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쉬어야 하는 선수가 오히려 더 힘든 일정에 직면했다.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쉴 틈 없이 뛰어야 한다.
남들 다 쉬는 휴식기에도 쉬지 못하는 등 100일간 거의 20차례의 실전을 뛰어야 하는 '지옥의 강행군'에 직면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수비수 김민재 얘기다. 김민재가 당분간 휴식이 없는 것은 물론 팀 내 전문 수비수들이 모두 다쳐 본인이 더 많은 부담을 안고 뛰게 됐다.
부상에서 돌아와 김민재와 센터백 콤비를 이루던 네덜란드 수비수가 다시 다쳤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뮌헨에 수준급 전문 중앙 수비수가 김민재 하나 말곤 없는 셈이다. 김민재와 다른 포지션 선수가 짝을 이뤄야 한다. '한국산 철기둥'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뮌헨은 3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네덜란드 국가대표 센터백 마테이스 더 리흐트가 향후 부상으로 결장한다고 알렸다.
구단은 "더 리흐트가 당분간(for the timf being) 뛸 수 없다"며 "독일축구협회(DFB) 포칼 2라운드에서 오른쪽 무릎 관절 내측 인대가 부분적으로 찢어졌다. 경기 후 뮌헨 메디컬 팀이 확인했으며 다음 경기 결장한다"라고 밝혔다. 뮌헨은 오는 5일 오전 2시30분 분데스리가 최대 라이벌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이른바 '데어 클라시커' 경기를 펼친다. 특히 원정이어서 도르트문트 8만 관중의 압도적인 응원을 이겨내기 위해선 제대로 된 전력을 꾸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더 리흐트라는 소중한 자원을 잃게 됐다.
뮌헨 구단은 구체적인 재활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으나 독일 언론에선 4주 결장을 내다보고 있다.
독일 유력지 '빌트'는 "바이에른 뮌헨이 좋지 않은 소식을 발표했다"며 "더 리흐트가 3부리그 팀과 DFB 포칼 경기를 했는데 오른쪽 무릎 관절이 부분적으로 파열됐다. 현재 초기 검사 결과에 따르면 4~8주 뛰지 못한다. 바이에른 뮌헨이 정밀 검사를 한 뒤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최악의 경우 더 리흐트는 올해 남은 일정을 뛰지 못할 수도 있다. 도르트문트와 데어 클라시커를 앞두고 큰 일"이라고 보도했다.
하필이면 분데스리가 우승을 위한 첫 고비에서 김민재 제외한 수비수들이 죄다 부상이다.
도르트문트는 뮌헨의 거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두 팀 경기를 치열하게 전개된다. 지난 시즌 뮌헨이 뒤지다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리한 반면, 도르트문트는 마인츠에 참패하면서 뮌헨이 역전 우승을 일궈낸 적이 있어 두 팀의 이번 맞대결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데 원정팀은 거의 백4라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도르트문트를 상대하게 됐다.
분데스리가는 겨울 휴식기가 있어 뮌헨은 12월19일 볼프스부르크와 16라운드 원정 경기를 마친 뒤 4주 휴식기를 갖게 된다. 이에 따라 더 리흐트는 회복이 더디면 겨울 휴식기 이전까지 돌아오지 못해 전반기를 통째로 날릴 가능성도 제외할 수 없게 됐다. 빌트처럼 아예 올시즌 아웃을 내다보는 언론도 있다.
더 리흐트의 장기 결장은 전날 벌어진 DFB 포칼 2라운드 자르브뤼켄(3부)과의 경기를 통해 어느 정도 예고됐다. 뮌헨은 자르브뤼켄전 직후 "더 리흐트가 전반 19분 무릎 부상으로 경기에서 교체 아웃됐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뮌헨에 부임한 토마스 투헬 감독도 "다시 같은 무릎 부상이다. 정말 아픈 부위다. 하지만 아직 어떠한 처방도 없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리흐트는 뮌헨이 1-0으로 앞서고 있던 전반 중반에 교체아웃됐다. 더 리흐트는 전반 19분 더리흐트는 뮌헨 페널티박스 우측에서 상대 크로스를 막는 과정 중 태클을 시도했다. 태클 후 곧바로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의료진을 호출했다. 더 리흐트가 고통을 호소하자 김민재와 동료들도 다가와 그의 부상 여부 체크를 계속 지켜봤다.
더 리흐트는 결국 부상 이후 결국 경기를 더 소화하지 못하고 전반 24분 콘라트 라이머와 교체됐으며 뮌헨은 김민재 외에는 센터백이 없는 상태로 경기를 치르게 됐다. 투헬 감독은 결국 궁여지책으로 미드필더인 요슈아 키미히를 한 칸 내려 김민재와 센터백 라인을 구성했다.
