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수원월드컵경기장, 김정현 기자) 끝내 강등을 막지 못한 수원삼성 염기훈 감독 대행이 팬들에게 사과했다.
수원은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강원과의 '하나원큐 K리그1 2023' 38라운드 최종전에서 0-0으로 비겼다.
수원과 강원이 득점 없이 비긴 가운데 수원FC와 제주유나이티드가 동시간대 열린 경기에서 1-1로 비기며 강원이 최종 10위(승점 34), 수원FC가 11위(승점 33·득점 44), 수원이 12위(승점 33·득점 35)가 됐다. 다득점에서 수원FC에 밀린 수원은 결국 1995년 창단 이래 첫 2부리그 강등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이날 무조건 이겨야 했던 수원은 선수비 후역습을 내세웠지만, 강원의 강한 압박 기조에 쉽게 올라가지 못했고 슈팅 기회도 적었다. 경기 막판 공세에도 수원은 득점에 실패했고 결국 강등당했다.
수원은 지난 시즌 소방수로 부임한 구단 레전드 이병근 감독 체제를 유지하며 이번 시즌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된 투자에 실패했다.
오현규를 스코틀랜드 셀틱에 판매하고 얻은 수익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했다. 성남의 강등을 막지 못한 뮬리치를 영입했으나 오현규 빈 자리를 메우기엔 부족했다.
이 감독은 뮬리치 활용에 실패했고 여기에 베테랑 김보경과 바사니의 공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이 감독은 그 사이 7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지며 경질됐다. 최성용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잠시 버텼지만, 수원은 김병수 감독을 선임해 당장의 시급한 상황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팀을 바꾸려는 의지를 보였다.
김 감독 체제에서 수원은 중원 숫자를 늘리고 패스를 통한 볼 소유를 통한 전진으로 공격에 나섰다. 울산 현대를 잡는 등 7월에 무패 행진을 달려 파란을 일으킨 바 있지만, 이후 기세가 꺾였다. 김 감독은 31라운드 대전 원정 1-3 패배 후 32라운드 인천전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경질 통보를 받았다.
염 대행 체제로 넘어와 나름 승점을 쌓았지만, 초반부터 허덕였던 수원의 어려움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다이렉트 강등응로 돌아오고 말았다. 염 대행은 이날 강원전이 종료되자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경기가 끝나고 수원 선수단과 프런트 전원이 팬들 앞에 서서 인사를 전했다. 이준 대표이사를 비롯해 오동석 단장, 염 대행, 주장 김보경 등이 나와 팬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고 선수단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염 대행은 그라운드에서 모든 일정을 다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참석했다. 침울한 표정을 한 그는 “팬들께 너무나 죄송하다. 선수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생각하지 않고 원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와 선수단에도 미안하다. 팬들께도 고개를 들을 수 없을 만큼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강원이 생각보다 수원이 소극적으로 임한 것처럼 보였다는 의견에 대해 염 대행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강원을 분석했지만, 저희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 이런 상황들이 나왔다. 선수들은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온 건 내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 부족함이 크다"라고 자책했다.
강등의 이유를 한두 가지 꼽아달라고 말하자, 염 대행은 "한두 가지 꼽기엔 적다. 많은 문제점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뽑기엔 힘들다"라며 "경기장은 선수들이 뛰는 곳이다. 그 안에서 선수단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선수들이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팀 내 변화들이 선수들에게 크게 영향이 갔고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010년 입단할 당시 수원의 차이를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염 대행은 "선수단 차이가 크다. 내가 왔을 땐 이름 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저희 구단이 쓰는 예산도 많았다.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열악해진 게 사실이다. 선수들이 열심히 해줬지만, 이름 있고 더 좋은 선수들이 팀이 같이 있었더라면과 같은 생각도 있다. 지금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감독이 아닌 베테랑 선수로 봤을 때 어떤지 되묻자, 염 대행은 "적재적소에 써야 하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선수 영입을 비롯해 여러 문제점에서 개선이 됐다고 말씀은 못 드릴 것 같다. 지금 하는 답변들도 너무 힘들다. 내가 사랑하는 팀이 이렇게 됐다는 것 자체로 힘들다. 분명 수원은 다시 올라갈 것이다. 선수들이 더 힘내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라고 밝혔다.
