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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통 맞고, "설거지꾼이나 하는 운동" 비난까지…미국에서 축구를 한다는 것

기사입력 2023.11.15 07:40

이태승 기자


(엑스포츠뉴스 이태승 기자) 2026년 캐나다, 미국, 멕시코가 합작해 북중미 월드컵을 개최하는 가운데 과거 미국이 월드컵 진출을 위해 겪었던 고난의 역사가 공개됐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14일(한국시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진출한 미국 대표팀 : 오줌통과 맥주캔, 그리고 혁신의 진출기'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게재했다.

미국의 4대 스포츠는 야구, 농구, 미식축구와 아이스하키다. BBC에 따르면 1990년 월드컵 이전만 하더라도 미국 내에서의 축구 입지는 매우 초라했다. 매체는 "20세기 전반적으로 미국서 축구는 재외국민, 택시기사, 설거지꾼, 교환학생, 유럽 출신 스노브 등 사회적 소규모 집단을 위한 스포츠"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은 당시 세계 경제 흐름을 주도하던 미국 달러 자본 투입이 간절했다. 이에 미국은 1994년에 열릴 월드컵 개최권을 1988년 따내는 것에 성공하며 시장의 저변을 확장하고자 노력했다.

다만 미국서 열리는 월드컵은 화제성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국민 전체가 축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축구협회의 회장을 역임하던 워너 프리커는 미국이 1990년 월드컵에서 성과를 거둬 축구 시장의 확대와 월드컵 성공 개최를 모두 이룩하려했다.

그러나 미국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본선행 경험이 없는 불모지 중의 불모지였다. 때문에 프리커는 독일-헝가리 혼혈의 이민자 밥 갠슬러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미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대표팀 전임 감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갠슬러는 곧바로 갓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모집해 미국 대표팀을 꾸렸다. 파릇파릇한 청년들로만 팀을 구성한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월드컵 진출서 실패한 선수들을 쓰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조리 '뉴페이스'들로만 대표팀을 구성하게 됐다.

감독과 축구협회장뿐 아니라 뽑힌 선수들도 열심히 뛰어야하는 이유가 충분했다는 'BBC'의 설명이다. 매체는 "선수들 대부분은 이민자 가정의 2세로 전국민이 혐오하는 종목(축구)을 사랑했지만 제대로 뛸 수 있는 리그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축구를 업으로 삼아야하는 미국 청년들의 비애를 전했다.

먼저 협회는 선수들 개개인과 계약을 맺어 마치 축구 구단처럼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비인기종목의 선수들이 '투잡'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선수들이 돈에 구애받지 않고 훈련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 것이 미축구협회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한 경기감각을 키우기위해 세계 어디에 있던 간에 구단 혹은 국가를 가리지않고 친선경기를 치렀다. 



당시 축구 인프라가 변변찮았던 미국이어서 대표팀에 발탁된 수비수 폴 크럼프, 공격수 피터 베르메스, 그리고 훗날 스타 플레이어가 된 20살 골키퍼 토니 미올라 등은 모두 길바닥 아스팔트에서 구르며 축구를 배운 선수들이었다.

게다가 선수들을 향한 환대도 적었다. 베르메스는 당시를 회고하며 "선수들이 대표팀 버스서 나오면 오줌이 담긴 가방을 맞곤했다"며 "나는 1988년 과테말라에서 대표팀 데뷔를 했는데 당시 코너킥을 수비하다가 '땡', '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관중들이 우리를 향해 던진 D형 배터리가 골대를 맞고 울리는 소리였다"고 밝혔다.

미국의 축구계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중미 국가들의 비난세례였다. 특히나 1990년 월드컵 예선전을 중앙아메리카에서 치러야했던 미국은 원정 경기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미국 CIA(중앙정보부)와 국방부가 중미 국가들을 상대로 첩보전과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지속적인 개입을 시도하고 있던 터라 미국을 향한 감정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 또한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 세력과의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때문에 미국 대표팀은 과테말라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됐다. BBC는 "미국 대표팀은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녀야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게다가 팬들의 응원 문화도 살벌했다. 미국 대표팀이 숙박하는 호텔 앞에서 불꽃놀이를 피워대며 방해하거나 음악밴드를 모집해 밤새 연주하기도 했다. 인프라도 시원찮았다. 미국이 원정 경기 앞두고 현지에서 훈련하는 곳은 땅의 상태가 좋지 못해 훈련할 수가 없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앙아메리카 밤에는 갑작스레 호텔의 에어컨이 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 대표팀은 저력을 발휘해 승점 8을 획득했고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트리니다드 토바고(9점)와의 원정 경기를 승리하기만 하면 코스타리카(11점)와 함께 최종 예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다만 트리니다드는 당시 2년간 홈에서 무패였고 무승부만 거둬도 진출할 수 있었다. 게다가 미국은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와의 2연전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했기 떄문에 미국의 진출은 회의적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90년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면 FIFA가 직접 1994년 월드컵 개최권을 앗아가겠다는 엄포도 놓았다. 즉, 선수들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경기서 패하면 더이상 축구를 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반면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미국과의 경기 다음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이미 월드컵에 진출한 양 행세하고 있었다.

베르메스는 이를 보고 "(트리니다드)선수들을 봤을 때 그들은 (무조건 진출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겁을 먹은 상태였다"며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사실이 됐다. 전반 32분 미국의 미드필더 폴 칼리귀리가 환상적인 중거리 슛을 꽂아넣으며 1-0 신승을 거뒀다.





미국 대표팀 모두가 환희에 찼다. 자국의 대표팀이 진출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대표팀 스탭들이 샴페인을 사다놓지는 못했기 때문에 축포를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선수들은 트리니다드 토바고 축구협회장 잭 워너가 선물한 버드와이저 맥주로 대신 기쁨을 나눴다.

미국은 1990년 월드컵에 진출했지만 3패를 거두며 그들의 행진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1990년의 미국 대표팀이 지금의 월드컵 다크호스를 만들어낸 주인공들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BBC 의견이다. 당시 대표팀 수비수 폴 크럼프는 "(미국이 첫 월드컵 진출을 이뤄낸) 1950년에는 우리 모두 태어나지도 않았다"며 "때문에 1990년 이후로 미국이 (2018년을 제외하고)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한 것은 우리"라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미국은 자국의 축구리그 MLS(메이저리그 사커)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확대해 유럽 유명 선수들이 커리어 말년을 보내는 유명한 리그가 됐다. 과거 메트로스타즈(현 뉴욕 레드불스)에서 뛴 독일의 중원 사령관 로타어 마테우스, LA 갤럭시에서 뛴 데이비드 베컴을 비롯해 수많은 선수들이 MLS에서 황혼을 맞이했다. 현재는 인터 마이애미에서 리오넬 메시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조용히 태우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미 축구 대표팀 공식 홈페이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BBC, 스포팅 히어로즈, SBI 사커

이태승 기자 taseau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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