤트 차이퉁'은 지난달 30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코펜하겐전을 앞두고 낸 보도에서 "김민재는 이번 시즌 뮌헨의 전체 경기 시간 90%에 출전했는데 이는 팀 내 어떤 선수들보다 많은 출전 시간"이라면서 "경기당 평균 112개의 볼 터치, 경기당 1.6개의 가로채기를 기록하며 뮌헨 센터백 중 최고의 기록을 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190cm 거인을 위한 투자는 매 경기마다 점점 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계적으로 나폴리에서보다 뮌헨에 온 뒤 더 나은 지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게 신문의 설명이었다.
신문은 "김민재는 이적 뒤 이미 강력한 능력치를 더 높였다"며 "바이에른 유니폼을 입고 그는 나폴리에서보다 경기당 더 많은 볼 경합 승리(7.2대5.9)를 기록하고 있다. 공중볼 경합에서 이긴 경우도 뮌헨에서 4.9개를 기록해 나폴리에서의 4.4개보다 더 많았다고 했다. 반면 파울은 경기당 0.8개로 나폴리 때 0.9개보다 근소하게 줄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김민재는 이번 시즌 단 한 장의 옐로카드만 받았다. 이는 중앙 수비수로서는 강력한 모습이기도 하다"고 칭찬했다.
이는 "나폴리에서 보던 김민재가 아니다"라고 했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팀 멤버 마테우스의 주장과 어긋난다. 마테우스는 지난달 '스카이스포츠 독일'을 통해 "김민재는 아직 우리가 기대했던 것에 근접한 기량은 아니다"며 "바이에른 뮌헨의 불안 요소"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분데스리가에 익숙해져야 한다. 김민재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탈리아에서 받은 업적을 고려하면 내가 그에게 거는 기대에 아직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물론 마테우스 발언이 거의 2개월 전에 이뤄진 거라 지금은 김민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김민재가 2개월 사이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도 아니어서 이번 아벤트 차이퉁이 기록을 들어 조목조목 김민재의 업그레이드를 설명한 보도는 의미가 크다.
그렇게 김민재가 적응하는 시점에서 스팔레티라는 또다른 명장이 자신의 상 받는 자리에 김민재를 추억하며 그를 호평했다.
사진=나폴리 SNS, 연합뉴스, 키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