염 대행은 팀이 어려운 순간, 자신을 희생했다. 김 감독이 경질된 뒤, 염 대행이 자리를 맡는다고 발표가 나자 여론은 '수원이 염기훈을 방패막이로 사용한다'라고 비판했다. 염 대행은 구단을 통해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시는 걸 알고 있는데 그냥 수원만 생각했다. 방패막이가 되는 게 두렵지 않고 팀이 잘못됐을 때가 제일 두려웠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시즌 중도에 팀을 지휘하게 된 염 대행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거치며 후회가 있었는지 묻자 "후회는 (대행직을) 제의받은 이후로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이 감사했다. 절대 나는 제의를 받은 이유는 분명했다. 뭐라도 하려고 했다. 내가 부족해 이런 상황이 왔지만, 팀을 위해 내가 뭐라도 하고 싶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해준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선수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지만, 분명 다시 일어서고 K리그1에 복귀할 거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더 힘을 내줬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답했다.
본인의 거취에 대해 염 대행은 "다음은 항상 지도자를 하고 싶었다. 내가 어디서 다시 지도자를 시작할지 모르지만, 지도자의 꿈을 이뤄 나갈 거다. 구단과 이야기하겠지만, 수원이든 다른 곳이든 지도자로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수원의 모기업 삼성의 스포츠 구단은 축구를 비롯해 모든 프로 스포츠 구단에서 부진한 성적을 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염 대행은 "투자라고 본다. 좋은 투자가 있어야 팀이 더 단단해지고 기존 선수들과 새로운 선수들이 경쟁하며 단단해진다고 생각한다. 2010년의 수원과 지금의 수원은 아주 다르다. 제일 첫 번째는 투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염 대행은 지난해 선수 신분으로 은퇴를 하려고 했다. 2022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한 그는 편안한 마음 대신, 팀이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자 은퇴를 번복했다. 지난 시즌은 오현규(셀틱)의 활약 덕분에 잔류에 성공했지만, 2023시즌은 더 가혹했다.
강등과 함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염 대행은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수원에 있으면서 모든 게 내 선택이다.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많은 분들이 안 좋은 선택이라고 했지만, 최선의 선택이 되기 위해 선수로 최선을 다했다. 후회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안 좋은 상황에서 은퇴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수원을 사랑하고 응원할 것이다. 수원이 잘되도록 돕고 멀리서 응원하면서 이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비록 강등을 막진 못했지만 염 대행이 팀의 강등 중심에 섰다는 평가가 나오진 않고 있다.
이병근 감독, 김병수 감독 등 지난시즌 첼시처럼 한 시즌에 감독이 두 명이나 경질되는 충격 속에서 수원 지휘봉을 잡은 염 대행은 특히 36라운드 수원FC와의 더비 매치에서 전반 초반 핵심 미드필더 카즈키가 퇴장당하는 사고 속에서도 10명이서 3골을 넣고 3-2 역전승을 일궈내는 드라마를 써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어 37라운드 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 바사니의 한 방이 터지면서 1-0으로 이기고 다이렉트 강등을 최종 38라운드까지 끌고 왔다. 염 대행의 용병술이 없었더라면 수원FC전이나 서울전에서 이미 수원이 강등 굴욕을 당했을 거란 분석이 많다. 초보 감독임에도 팀을 하나로 모아 강원전까지 수원 팬들의 기대를 모은 점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염 대행은 기로에 놓였다. 수원은 마지막에 최선을 다해 선수들을 다독인 염 대행과 내년 1부 탈환을 위한 도약을 노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선장을 데려와 2부리그 조기 탈출을 도모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큰 과제를 받아들었다. 염기훈의 눈물이 훗날 수원 역사에 어떻게 기억될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수원월드컵경기장, 박지영 기자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