더 리흐트는 김민재가 뮌헨에 입단할 때 '더 킴' 센터백 라인을 구성하는 것 아니냐고 할 만큼 빼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수비수다.
자국 리그 명문 아약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로 이적하며 어려서부터 재능을 인정 받았다. 16살에 불과했던 2016년 아약스 1군에 데뷔한 더리흐트는 데뷔 첫 시즌 리그 11경기,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9경기 등 적지 않은 경기를 뛰며 성인 무대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2017/18시즌엔 본격적인 주전으로 도약해 20살 나이에 주장 완장까지 차고 활약했다. 2018/19시즌에는 에릭 턴하흐 감독과 함께 유럽 무대를 호령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의 대표 강팀들을 꺾고 4강까지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비록 4강에서 손흥민이 뛰던 토트넘 홋스퍼에 밀려 결승 진출이 좌절됐지만 수많은 팀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시즌 종료 후 유벤투스로 건너가면서 빅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더리흐트는 3시즌 동안 117경기를 뛰며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이적 초기에는 다소 기복 있는 경기력으로 7500만 유로(약 1065억원)에 달하는 이적료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2번째 시즌에도 부상으로 3개월 동안 전력에서 이탈하는 등 부침이 있었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1/22시즌에는 리그 베스트급 활약을 선보이긴 했으나 경기력에 기복이 여전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유벤투스 생활을 끝마치고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유벤투스에서 보여줬던 기복은 뮌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리그 31경기, 챔피언스리그 7경기 등 시즌 총 43경기에 출전하며 견고한 수비벽을 이뤘다. 뮌헨이 분데스리가 11연패를 달성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우파메카노, 뤼카 에르난데스와 함께 백3, 백4를 오가면서도 기복 없이 좋은 폼을 유지했다.
김민재의 뮌헨 입단이 가시화될 때 빌트는 "190cm 김민재는 일대일 대결에서 매우 강하다. 힘도 좋고 발도 빠르다. 더리흐트 역시 189cm다. 빠르게 수비진 리더로 발전했다. 둘은 뮌헨의 새로운 보루를 만들 것"이라며 김민재와 더리흐트 장신 센터백이 호흡을 맞출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투헬 감독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프리시즌 동안 더리흐트가 부상으로 고전하면서 시즌 초반 센터백 조합은 김민재와 우파메카노 라인으로 짜여졌다. 그러면서 더 리흐트는 교체 선수로 출전하는 경기가 많았고, 더 리흐트를 벤치에 두기 아깝다고 생각한 투헬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 우파메카노가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 부상으로 빠진 뒤 김민재와 호흡을 맞추고 있으나 복귀 한 달도 안 돼 부상에 또 울게 됐다.
투헬 감독의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키미히는 엄밀히 말하면 수비라인을 볼 수 없는 선수다. 다만 자르브뤼켄전에선 상대가 3~4수 아래로 평가받는 3부리그 팀이다보니 어떻게 헤쳐나가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뮌헨은 전반 추가시간 동점포를 허용하더니 후반 추가시간 상대 마르셀 가우스에게 극장 역전포를 내주며 그야말로 독일 축구사 기록될 만한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뮌헨이 3부리그 팀에 포칼에서 패한 건 지난 200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뮌헨은 우파메카노 역시 당분간 재활만 해야하는 신세라 결국 김민재에 다른 포지션 선수 한 명을 붙이거나, 10대 어린 선수를 파트너로 세우거나, 아니면 백3로 전술을 바꾸는 궁여지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안 그래도 과부하 우려에 휩싸인 김민재가 출전 시간 부담은 물론 역할에서도 굉장한 무게감을 짊어지고 뛰게 된 것이다.
특히 김민재가 올 겨울 쉬지도 못하고 향후 100일간 최대 20경기를 뛴다는 것은 뮌헨은 물론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끄는 대표팀에도 좋은 소식은 아니다.
뮌헨은 도르트문트전을 필두로 올해 마지막 일정이 굉장히 어렵다.
9일엔 튀르키예 강호 갈라타사라이를 불러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를 치르며, 이후 분데스리가로 돌아와 11일 하이덴하임전, 25일 쾰른전을 소화한다. 다시 이달 30일엔 덴마크 코펜하겐을 홈으로 불러들여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차전을 치른다. 12월2일 분데스리가 우니온 베를린전, 12월9일 아인트프랑크푸르트전을 연달아 벌이는데 두 팀은 분데스리가 중상위권 팀들이라 뮌헨 입장에서도 부담스럽다.
