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태승 기자) 영국 축구 레전드들이 황희찬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월드컵 득점왕이 황희찬을 가리켜 극찬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으로 영국 축구를 대표하는 셀러브리티인 게리 리네커와 프리미어리그 통산 득점 1위 앨런 시어러, 그리고 2010년 전후로 잉글랜드 대표팀 수비수로 활약했던 맨체스터 시티 출신 마이카 리처즈는 지난 25일(한국시간) '더 레스트 이즈 풋볼' 팟캐스트에 출연,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순위를 점검하며 초반 예측을 수정하고 평가했다.
이 자리에서 이번 시즌 돌풍의 팀으로 울버햄프턴이 지목되면서 황희찬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3명 모두 이번 시즌 가장 예상밖 성적으로 내고 있는 팀들로 손흥민이 주장을 맡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와 황희찬이 공격을 이끄는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울브스)를 꼽았다. 시어러는 우선 토트넘에 대해 "매우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팀"이라며 "리그 시작 전 8위로 예측했는데 조금 수정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최근 경기에서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며 "여전히 4위 내로 마무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순 없지만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있다"며 호평했다.
리처즈는 이에 한술 더 떠 "부상만 없다면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가능성을 내세웠다. 다음 시즌부터 유럽축구연맹(UEFA)가 주관하는 챔피언스리그 대회 진행 방식이 바뀌며 최대 5개의 구단이 출전할 수 있다는 변수가 생긴 것과 관련해서도 토트넘이 챔피언스리그 티켓 거머쥐는 게 가능한 얘기라는 결론이 나왔다.
토트넘은 해당 팟캐스트가 방송된 이후 27일 진행된 2023/24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경기서 애스턴 빌라에 1-2로 패했다. 결국 4위였던 순위는 애스턴 빌라와 뒤바뀌어 5위로 내려간 상태다.
울브스 또한 3명이 입을 모아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는 것으로 지목한 팈이다. 특히 시어러와 리처즈는 리그 개막 전 울브스가 강등권에 머무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뚜껑을 열고보니 그렇지 않았다.
현재 울브스는 신임 감독 개리 오닐의 전술 아래 완전히 탈바꿈해 12위를 달리고 있다. 맞대결할 때 선두였던 맨체스터 시티와 토트넘을 홈에서 연달아 물리쳤다. 28일 오전 5시 열리는 풀럼과의 원정 경기 결과에 따라 최대 10위까지도 도약이 가능하다.
시어러는 "오닐이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다"며 "증명할 것이 많았는데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리네커 또한 울브스가 외려 더 높은 순위에 오르는 것이 맞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울브스가 VAR(비디오 판독)로 5점 가까이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울브스는 지난 리그 10라운드에서는 주심의 황당한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내주기도 했다. 전반 추가시간 황희찬이 박스 내에서 뉴캐슬의 파비안 셰어에게 태클을 거는 듯해 페널티킥이 선언됐지만 황희찬 발은 셰어에게 전혀 닿지 않았다.
그러면서 황희찬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리네커가 크게 칭찬했다. 울브스 업그레이드 중심에 그가 있다는 뜻이었다.
리네커는 "(윙어)페드로 네투가 부상을 입었지만 황희찬이 정말 잘한다"며 "골도 몇 번 넣고 도움도 기록하고 있다. 공격 여러 방면에서 잘 한다"고 극찬했다. 리처즈 또한 "선수단에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다"며 "토트넘과의 경기서 골을 넣은 마리오 레미나 등 특출난 선수가 많다"고 짚었다.
시어러까지 가세, "강등권이라고 평가했던 과거의 예측을 뒤집고 현재 순위가 가장 적절하다고 수정하겠다"며 울브스의 최종 순위는 12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토트넘과 울브스 등 두 팀을 칭찬하면서 특정 선수를 지목해 칭찬한 것은 황희찬이 거의 유일했다고 할 만큼 리네커가 좋은 평가를 내렸다.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던 그가 보기에도 황희찬이 눈에 띄는 것이다.
황희찬은 리네커 외에도 2020년 전후로 프리미어리그를 휘어잡고 있는 두 명장, 위르겐 클롭(리버풀)과 펩 과르디올라(맨시티)에 연달아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클롭 감독은 지난 9월16일 울버햄프턴 원정 경기를 앞두고 "(울버햄프턴이) 중요 자원들을 잃어버린 것은 맞다. 그럼에도 그들의 선수단을 보면 '정말 좋은 팀이구나'란 생각이 든다"며 "황(희찬)이나 사샤 칼라이지치 같은 (위협적인) 선수들은 선발로 출전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페드루 네투 같은 유형으로, 좋은 선수들이 많다"고 했다.