12월13일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 이어 12월16일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전, 같은 달 19일 볼프스부르크전까지 어느 한 경기 여유 있는 마음으로 치를 경기들이 없다. 향후 45일간 10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선 김민재가 이들 경기를 전부 풀타임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 더 리흐트의 복귀가 불투명한데다 우파메카노도 햄스트링 치료를 마치고 돌아와서 상태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민재는 도중에 한국으로 와서 클린스만호의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싱가포르전(16일), 중국전(21일)을 뛰어야 한다. 게다가 중국전은 비행기를 타고 3시간 날아가 치르는 원정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분데스리가는 12월19일 일정을 끝으로 4주간 휴식기를 갖는다. 겨울이 워낙 춥다보니 각 구단은 전지훈련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하반기 레이스를 대비한다. 하지만 김민재는 예외다. 내년 1월12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다시 한 번 국가대표로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원하는 대로 우승을 할 경우, 결승까지 최대 7경기를 뛴다. 또 아시안컵 앞두고 중동 팀들과 2차례 정도 평가전도 한다. 결국 내년 2월10일까지 100일 남짓한 시간 동안 최대 21경기를 뛰는 것이다. 1~2경기 결장한다고 해도 김민재로선 초강행군이 불가피하다. 대표팀에서도 파트너가 정승현으로 바뀌면서 김민재 책임이 막중해졌다.
뮌헨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근 포기했던 베테랑 수비수 제롬 보아텡을 다시 생각하는 모양새다.
뮌헨에서 10년 넘게 뛰다가 2년 전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으로 떠났던 34세 베테랑 수비수 제롬 보아텡 영입을 다시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현재 리옹과 계약이 끝나 무직인 보아텡은 지난달 뮌헨 캠프에 와서 2주간 훈련을 함께 소화했다. 그러나 뮌헨은 결국 그와 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8년부터 문제가 되고 있는 보아텡의 예전 여자친구 폭행 사건이 법원에서 계속 재판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뮌헨 입장에선 여론을 떠보려는 의도로 보아텡을 정식 계약하지 않고 캠프에만 합류시켰는데 그에 대한 팬들 반발이 적지 않자 결국 그와 다시 손잡지 않겠다고 발표까지 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김민재 혼자서는 분데스리가 약팀은 상대할 수 있지만 중상위권과 대적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조별리그 3연승을 달리고 있는 챔피언스리그 여정도 더더욱 그렇다.
당장 도르트문트전은 초비상이다. 빌트는 "바이에른 뮌헨에 중앙 수비수는 김민재 뿐이다. 우파메카노는 햄스트링 근육 파열 뒤 지난달 말 팀 훈련에 돌아왔다"며 "하지만 주말까지 뛸 수 있는 컨디션이 될 진 미지수다. 투헬 감독은 조슈아 키미히를 김민재 파트너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뮌헨은 보아텡이 아니어도 무직 선수의 등록만 당장 가능한 만큼 유럽을 샅샅이 뒤져 김민재 임시 파트너를 세울 태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어서 김민재가 수비수 1명 몫이 아닌 1.5명을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스카이스포츠 독일'은 "보아탱 대신 무스타피? 진실은 이것이다"라며 무스타피 접촉설을 내놓기도 했다.
무스타피는 지난 2016년 여름 발렌시아에서 맹활약하며 아스널 유니폼을 입었다. 아스널로 이적한 직후 두 시즌 간 좋은 수비력을 선보였지만 2018/19시즌부터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며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수비 시에 적극적인 모습 대신 손을 들고 심판을 찾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아스널 팬들에게 많은 혹평을 받았다.
지난 2020/21 시즌까지 아스널에서 뛰었던 그는 계약 해지를 통해 샬케04로 이적했고, 이후 샬케에서 4개월을 뛴 그는 2021/22 시즌부터 2022/23 시즌까지는 스페인 라리가2 레반테에서 뛰며 2시즌을 보냈다. 현재 무스타피는 레반테와의 계약 종료로 팀이 없는 자유계약 상태이기에 뮌헨이 영입을 원한다면 데려올 수 있는 센터백 자원이다.
스카이스포츠 독일은 "투헬 감독은 새로운 중앙 수비수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재 뮌헨에는 김민재, 우파메카노, 더 리흐트, 유망주 타렉 부흐만을 포함해 중앙 수비수가 4명뿐이다. 그러나 뮌헨은 자유계약 선수만 영입할 수 있으며, 무스타피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무스타피로 전성기에서 한참 내려와 영입해도 미지수다. 결국 믿을 수비수는 김민재 한 명 뿐이다.
100일간 20경기라는 엄청난 항해가 그의 앞에 다가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바이에른 뮌헨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