실제 황희찬은 클롭 감독이 교체로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방증하듯 리버풀전에서 전격 선발로 나와 전반 초반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골망을 출렁였다. 울버햄프턴이 전반전을 1-0으로 앞서는 중심에 섰다. 물론 홈팀이 후반에 3골을 얻어맞아 역전패했지만 황희찬은 자신의 가치를 클롭 감독 앞에서 입증한 것이다.
이어 과르디올라 감독은 9월30일 역시 울브스 원정을 앞두고 황희찬의 이름을 몰라 "코리안 가이"라고 부르면서 큰 화제가 됐다. 당시 과르디올라 감독은 울버햄프턴전을 앞두고 "우린 항상 울버햄프턴과의 경기에서 고전했다. 마테우스 누네스 등 몇몇 선수들이 떠났지만 울버햄프턴엔 퀄리티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페드루 네투, 마테우스 쿠냐, 그리고 그 한국 선수는 정말 훌륭하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정확히는 "더 코리안 가이(The Korean guy)"라고 칭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코리안 가이'라고 했는데 이 표현이 한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화제가 됐다. 울버햄프턴은 '더 코리안 가이' 셔츠까지 내놓을 정도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평가는 정확했다. 황희찬은 맨시티전에서 결승포를 터트려 지난 시즌 '유러피언 트레블' 주역을 쓰러트렸다. 그러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그의 성을 기억한 듯 "황"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했다.
황희찬을 시즌 초반 벤치에 앉혔던 오닐 감독 역시 이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면서 황희찬을 치켜세웠다.
지난달 오닐 감독은 황희찬이 프리미어리그 5호골을 넣을 때까지 슈팅이 11개밖에 되지 않아 프리미어리그 골전환율 1위를 달리는 것에 주목하면서 "100반먼 쏘면 들어가는 중거리슛보다는 황희찬처럼 위치 선정을 잘 해서 정확하게 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극찬했다.
황희찬은 이런 축구종가에서의 확 달라진 평가에 고무된 모습이다.
그는 과르디올라의 칭찬으로 화제가 된 지난 10월 A매치 기간에 "코리안 가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는 질문에 "별명이 지루해질 때쯤 되면 계속 하나씩 나오는 것 같다. 일단 긍정적인 별명인 것 같아서 기쁘고, 코리아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외국에서 알릴 수 있다는 부분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팀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서 그런 재밌는 별명까지 붙어서 좋았다"고 했다.
"맨시티전 전에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름이 안 떠올라서 한 얘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름을 알려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는지 궁금하다"는 물음엔 "경기 전에 많이 보내줘서 봤다. 항상 경기 전에 부정적인 이야기가 있건, 긍정적인 이야기가 있건 나의 경기력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항상 생각하려고 노력한다"며 "사실 순간적으로 이름이 생각 안 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세계 최고의 감독님이 실력적인 부분에서 언급해 준 것이기 때문에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런 부분에서 자신감을 얻고 경기에 임했던 것 같다"며 기뻐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코리안 가이' 호칭과 맨시티전 골에 대해선 "유럽 쪽에서 반응이 더 많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던 것 같다. 티셔츠도 구단에서 선물로 많이 줘서 챙겨놨다"며 뿌듯함을 숨기지 않았다.
황희찬은 28일 오전 5시 영국 런던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풀럼과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원정 경기를 치른다. 황희찬의 경우,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없이 보낸 적이 없어 풀럼전에서의 골 혹은 도움이 기대된다.
영국 현지에선 울버햄프턴이 4-4-1-1 포메이션을 쓰는 가운데 마테우스 쿠냐의 뒤를 받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황희찬이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황희찬 뒤를 직전 토트넘전 득점포 주인공인 마리오 레미나, 그리고 포르투갈 테크니션 주앙 고메스가 받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황희찬이 멈춰 있는 프리미어리그 6호골(시즌 7호골)에서 더 나아가고 울버햄프턴의 중위권 질주에도 기여할 수 있을 지 흥미롭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승 기자 taseau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